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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시] 당나귀와 꽃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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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선
기사입력 2019-08-27 [08:03]

당나귀와 꽃

 

다리가 덜 자란 당나귀

사춘기 열병을 앓는지

버드나무 핀 강가에서 서성거렸네

 

지겨운 소금 등짐은

옆집 곳간에 휙 던져버리고

등짐 한가득 빨간 장미를 싣고

강바람을 만나러 갔었네

 

당나귀 코가 벌름거리는데

등에 업은 빨간 장미는 웃기만 하고

다리가 덜 자란 당나귀가

벌렁거리는 심장에 속삭였네

 

내 마음 나도 몰라

등짐에 업힌 장미는

살짝, 훔쳐보았네

발갛게 달아오른 당나귀 두 볼을  

 

# 새로 출시된 신형 차의 모델로 말과 “당나귀”가 모델이 된다면, 어떤 모델 쪽 차를 선택하고 싶을까? 말이 모델인 신형 차에 마음이 더 간다면 후광효과(halo effect) 때문이다. 잘 생기고 이미지가 멋지게 포장된 유명 연예인들을 특정 상품의 모델로 활용하는 것은 후광효과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이다.

 

당나귀는 먹이에 구애 받지 않고 잘 자라며 오래 산다. 발굽은 작아도 단단해서 먼 거리도 잘 가고 커다란 돌들이 널려 있는 험한 길도 잘 걷는다. 힘이 좋고 부지런해서 하물 운반용으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외모가 근사한 말과는 달리 당나귀는 겸손함과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말과 비교되면 후광효과에서는 말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  

 

“지겨운 소금 등짐은/옆집 곳간에 휙 던져버리고/등짐 한가득 빨간 장미를 싣고/강바람을 만나러”가는 당나귀의 모습에선 호기심 때문에 마법의 기름을 잘못 발라 당나귀로 변했던 고대 로마의 전기소설 속 ‘루키우스’를 생각나게 한다. 당나귀가 된 루키우스는 “빨간 장미꽃”을 먹으면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인간이 되기 위해 아름다운 장미꽃을 희생시키는 당나귀가 아니라 장미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승화 시킨다. 당나귀와 장미꽃이 사랑하는 모습에선 사랑으로 피워 올린 후광이 빛난다. 사랑으로 빚어진 후광효과는 상품광고를 위해 만들어진 의도된 후광효과와는 다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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