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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스토리] 유명우에 패한 손오공과 그의 스승 김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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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 기자
기사입력 2019-09-03

유명우에게 KO패 당한 손오공의 스승 김용석 사범의 복싱인생 

 

며칠전 행사장에서 귀한 복싱 선배를 만났다. 주인공은 바로 전 원진체육관 수석 트레이너인 김용석 사범이었다, 김 사범은 57년 고창출신으로 75년 상경해 청운의 꿈을 품고 중앙체육관에 입관해 복싱계 명장 권수복 트레이너의 조련을 받으며 촉망받는 유망주로 성장한 복서였다.  

 

이후 역대급 복서인 김태호, 오영호의 스파링 파트너로 활약하면서 원숙미를 더한 그는 원진체육관소속으로 이적, 프로 데뷔전을 치르며 연승을 거뒀지만 불의의 부상으로 복싱을 접고 일찍 김규철 관장 문하에서 트레이너 수업을 받으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 손오공 트레이너 김용석사범 (사진=조영섭 기자) 


80년을 전후한 원진체육관은 김태식, 김사왕 쌍두마차를 위시해 동양챔피언 양홍수와 독침주먹 박석규, 최우수 신인왕복서 이상호와 유형곤, 김기봉, 국순일, 방승현, 편호철 등 유망주등이 대거 포진된 명문 체육관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신인왕 출신의 지말오와 임종대, 그리고 두 체급 국내챔피언을 지낸 17승 10KO승의 차돌주먹 최완택(64년 당진)등을 베출하며 지도력을 인정받는다.

 

김 사범은 후에 세계 챔피언에 등극하는 최요삼과(73년, 정읍) 변정일(66년, 태안)도 지도해 아마추어 대회에서 김명복배 3위, 서울신인대회 우승 이라는 훈장을 각각 달게 함으로써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준 은사다. 

 

이후 김용석은 필승체육관에서 스카웃한 손오공(62년, 임실)이란 복서의 전담 트레이너를 맡아 85년 9월8일 유명우와 WBA 주니어플라이급 도전자 결정전(당시 챔피언은 조이 올리버)을 치르는데, 이경기가 선수인 손오공과 함께 김용석 사범에게 공히 복싱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   

 

당시 3연속 KO 행진을 펼치며 WBA 동급4위에 랭크된 20전 19승(9KO승) 1패의 전적을 보유한 손오공이 자신이 한수 아래로 평가한 WBA 동급 7위이자 17전 전승(3KO승)을 기록한 유명우(64년,.서울)를 상대로 각각 1천만원의 파이트머니를 받고 상호간에 복싱운명이 걸린 놓칠 수 없는 한판을 펼친다.

 

81년 10월 프로에 데뷔한 손오공은 82년  신인왕전에서 지말오에 8회 판정승을 거두고 최우수복서 권철에 이어 우수신인왕에 오르자 원진체육관에서 스카웃을 감행했고 김 사범과 호흡를 맞춘 손오공이 이후 내리 6연속 KO 퍼레이드를 펼치자 소속팀 김규철 관장은 손오공을 포스트 김태식으로 낙점하고 곧바로 최문진(동아)과 세계랭킹전을 주선한다.

 

손오공은 불꽃 파이팅을 펼치며 군말 없는 10회 판정승으로 화답을 한다. 그리고 세계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유명우와 피할수 없는 한판승부를 벌인다.  

 

▲ (좌측부터) 원진체육관 동료들인 김병무심판 김용석사범 장관호심판 (사진=조영섭 기자)

 

당시 유명우는 대원 체육관 김진길(40년 작고) 관장 문하에서 복싱을 수련하다 중학교 3학년 때인 79년, 제11회 전국 학생신인대회에서 1패를 당하고 80년 인천체고에 진학, 송호철(58년, 횡성)지도교사의 휘하에서 아마추어 복서로 활동하며 1승2패를 기록한 후 졸업반인 82년 3월 프로에 대뷔한다.

 

이후 김기창, 안래기, 임하식, 정비원 등 국내정상급 복서들을 차례로 잡으며 13연승을 기록한 유명우는 동아체육관으로 이적 김윤구(55년 청도) 관장의 조련을 받으며 84년 10월 이노시안을 3회 KO로 잡으며 동양챔피언에 등극한 후 85년 2월 자야와 1차방어전도 3회 KO로 잡으며 물이오른 상태였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유명우의 상대인 손오공을 처음발탁 복싱을 지도한 스승이 김윤구 관장이란 사실이다

 

당시 초창기 노량진 동아체육관에서 트레이너생활을 하던 김 관장에게 손오공은 복싱을 배웠고 이후 직장문제로 양평동 필승체육관으로 이적, 피할수 없는 일전을 준비한 것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공격력이 우세한 손오공이 탑독, 펀치력이 약한 유명우가 언더독이란 평가가 지배적 이었다.

