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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개문발차-②] 창당공신 어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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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국 기자
기사입력 2020-02-19 [09:10]

한국당 중심의 보수․중도 지향의 미래통합당이 진통 끝에 17일 출범했다. 이런 과정에 박형준 혁통위원장, 장기표 국민의소리당 대표, 오신환, 유승민 의원 및 안철수 계열의 인사 및 중도․시민세력들이 기여했다. 창당 공신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처우가 새로운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처우를 둘러싸고 미세한 흔들림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미래통합당 출범

공신들의 지분정리 진통 여파 불가피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한국당 중심의 보수․중도 대통합론이 17일 미래통합당 출범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런 가운데 박형준 혁통위원장 등 통합을 위해 나름대로 공헌한 인사들의 처우를 둘러싸고 또 한 번 파장이 예상된다. 이는 조원진, 김문수, 이정현, 홍문종 등 계륵과도 같은 극렬보수 인사들의 처리와도 맞물린 미묘한 문제다.

 


# 박형준 위원장

바람잡이 역할 톡톡, MB맨

 

▲ 박형준 (사진=문화저널21 DB)

 

금번 통합당 출범은 지난해 11월 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외침으로 시작됐고, 시종일관 한국당의 의도대로 진행됐다. 그러나 한국당이 전면에 나설 수 없는 곡절(새로운 보수당과의 관계)등을 고려해 MB맨 박형준 전 의원이 올해 1월 혁신통합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본격화됐다. 한국당이 기획하고 주도해 나갔으나, 박 위원장이 주도하는 형식을 취했다.

 

동아대 교수출신인 박형준은 유명화랑주 남편으로 17대 선거에서 한나라당(대표 박근혜)의 공천을 받아 부산 수영구에서 당선됐고,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홍보기획비서관, 정무수석 등을 역임하면서 MB맨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2011년 6월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재임하면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고, 결국 오 사장은 주민투표에서 패하여 시장직을 사퇴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시장직을 걸어라’라고 조언한 사실이 이후 일반인들에게까지 알려지는 바람에 비난을 받아 이후 부산지역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했고, 제19대 후반기 정의화 국회의장 시절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후 정치적 활로모색을 위해 암중모색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보수통합을 부르짖자 이를 위해 관계자들과 수차례 회합했고, 1월 초순 혁신통합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위원장에 취임했다. 이후 형식적으로 혁신위에서 보수통합에 관한 논의를 전반적으로 주도했고, 이즈음 언론에서 혁신위를 보수통합의 산파역으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내막은 한국당 주도였고, 박 위원장은 바람잡이 역할에 충실했다는게 혁신위 다수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어쨌든 통합당은 17일 공식 출범했고, 박 위원장은 창당 공신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특히 사회단체들의 지분갈등 등으로 14일 통준위에서 탈퇴 선언한 국민의소리당 대표인 장기표 통준위 공동위원장을 설득해 17일 통합당의 출범식에 참석시키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통합이 1차 마침표를 찍고 출범하면서 선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인 출신인 박형준 위원장의 거취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통합당 공천을 받아 부산지역에 출마해도 승리를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부산지역 여론을 종합해 보면 화랑주인 부인 조 모여사의 조형물 독식 의혹 논란 등으로 지역여론이 박 위원장에게 그렇게 호의적인 상황만은 아니다. 또한, 통합당의 비례대표 확보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에 입당할 상황은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박 위원장은 제21대 국회에 입성해야 한다. 당사자는 물론 황 교안 대표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더하여 부산지역 사정과 박 위원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부산출신 김형오 공관위원장의 수심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박 위원장이 혁통위를 출범시켜 움직인 것도 국회로 가기 위함이었다. 과연 박 위원장이 어떻게 국회 입성할지는 관심사로 지켜볼 만하다.

