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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④

[제1기] 전기통신의 뿌리(1870~1896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신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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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훈
기사입력 2020-03-26

[제1기] 전기통신의 뿌리(1870~1896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신 개통

 

19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 조선은 역사적 상황 속에 놓이게 되었다. 1876년 일본과 병자수호조약 체결로 조선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문호를 열게 되는 등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한 가운데 우리 민족의 근대화를 위한 노력중의 하나가 전기통신의 개설에 관한 것이었다. 조선 정부는 1883년 전국을 떠도는 정보원인 팔도의 보부상을 조직화시키기로 결정하고 ‘보부청’을 설립 하였다. 개항이후에도 보부상을 활용하려 했으나 국내·국제 정세에 대응하기엔 미흡했다.

 

1882년에 우정사라는 통신행정기구가 설치되면서 전신 및 우편 등 근대적인 통신제도를 시도하였다. 체신사업이 앞 시대 국가적 형태에서 근대국가의 기구 형태로 발전하는 전환점을 이룬 것은 1884년의 우정총국의 창설이라 할 수 있다. 우정총국은 1884년 4월 22일 고종의 명령에 따라 설립되었다. 우정총국 설립을 지시한 이날이 지금의 '정보통신의 날' 이다. 

 

우편은 군사와 더불어 고종이 가장 앞서 개혁을 시도했던 과제 중 하나다. 이로써 마침내 우편사업의 시작을 보게 되었다. 유럽의 근대적인 제도 수용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개혁을 통해 근대국가로 나가고자 한 개화운동의 결실이다. 하지만 1884년 갑신정변 등 정치적 변동으로 인하여 우정총국과 근대 우편제도는 개화파 몰락과 함께 체신사업의 개설은 그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공백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전신이다.

 

▲ 모스부호를 타전하는 수동전신기 (사진제공=KT사료) 


갑신정변 다음 해인 1885년 9월 28일 한성-제물포간을 연결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신이 개통되어 전기통신사업이 시작되었다. 전기통신은 예전의 봉수제도와는 비교되지 못할 정도로 신속 정확하게 정보를 간편하게 전달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기통신사업은 도입 처음부터 나라가 겪어야 했던 외세 침략의 운명과 함께 여러 가지로 뒤얽힌 복잡한 사정과 어려운 일을 당해야 했다. 

 

통신의 중요성을 먼저 깨달은 일본은 대륙 침략의 야망을 실현하는 수단과 방법의 하나로 조선에 전기통신을 앞장세웠다. 1883년 부산과 일본 나가사키 간을 연결하는 해저전선 선로를 설치하고 부산에 일본전신국을 개설함으로써 한국 침략을 본격화하였다.

 

한편, 1885년 9월 28일 한성전보총국의 개국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전신업무는 청나라가 제공한 전선가설 비용과 기술로 이루어졌다. 청나라는 경제면에서 일본보다 뒤떨어진 부분을 전기통신 분야에서 회복해 일본의 한국 진출을 막으려 했다. 종주국으로서 조선과의 통신연락을 긴밀히 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같은 해 10월 8일 제물포를 기점으로 한성과 평양을 거쳐 의주에서 청나라 전신선과 연결하는 서로전신선을 가설하였다. 

 

한성전보총국의 운영은 화전국이라 하여 청나라 사람이 맡아 했다. 서로전신선의 개통으로 청나라를 거쳐 유럽까지 연락이 가능한 국제전신 업무가 시작되었다. 1884년 4월에는 조선의 자주적 의사에 의해 조선전보총국이 창설 개국되었다. 1888년 7월 조선 정부의 주관 하에 남로전신선이 개설되었다. 1893년 8월 17일 조선전보총국이 전보총국으로 개편되면서 갑신정변 이후 중단되었던 우편업무가 흡수 통합되었다. 이 때가 오늘날 체신사업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전신선의 개설 이래 약10년 간 발전하는 과정에 있던 전신사업은 1894년 청일전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본군은 전신선을 군전용으로 독점 사용했다. 이로 말미암아 조선 전보총국 관할의 전신사업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일본군은 1896년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세 나라가 일본으로 하여금 랴오둥을 청나라에 돌려주도록 강하게 제약을 가한 삼국간섭과, 고종과 세자가 러시아 공관으로 옮겨 거처한 ‘아관파천’ 등으로 일본의 세력이 크게 약해지게 되었다. 1900년 9월 29일 당시 농상공부에 소속되었던 통신국을 통신원으로 승격시킴으로써 체신관서의 독립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세훈 

KT 시니어 컨설턴트

한국경제문화연구원 ICT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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