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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스토리] 이상화 시인과 대구·경북복싱의 히어로

대구·경북 복싱의 영웅, 곽귀근 · 정희조 · 정창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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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 기자
기사입력 2019-08-16 [16:16]

대구·경북 복싱의 영웅, 곽귀근 · 정희조 · 정창구 감독

 

얼마 전 끝난 제49회 대통령배 전국선수권대회에서 경북체고가 종합우승을 차지하면서 올해 벌어진 협회장배와 중·고선수권 대회에 이어 3관왕을 차지했다. 

 

메이저대회 3관왕은 1985년 정해명·한광형·조동범·나학균·김범수·최임곤·김석현·전병성·김석호 등 초호화멤버로 무장한 서울체고 명장 이흥수 감독과, 1987년 조인주·이창환·박기홍·김진호 등 초고교급복서 4인방이 활약하며 무려 22개의 금메달을 획득할 때 리라공고를 지휘한 복싱계의 마키아벨리 황철순 감독도 달성 하지 못한 초유의 기록이다.

 

▲ 올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링위의 칭기즈칸 곽귀근 감독 (사진=조영섭 기자) 


한마디로 경북체고 곽귀근 감독(61년, 대구)이 학원 스포츠의 역사를 새로이 창출한 것이다. 야구에서는 지난 1971년 서영무 감독이 이끄는 경북고가 중앙 4개 대회와 지방1개 대회(부산 화랑기)를 석권하며 5관왕의 대업을 이룩한 바 있다. 당시 남우식 투수는 19승 1패 방어율 0.34를 기록하며 5관왕의 견인차 역할을 했고 배대웅·천보성·정현발·구영석·함학수 등이 공수에서 조력자 역할을 담당하며 대업을 이뤘다.

 

축구에서는 79년 대구 청구고가 61년생 4인방인 변병주(연세대)·박경훈(한양대)·백종철(경희대)·백치수(한양대)의 활약에 힘입어 초유의 전국대회 5관왕을 달성했다. 여기에 경북체고 복싱신화가 더해졌으니 복싱인으로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만하다. 

 

복싱계 칭키즈칸으로 불리는 경북체고 곽귀근은 2017년부터 중고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고, 협회장기는 5연속 종합우승했던 명장 중의 명장이다. 경북체고는 한 두명의 스타플레이어에 의존하는 팀이 아닌 26명 전원이 시멘트처럼 단단한 팀워크로 뭉친 팀이다.

 

강병진, 신재용 이외에는 이렇다 할 특출한 선수는 없지만 고른 전력으로 올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 했다. 마치 김광현·박경완 이외에는 별다른 스타가 없는 팀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김성근식 벌떼야구 시스템으로 한국시리즈 3회 우승과 함께  프로야구 최다연승인  22연승을 기록한 SK 구단과 팀 컬러가 흡사하다.

 

▲ 1984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신창석과 싸우는 정희조(좌측) (사진=조영섭 기자) 


필자가 기억하는 곽귀근은 참교육자의 전형이다. 청렴결백한 그는 복서이전에 바른 인성을 지닌 학생으로 지도 육성할 뿐만 아니라 방과 후에도 펜글씨를  습득시켜 복싱 울타리를 벗어나서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시키는 지덕체(智德體)를 완비한 교육자다.

 

또한 그는 수구초심의(首丘初心)의 근본을 잊지 않는 지도자다. 경기가 끝나면  대구·경북의 복싱 창시자인 이상화 선생의 고택을 찾아 가벼운 목례를 하고 떠나는 것을 잊지 않는다. 

 

1900년, 영남토호 이시우 옹의 4남 중 둘째로 태어난 이상화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과도 같았던 일제강점기인 1926년, 개벽지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저항시를 발표한 민족시인이다. 그는 1938년 대륜고 전신인 대남학교에서 ‘침략당한 민족이 주먹이라도 강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전격적으로 복싱부를 창단한 인물이다.

 

나중에 이 학교 출신들이 대구권투클럽을 결성해 그 후 오정근·석종구·김용수 등을 배출하며 오늘에 이르렀으니 이상화 시인은 대구·경북복싱의 선구자라 할  수 있겠다. 이상화 시인의 형 이상정은 미술가이자 한학자출신으로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과 함께 오산학교 교사로 지내다 중국 독립군 군사고문으로 독립운동을 펼쳤고, 후에 중국군 중장(국민당)을 지냈다. 

 

첫째동생 이상백은 한국의 쿠베르탱 이란 애칭으로 대한올림픽 위원회(KOC)가 국제올림픽 위원회(IOC)에 가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주역 이었고 둘째동생 이상오는 정통 수렵인으로 수렵에 관한 여러 저서를 남긴 저명인사다. 

 

특히 험난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한평생 굴절됨 없이 민족혼을 일깨우는 외침을 남기고 떠난 이상화 시인은 한용운, 심훈, 이육사, 윤동주와 함께 저항시인으로 기억된다. 