 


# 국민의소리당 장기표 대표

비운의 재야인사, 마지막 소원 이룰까

 

▲ 장기표 (사진=문화저널21 DB)

 

1945년생인 국민소리당 장기표 대표는 유신독재에 항거하다 1970∼1980년대 수차 투옥되는 등 고초를 다하였고, 뛰어난 절세의 이론가 겸 재야운동가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1990년부터 재야운동의 제도권 진입을 목표로 이재오, 김문수 등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하여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했다. 이후 재야운동과 거리를 두고 꾸준히 제도권 정계에 진입을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했다. 

 

이재오, 이부영, 김근태 등 오랜 운동권 재야 동지들이 대부분 성공적으로 제도 정치권계에 진입한 데 반해, 장기표 대표는 20년 넘는 지금까지 제도권 진입을 위한 힘든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권 진입을 위한 마지막 찬스로 생각하고 국민소리당 및 600여 재야단체를 대표한다는 명목으로 통준위에 재야 몫으로 공동위원장으로 선임되어 그간 회의에 꾸준히 참석하면서 나름대로 목소리 높여왔다.

 

통준위가 그간의 논의를 마치고 17일 출범을 예고하는 통준위 회의인 지난 14일 회의 종료 즈음에 ‘통합당 지도부 교체, 공관위 재야 몫 추가’ 주장 등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불만을 품고 공동위원장 사퇴를 선언했다. 당시 공동보조들 맞추던 재야인사 5명도 통추위원 사퇴를 선언했다. 

 

이에 박형준 공동위원장은 계속 참여를 설득하겠다면서 파장 진화에 나섰다. 사실 14일 회의로 통합신당창당의 산파역을 한 혁신위의 임무는 종료상태였다. 17일 통합당이 출범하기에 더는 통합신당을 위한 혁신위 회의는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통준위 공동위원장 사퇴로 17일 통합당 출범식 참여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박위원장 등의 설득으로 17일 출범식에 참석했다. 더는 기회가 없기에 국회입성이라는 30년 비원을 이루기 위해 76세(만74세)의 노구를 이끌고 참석했다. 이러한 장 대표를 바라보는 황교안 대표 및 김형오 위원장은 시선은 찹찹하다.

 

지역구도 없는 70대 중반의 (노)정치이론가를 도대체 어떻게 처리(예우)할 것인가? 미어터지는 비례대표에 끼어들 틈새는 있을 것인지? 더하여 중구난방의 통제 불능의 재야인사들은 어떻게? 현재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론의 전설이있던 비운의 장기표 대표는 어찌할 수 없는 통합당의 또 다른 계륵이다.

 


# 유승민 의원

낙동강오리알로 침몰할까, 후일기약의 여지

 

▲ 유승민 (사진=문화저널21 DB)

 

유승민 의원은 대구·경북지역 법조인이자 정치이었던 유수호 전 의원의 차남이다. 2000년 한나라당 여의도 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2004년 박근혜 대표에게 발탁되어 제17대 비례대표의원으로 등원했으며, 2007년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의 경선 당시 후보비서실장을 역임하는 등, 박근혜 키즈의 한사람이었다.

 

이후의 정치역정은 파란 그 자체였다.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재임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에 반기를 들어 박 대통령의 진노를 불러와 20대(2016년) 총선공천탈락 했으나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대구 동을)된 공천파동의 진앙지였다. 이후 입당하여 탄핵을 주도하면서 탈당하여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이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일정 득표(6.8%)를 했고, 2018년 2월 안철수와 연합하여 바른미래당을 창당하였으나, 이후 출범한 손학규 대표와의 갈등으로 연초 바른정당계 8명과 함께 탈당했다. 이후 통합당 출범을 앞둔 지난 9일 조건 없는 신설 합당의지를 천명하면서 불출마선언 했다. 

