검색

[그날] 김현희(KAL기 폭파범)와 안기부 직원의 사랑

가 -가 +

최병국 기자
기사입력 2019-06-10

최근 외교부가 공개한 비밀 외교문서로 전두환 정권이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을 정략적으로 선거에 이용하려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KAL기 폭파사건의 주범 김현희에 대한 여론의 관심 역시도 재조명되고 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에서 승객 115명을 태우고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가 미얀마 근해에서 공중폭파돼 추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체포된 범인 중 70세의 하치야 신이치(본명 김승일)는 청산가리 앰플로 사망했고, 25세 여성 하치야 마유미(본명 김현희)는 자살에 실패해 대통령 선거 전날인 12월15일 서울로 압송됐다. 그는 재판을 거쳐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보름 만에 특별사면됐고, 1997년 자신의 신변보호를 맡은 경호원이었던 안기부(국정원) 직원과 결혼해 아들‧딸을 낳았다. 

 

현재 그는 경주 이하 불상지에서 은둔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때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김현희의 결혼과정 및 이후 동향 등에 대해 추적해봤다.

 

© 문화저널21

 

제13대 대선판도까지 바꾼 KAL기 폭파사건

김현희의 서울압송, 재판부터 사면까지의 의혹들

 

1987년 있었던 KAL기 폭파사건 전까지 국내 정치판은 제13대 대선(1987년 12월16일)을 향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공식선거운동 시작 직후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가 정승화를 통일민주당 부총재 겸 상임고문으로 영입해 여의도에서 군정종식 100만 집회를 개최하자 당시 김영삼의 지지율은 1위로 치솟았다.

 

그러나 KAL 858기 폭파사건이 발생하고 선거 전날 김포국제공항으로 김현희가 압송되는 모습이 전국적으로 방송돼 엄청난 북풍바람이 몰아치면서 대번에 선거판도가 바뀌어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KAL기 폭파 및 김현희 압송은 제13대 대선정국 결과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한 것이다. 

 

김현희의 압송 이후 수사가 진행돼 1989년 2월3일 서울지검에서는 살인, 항공기폭파치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김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후 1990년 3월27일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으나 1990년 4월12일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KAL기 폭파는 조작이다’, ‘북풍몰이를 위해 김현희를 기획 입국시켰다’는 일각의 숱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김현희는 가짜이며, KAL기 폭파는 선거를 위한 전두환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의혹제기가 지금까지도 꾸준히 제기되는 등 KAL기 폭파사건의 미스터리 논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김현희의 실체, 그녀는 평양 출신 ‘공작원’이었다

드라마 같은 안기부 직원과의 결혼과 이후의 은둔생활

 

일각에서 김현희는 가짜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는 있지만, 그는 1962년 1월27일 평양에서 외교관인 아버지(김원석(金元錫)와 교사인 어머니 림명식(林名植) 사이의 2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난 것으로 보여진다. 

 

그녀의 근황을 알고 있는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현희는 1989년12월 한국으로 압송된 후 결혼해 생활하던 중 남동생 김현수가 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관계기관으로부터 전해 듣고 펑펑 울었다. 뿐만 아니라 죽기 전에 부모님 얼굴을 한번만 보았으면 한다는 소망을 관계기관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1972년 11월2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조절위원회 남측 장기영 대표에게 김현희가 꽃을(화동 중 1명) 전달한 사실이 추가 발굴사진을 통해 확인됐고, 공작투입 전까지 일본인 납북자 리은혜(李恩惠)로부터 개인 집중교육을 받은 점도 알려지면서 그녀가 평양출신 공작원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기정사실로 자리잡혔다.

 

그런 김현희의 결혼 및 출산과 이후 파란의 생활과정 등은 한편의 드라마처럼 기구하다.