 

▲ 1997년 제78회 전국체육대회에서 3개의 금메달을 걷어올린 성서공고 정희조감독(맨 좌측) (사진=조영섭 기자) 


대구 경북 복싱에 빼놓을 수 없는 또 한명의 복싱인이 현재 와룡중 체육교사로 근무하는 정희조(63년 대구)감독이다. 경북체고 2학년 때인 80년, 대통령배 대회에서 전남대표 성두호를 꺾고 밴텀급에서 정상에 올랐고,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는 최종선발까지 올랐던 베테랑복서 출신인 그는, 84년엔 문성길을 두 차례 잡았던 치악산호랑이 신창석(60년, 원주)을 꺾으며 라이트급 국가대표에 발탁된다. 

 

그 후 86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는 송광식을 잡으며 기염을 토했지만 최종결승에서 전진철에게 3ㅡ2로 패했다. 잠시 주춤한 그는 그해 핀란드 템버 대회에서 동메달을 회득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87년 한미 국가대항전과 세계군인선수권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한 정희조는 88서울올림픽에서 이강석(한국체대)에게 역시 3ㅡ2로 패하자 마지막임을 직감하고 복싱을 접는다.  

 

정희조는 90년부터 대구 중리중에서 교편을 잡고 복싱부를 맡으면서 2년간은 심한 부침(浮沈)을 겪었지만 보완점을 찾고 정비한 94년 제23회 소년체전에서는, 금메달 3개 획득과 함께 플리이급 하헌석이 대회 최우수상을 받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정희조는 980승을 올렸지만 1032패를 당한 프로야구 김인식 감독과 흡사한  믿음과 신뢰를 구축하고 지도하는 전형적인 덕장이다. 김인식 감독이 9연패를 당한 김원형(당시 쌍방울)을 91년 8월 선동열과 맞대결시켜 완봉승을 거두면서 대투수로 성장하는 기폭제가 되듯이 정희조도 실패가 승리를 위한 준비단계임을 깨닫고 경기에 패한 선수들에게도 변치 않는 믿음과 신뢰로 지도하는 전형적인 아테네식교육 스타일의 덕장이다.

 

▲ 부탄 대표팀 감독을 엮임한 정창구 감독 (사진=조영섭 기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믿음은 죽은 자도 일어나 춤추게 하는 숨은 마력이 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마냥 펑탄한 꽃길만 걸을 순 없지 않은가.  그 아픈 상처를 성장의 프레임으로 연결시키는 능력을 정희조는 지니고 있었다. 1995년 대구 성서공고로 발령을 받아 명 조련사 정창구(60년, 경주)코치와 투톱을 이루며 폭주 기관차처럼 질주를 시작한다.

 

정창구 감독은 현역시절 79년 제11회 전국신인대회 라이트 플라이급에서 결승에서 정희조(당시 경북체고)를 꺾고 우승과 함께 최우수복서로 선정됐고, 그해 29회 학생선수권 대회 플라이급 준결승에서 문성길(당시 목포 덕인고)의 강력한 러씽을 한수 위의 복싱 스킬로 제압하며 완승을 거둔 테크니션 복서였다. 

 

정희조와 정창구의 절묘한 하모니는 성서공고 팀을 최강팀으로 변모시킨다. 채승석·김지훈·권오곤·강대원·유재민 등이 버틴 서울체고와 종합우승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변성만·박창환·이상호·엄윤성·오기석·노재현 등 역대급 복서들을 배출해낸다. 특히 1997년 제78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대구 성서공고팀은 밴텀급의 박창환 라이트 웰터급에 문상만 웰터급에 김정환이 금메달을 획득하며 라이트급에서 김지훈이 유일하게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그친 서울체고에 우위를 점한다. 가장 권위있는 전국체전 3개의 금메달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값지고 진귀한 기록이다. 

 

▲ 정희조감독(좌측) 정창구코치, 97년 중고선수권 최우수복서 박창환선수 (사진=조영섭 기자) 


정희조는 복싱계에서 신사로 통하는, 겸손하고 예의바르기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정창구는 이런 정희조를 후배복서지만 존경이란 극존칭을 쓸 정도로 그의 인품은 국가대표급 이다. 

 

정희조는 당시 선배 정창구에게 인격적으로 많은 배려를 한듯하다. 중요한 것은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이 더 위대하게 보인다. 그래서 정창구가 더욱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성서공고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은 정창구는 2015년부터 2016년 까지 부탄에서 국가대표 감독직을 수행하다 귀국해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듯이 선수는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 에 따라 복싱인생이 달라진다. 다보탑처럼 화려한 광채를 뿜어내는 곽귀근 감독과, 석가탑처럼 수수한 자태를 뽐내는 정희조감독, 그리고 숨은조력자 정창구 감독이 일궈낸 대구·경북 복싱의 활기찬 모습에 지하에서 계신 이상화 선생도 편안한 미소를 머금은 채 영면하시리라 믿는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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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19/08/16 [17:47]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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