 

그러나 경기는 유명우의 일방적인 페이스로 진행된 미스매치(mis match)가 되어버렸다. 마치 구식 소총과 신식 서양무기의 대결처럼 손오공은 그렇게 무기력하고 처절하게 쓰러졌다. 특히 유명우의 철갑을 두른 듯한 두터운 커버링과 발레리나처럼 경쾌한 율동에 손오공의 주무기인 양훅은 선풍기바람만 일으키는 공포탄이 되어버린다.

 

유명우의 특유의 양쪽 귀를 감싸는 두터운 커버링은 송곳처럼 찌르는 스트레이트 전문의 키큰 장신선수인 조이 올리버나 이오까 같은 유형의 복서에게는 다소 고전한 듯한 인상을 풍기지만 손오공과 비슷한 유형의 남미의 들소인 블랑코, 데마르코, 헤수스 등 터프가이들에겐 강점이 있는 커버링 이었다. 

 

결국 유명우의 마법에 걸려 손오공은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필자가 직관한 옆자리에서 연신 흐느끼면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연세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생각난다. 

 

짐작컨대 손오공의 모친인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저런 눈물은 피보다 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 두들겨 맞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단장(斷腸)의 아픔과 비견되리라. 

 

인사이드에서 때릴 수 있는 모든 타격의 진수를  예술처럼 보여준 유명우의 연타에 필자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한편 아웃사이드에서  포물선을 그리면서 각이 없는 훅을 난사하는 손오공의 펀치는 유명우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어 공중분해 되면서 이슬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 둘은 전형적인 천척관계라 생각된다. 마치 프로야구에서 전무후무한 7관왕의 대업을 이룩한 천하의 이대호(롯데)가 잠수함투수 SK 정대현을 상대로 49타수 5안타 1할2리 빈타를 기록한 경우나, 국민타자 이승엽(삼성)도 구대성(한화)을 상대로 51타수 6안타 1할1푼8리에 삼진만 25차례 당한 사례가 대표적인 천적관계가 오버랩(overlap)된다. 이들은 공의 궤적과 히팅포인트가 상극이어서 벌어진 결과란 생각이든다.  

 

▲ (사진 왼쪽부터) 유명우에 일방적으로 난타당하는 손오공(좌측), 유명우와 트레이너 김윤구 관장, 훅공격 만큼은 철벽 브로킹을 자랑하는 유명우의 두터운 커버링 (사진=조영섭 기자) 


손오공과 유명우의 관계도 전력 차를 떠나 이들과 흡사한 경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경기후 두 선수는 대조적인 길을 걷는다. 승자 유명우는 85년 12월 조이 올리버를 상대로 WBA라이트 플라이급 세계정상에 올라 17차 방어의 대업을 이루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복서로 우뚝섰지만, 손오공은 유명우에 패한 이후 폭음을 거듭하다 88년 2월 에밀 마쓰시마(일본)와 대결에서 판정패를 당한 후 복싱을 접는다. 이후 방황하는 삶을 살다 수년 전 유명을 달리했다.   

 

한편, 트레이너 김용석은 손오공의 패배를 빌미로 그 다음날 김규철 관장의 명에 의해 트레이너 생활을 접었다. 책임을 통감하고 뒷말 없이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그러나 김용석은 “김규철 관장은 선수를 너그럽고 배려하고 이해해주는 가슴 따스한 분으로 기억한다”며 능력 부족한 자신을 탓했다. 고개 숙여지는 대목이다. 

 

김용석은 그 후 복싱을 접은 후 개인사업을 벌여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다. 현재는 웬만한 복싱 체육관 1년 수입을 단 한 달만에 창출할 정도로 탄탄하게 입지를 구축한 사업가로 성공했다. 손오공과 김용석 사범의 인생여로(人生旅路)를 보면서 ‘인생의 문은 하나만 있는게 아니다’란 생각이 든다. 

 

닫힌 문만 바라보며 비탄의 감정에 빠져 인생을 낭비한 손오공에 비해 뒤돌아서서 새롭게 열린 문을 바라보고 새 인생을 열어 인생역전에 성공한 김 사범의 행보를 보면서 타산지석(他山之石)이나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동굴 속에 갇혀버린 느낌이 들자 자포자기한 손오공에 비해 김 사범은 조금만 걸어가면 빛이 보일것이란 희망을 염두에 둔채 어두운 터널을 묵묵히 걸었던 것이다. 

 

인생을 길게 본다면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게 되어있다. 행운과 불행은 동전의 얌면과 같다. 불행의 한 면만 보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동전을 뒤집어볼 생각을 김용석은 한 것이다.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이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살피고 닫힌 문이 있다면 고개를 돌려 주위를 돌려보자. 그것이 역경을 이겨내는 삶의 지혜가 아닐까. 그런 김용석 사범을 보면서 인생이란 최후에 웃는자가 승리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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