1987년 12월15일 압송 귀국된 김현희는 안기부의 엄격한 보호 하에 생활한다. 이 과정에서 오랫동안 김현희를 신변보호 하고 있던 4년 연상의 국정원 정모 직원은 김현희를 서서히 연모하게 됐고, 1995년 10월 경주에서 안보강연을 하기 위해 김현희와 같이 승용차를 타고 가던 중, 경주톨게이트 인근에서 사랑을 고백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권영해 안기부장이 고향 경주시에서 개최되는 안보강연을 위해 김현희를 데리고 갔으며, 김현희와 경호원인 정모 사무관은 같은 차에 동석했다. 권영해 안기부장과 정모 사무관은 같은 K고교 선·후배 사이였다. 

 

정모 사무관이 자신의 고향인 경주시 건천읍을 지날 즈음 을씨년스런 농촌들판을 가리키며 “저기가 내 고향이며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라고 하자, 김현희는 정모 사무관에게 “You는 왜 결혼하지 않으세요?”라고 물었고, 이에 정모 사무관은 김현희에게 “You에게 마음 뺏겨 정신이 없다. 다른 여자를 쳐다보지 못할 것 같다”면서 사랑을 고백했다. 이에 김현희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후 정모 사무관이 장시간에 걸쳐 갖은 정성을 다했고. 수많은 고심 끝에 김현희가 사랑을 받아 들여 1997년 12월29일 경주향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정모 사무관은 ‘김현희와 결혼하려면 사표를 내야 한다’는 안기부 지침에 따라 결혼직전 사표를 제출했으며, 결혼 후 생계유지를 위해 경주시 성건동 소재 명사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실패해 가세가 기울었다. 

 

김현희는 2번에 걸쳐 유산한 다음, 2000년 아들을 출산했고 뒤이어 2002년 딸을 출산했다. 수입이 변변치 않은 상태에서 연속된 출산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심한 상황이었으나 두 사람은 경주시 이하 불상지에서 운둔생활을 하면서 버텨나갔다. 

 

그러나 2003년 2월25일 노무현 정부 출범 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일명 진실위)가 구성돼 KAL기 폭파사건을 재조사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자 경주를 떠나 객지를 전전하는 고된 삶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김현희는 성격이 날카로워져 수시로 부부싸움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국정원 출신 남편 정모씨는 “남한 사회를 이해시키기 위해 너무 힘들었다”는 취지의 이야기들을 극소수 지인들에게 하소연하면서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기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하소연이 와전돼 한때는 두 사람이 이혼을 했다는 소문이 번지기도 했지만 소식통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김현희와 그의 남편 정모씨는 ‘특별 보호대상’이기 때문에 부부가 같이 외출·외박할 경우에는 엄중한 감시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런 연유로 두 사람은 결혼식 후 신혼여행도 포기하고 경주에서 시간을 보냈으며, 부부의 유일한 외출은 경주인근 감포 바닷가로 가서 은밀하게 생선회를 먹는 것이었다. 이마저도 오래전부터는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경주를 떠나 객지생활을 하면서부터 김현희는 남편의 외부생활을 감시하면서 들볶는 일이 잦아졌다. 이에 남편이 괴로워 술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다면서 김현희와 남편의 근황에 밝은 소식통들이 전해주기도 했다.

 

현재 나이 60을 바라보는 김현희의 생애 유일한 소망은 북한에 있는 부모님을 죽기 전에 한번 보는 것이며, 이 때문에 많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실을 남편 정모씨가 안기부에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관계기관(안기부)에서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생사 및 근황 등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있는 부모‧형제자매들의 근황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제 또다시 ‘KAL기 폭파사건의 미스터리’ 논란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김현희 및 남편 정 모씨는 얼마 전까지 경주시 이하 불상지에서 거주하면서 은둔의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남편 정모씨가 본가와 거주지를 왕래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포착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KAL기 폭파사건의 미스터리 논란이 심화되고, 나아가 김현희의 압송이 전두환 정권의 의도에 의해 대선에 이용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시점에서 김현희 부부는 기자들의 거주지 추적 등을 피하기 위해 또다시 객지 방랑길을 떠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거주지를 옮겼을 가능성도 크다. 

 

장성해 가는 아들과 딸을 쳐다보면서 김현희·정모 부부는 ‘정녕 사랑이 죄 이런가’를 되뇌면서, 이승에서의 잔인한 운명에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문화저널2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