 

유승민 의원의 불출마 배경 등을 분석해 보면, 사실 어쩔 수 없는 백기 투항의 다름 아니다. 유승민 의원으로부터 실질적으로 파생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가결 등에 그간 한국당(통합당)의 주류였던 범 친박세력들은 유승민 의원에게 극도의 반감을 품고 있었다. 

 

이런 여파 등으로 지역구인 대구 동구 을의 지지여론조차 20%를 넘지 못했다. 그야말로 한국당에서 발붙일 여지가 없었다. 또한, 탈당한 새보수당 의원 모두 통합당에 합류하여 공천받기를 원하였기에, 유 의원의 태클은 짐만 될 뿐이었다. 이에 백기투항하면서 불출마 선언한 것이다.

 

불출마 선언 후 유 의원은 침묵 속에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 17일 통합당 출범식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에 통합당 지도부는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동선대위원장 제의 및 서울지역 출마권유와 유세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으나 황폐해진 유 의원의 심중을 고려할 때 실현 난망의 상황이다. 결국, 패전의 수장격인 유승민 의원에 대한 예우가 마지막 숙제다. 

 

이는 유 의원의 지원을 호소해야하는 통합당이나 정계은퇴 및 복귀의 갈림길에 내몰린 유 의원 모두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 오신환 의원, 그리고 새보수당 출신들

안착할 수 있을까? 시너지위해 배려 불가피

 

▲ 오신환 (사진=문화저널21 DB)

 

이번 통합당 출범의 핵심은 한국당과 새보수당의 재결합이다. 그 외 문제는 솔직히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과정에 지난 1월 유승민 등 8명이 바른미래당을 탈당함으로서 통합의 동력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2017년 1월 유승민 등 새누리당 탈당파 중 유승민 등은 복당하지 않고 2018년 2월 안철수계와 연합하여 바른미래당을 창당했다. 이후 같은 해 6월 안철수는 서울시장선거에서 3위로 패배하여 정계은퇴 선언한 후 독일로 출국했다. 

 

안철수 출국 후 손학규 체제가 등장했고, 2019년 4월부터 공수처 설치 및 공직선거법 개정 등을 둘러싸고 손학규의 당권파와 유승민의 비당권파간의 갈등이 가열되면서 당이 극심한 혼란 속에 빠졌다. 결국 손학규 축출에 실패한 바른정당계 8명은 지난 1월 탈당한 후, 지난 17일 통합당을 (공동)출범시켰다.

 

바른미래당 붕괴 및 이미지 훼손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오신환 바른미래당 전 원내대표이다. 패스트트랙 입안과정에 극렬히 항의했고, 이후 손 대표를 향해 극단적 언사를 퍼부으면서 바른미래당을 지긋지긋한 정당으로 덧칠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한국당으로 회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 외 보스격인 유승민 등, 바른정당계 8명 모두 바른미래당 파괴를 적극 추진했다.

 

결국 실패하여 탈당 및 신당창당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통합당을 출범시켰고, 통합당 출범으로 3∼5%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게 됐다. 남은 문제는 현역의원 및 주요 인사들의 지분정리이다. 이는 통합효과를 위한 마지막 관건이다.

 

새보수당 출신 중 전주의 정운천 의원은 미래한국당 이적으로 장래를 보장받은 상태이고, 최다선(5선)인 여주·양평의 정병국 의원은 경쟁력 등으로 공천 불가피 상황이다. 부산 해운대 갑 재선 하태경의원은 부산에서 지역구를 바꿔 공천해도 당선 유력상황하고, 그간 소극적이었던 서울 서초 갑의 이혜훈 의원은 득표력은 무시할 수 없어 고민지점이다. 

 

그 외 평택 을의 재선의원 유의동, 서울 관악 을의 재선의원 오신환, 서울 중구 성동 을의 초선 지상욱 의원은 득표력으로 고심 상황이나 결국 통합시너지 효과를 위해 구제케이스로 갈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보스 격인 유승민 의원의 처우만 남게 되는 상황이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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