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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삼성의 180자 사과문, 그게 사과문인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1심 유죄… “이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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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영 기자
기사입력 2019-12-23

윤종선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비대위원장

사과 진정성 없어… 많은 분이 누군가

노동조합 대상으로 한 명확한 사과 요구

무노조 마침표? 언젠가 발톱 드러낼 것

 

삼성이 이른바 노조파괴와 관련해 사과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지난 18180자 남짓의 입장을 밝혔다. 에버랜드 노조파괴 1심 판결 닷새 만에,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1심 판결 하루 만이다. 잇따른 유죄 판결은 철옹성 같던 무노조 경영이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은 사건으로 평가됐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노사 문제로 많은 분들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180자의 사과는 노조파괴 범죄의 피해자인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1심 판결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17일에 있었던 판결의 주인공인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윤종선 통합지회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 윤종선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통합지회 비대위원장.  ©성상영 기자

 

윤종선 위원장은 삼성 측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180자짜리 사과문이 과연 사과문인가라며 “‘많은 분들께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게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반문했다. ‘많은 분들이라는 모호한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당사자인 노동조합과 피해 조합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윤 위원장은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한 사과 없이는 삼성이 강조한 건강한 노사문화도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 위원장은 재발 방지 약속을 했고 건강한 노사관계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노동조합에 대한 사과 없이 누구와 노사문화를 형성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13일과 17일에 있었던 판결에 대해 무노조 마침표라고 표현한 것에는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단언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20137월 출범했다. 엔지니어들에 대한 처우가 형편이 없어서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국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수리기사(엔지니어)들은 외주업체 소속이었다. 건당 수수료제에 묶여 안정적이지 못한 급여,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밀려드는 업무, 제 돈 주고 사야 하는 공구는 삼성맨인 줄 알았던 삼성전자 엔지니어의 실체였다. 윤 위원장은 삼성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엔지니어에 대한) 대우는 그에 걸맞지 않았다라며 억압이 많았지만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다 노조가 만들어졌다. ‘무노조 경영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삼성에 비록 협력업체지만 노동조합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삼성은 그룹 컨트롤타워인 옛 미래전략실 주도로 집요하고도 치밀하게 노조 와해를 시도했다. 조합 간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찰하고, 심지어 외딴섬으로 끌고 가 강제로 탈퇴 의사를 받아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생활고였다. 윤 위원장은 “(삼성이) 센터 하나 날리면 된다는 식으로 나왔다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조합원에게만) 낮은 임금을 주면서 금전적 손실을 줬다고 설명했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한두 푼씩 받은 대출은 쌓여 가정이 파탄 나기도 했다. 삼성과 외주업체의 가혹한 탄압 속에 2013년에는 최종범 조합원이, 2014년 염호석 양산센터 분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심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 자료만 A4용지로 10만 페이지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노조 사무실 앞에 선 윤종선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통합지회 비대위원장.  © 성상영 기자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기소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에게 각각 징역 16개월을 선고했다. 삼성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노조파괴를 도운 전직 경찰 김 모 씨에게는 징역 3년과 벌금 5000만원, 추징금 3188만원을 선고했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 법인을 포함해 32명이 재판에 넘겨져 이 중 26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같은 재판 결과에 대해 윤 위원장은 협력사로 꼬리를 자르지 않고 강경훈 부사장과 이상훈 의장까지 처벌받게 한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유죄를 바랐지만, 이 정도 양형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고 고백했다. 다만 재판부가 (삼성 측 피고에게)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라거나 이러한 증거가 나왔기 때문에 구속할 수밖에 없다며 배려하는 느낌이 강했다라며 이것이 재판부가 삼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닐까라고 씁쓸해하기도 했다.

 

이번 선고 공판에서는 삼성전자서비스가 외주업체를 통해 위장도급을 했다는 판결도 나왔다. 윤 위원장은 이 점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봤다. 삼성전자서비스는 판결 전인 올해 1월 외주업체 소속 엔지니어와 콜센터 직원 등 8700여 명을 직접 고용했다.

 

직접고용 이후 삼성전자서비스 노사는 첫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교섭을 진행 중이다. 어찌 됐건 노조를 인정한다는 신호로 읽힌다. 그러나 윤 위원장에 따르면, 교섭은 지난 10월 말을 마지막으로 멈춘 상태다. 교섭이 난항을 겪자 노조는 지난여름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윤 위원장은 여전히 쟁의기간이고, 회사는 노조만 아니면 많은 대화를 하고 결과를 만드는데 단체교섭에서는 양보하지 못한다고 나온다고 토로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

 

삼성이 180자의 사과문을 통해 밝힌 것처럼 정말로 무노조 경영을 포기했는지도 여전히 그에겐 의문이다. 윤 위원장은 대놓고 부당노동행위를 하지는 못하지만 노동조합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분위기는 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삼성이 다시 발톱을 드러낼 수 있다넋 놓고 있지 말고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저널21 성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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