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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칼럼] 신안 자은도 피아노 섬 1004 피아노 축제

그 섬에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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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기사입력 2023-10-23 [14:10]

 

▲ 피아노 1004 콘서트가 펼쳐진 신안 자은도 야외 무대 

 

남도가 살아 났다. 원형 문화가 꿈틀거렸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니 귀경하는 동안 내내 그 섬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신안은 도자기 유물 보물섬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섬을 처음갔다. 하루면 다 돌 수 있을까? 무지는 일시에 깨어졌다. 1004섬, 그래서 서울의 22배 크기로 구성된 다도해이다. 이번 피아노섬 축제는 무엇을 남겼나? 전야제가 바람탓에 취소되면서 온 종일 섬의 여러 곳을 보았다. 섬의 대서사. 잔잔한 바다 교향곡이 들렸다. 반짝이는 모래와 물결에서 영감이 피어 올랐다. 천혜의 섬, 앞으로 창작 레지던스 최적의 공간이 될수도 있겠구나란 직감이 들었다. 

 

첫째 날 정상급 피아니스트들을 비롯해 피아노 명곡 레퍼토리를 잔뜩 준비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듣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연주자는 물론 청중, 축제 전반에 흠집으로 남았지만 돌풍으로 빚어질 안전을 고려한 초치이니 어찌하겠는가.

 

둘째날 축제가 펼쳐졌다. 임동창 예술감독이 섬을 수도 없이 왕래하며 치밀하게 짠 멋진 기획의 프로젝트 축제였다. 축제 덕분에 신명과 흥의 남도가 살아 났다. 원형 문화가 꿈틀거렸고, 생명의 춤으로 승화했다. 임동창의 순발력과 창의성이 뿜어내면서  애초부터 '틀'의 경계가 없는 '판'의 달인은 자유자재로운 솜씨로 요리해 나갔다. 서양음악과 우리 음악이 근본에서부터 다르고 우리에겐 이것이  DNA란 것을 확인시켰다. 

 

피아노 104대 열 손가락 1004는 그래서 최초의 피아노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이다. 섬 마을 아이들이 아리랑을 합창하자 주민들은 울컥했다. 주제는 어디까지나 우리 원형(原形), 우리 전통, 그리고 현대적 각색이었다. 쑥대머리와 돌아와요 부산항의 크로스오버는 아이디어의 백미였다. 그러니까 기침도 못하고, 박수도 언제 쳐야할지 몰라 주눅이 들었던 서양 클래식과 극장이란 틀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갔다. 여창, 남창, 판소리의 눈 대목과 춤은 우리의 굳은 어깨를 풀어주었다. 신명과 흥의 가락에 북과 꽹가리는 낮은 자은도 바다를  취하게 했다. 92세의 이생강 명인의 대금에선 고음부가 페부를 찔렀다. 죽은 사람도 벌떡 일어 세울 것 같은 내공은 서양 비르투오조가 넘볼 수 없는 우리 예술의 경지였다. 임동창 문하의 타타랑이 전체의 중심을 끌어 가면서 바람에 움츠린 가슴을 한껏 데워 주었다. 축제는 많은 것을 보여주었고,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서양음악 주류에서 역주도성의 K 아츠 시대 열렸다  

 

수백년 전 마차타던 시절의 음악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전부로 알고 줄서는 풍토에서는 벗어나야 하는 문명사적 변화가 오고 있다. 우리 것에 더욱 자신감을 갖고 K아츠, K콘텐츠 시대로 주도성을 확보해야 할 타이밍이다. 콩쿠르 딴 것만으로 문화 강국이라 생각하는 착각부터 허물어야 한다. 문화가 셍활에 깊숙히 녹아 들어 서야 한다. 피자, 스파게티, 등심 스테이크가 주식이 될수는 없다. 가난한 시절 동경이었던 것들이 하나씩 근본을 다시 찾게 한다.우리 된장, 김치찌게,비빔밥, 김밥을 외국인들이 줄서서 먹는 뉴스가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인가?. 때문에 내수 시장인 우리의 환경도 큰 변화가 필요하다. 40~50년 전에 설정된 공공예술 기관의 기능 역시 둔감한 성장이어서 되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은 노조가 수문장이 되어 향기 잃은 시든 꽃을 봐야 하고, 밖은 배가 고파 북 칠 힘도 없어 타 직종을 찾아 헤메이는 현실, 예술가들의 일자리 창출 문제는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 한국의 예술 성장이 이렇게 멈출 것인가?   

한국의 예술 성장이 이렇게 멈출 것인가?

 

결국 K콘텐츠 명품 수출로 가는 길도 답은 디테일이다. 따라서 나눠주는 것 구경만 하는 방방곡곡이나 중앙공급식 하달 편의점 문화가 아닌 자역의 뿌리를 키우는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토산품으로 충분히 맞을 낼수 있다는 자신감을 획득한 것이 이번 축제의 최대 결실이다. 민요와 민속으로 바르토크나 코다이를 넘어선 한국 K클래식이 K팝, 방탄의 넥스트 버전이 될 것이기에 장기적 대응이 필요하다.대중음악의 특성상 기간이  지나면 패턴이 딴곳으로 옮겨간다. 비틀즈가 어마했지민 지금은 주류가 아니듯이... K팝에 빠졌던 젊은이들 중년이 되면 원형 문화를 보고 싶어한다. 지역이 글로컬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문화의 달, 유인촌 장관의 공식 첫 행보에 관객들 환호  

 

때마침 '문화의 달'.우연하게 축제 일정과 맞물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첫 공식 행사라는 코멘트에 청중들은 환호했고 들떴다.‘새 판을 짜야 한다’, 책임은 내가 책임을 질터이니 저지르라’ 이 주문들은 예술가에 더할 수 없는 응원이다. 경직되고, 소신없는 외소한 환경이 아니라 자유와 창의가 꿑틀대는 갯펄을 만들어야 한다. 답이 즉석에서 축제로 펼쳐졌으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 신명에 취한 청중들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삶과 인생에 문화가 밥이 되는 정책 구현해야 

 

문화섬을 만들어 가고 있는 박우량 군수의 탁월한 리더십은 문화의 힘이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었다. 앞으로 변방의 북소리에 궁(宮)의 사람들이 귀 귀울어야 한다. 세계적인 제임스 터렐(James Turreel) 작가의 세미나도 큰 감명을 주었다. 외지 사람들을 대하는 이곳 사람들의 따뜻한 정성이 섬을 더 여유롭게 보이게 했다. 도시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섬은 멀다. 그러나 먼 곳에 존재하는 것에서 현실이 닿지 못한 상상력과 치유를 캔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니 그 섬으로 주소지를 옮기고 싶다는 유혹을 준 피아노 섬 콘서트가 변화의 물꼬를 텄다. 우리네 삶이 팍팍할수록 고유의 색깔로, 놀이로, 즐거웠으면 한다. 게임에 빠지거나 상실에 젖었거나, 외로운 이들이여 섬을 친구로 삼으라. 그 상상의 힘이 다시 당신을 세울 것이다. 동시에 수만명의 건반을 잃은 피아니스트들이 걸을 수 있기 바란다. 그래서 내년 축제가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 임동창 예술감독의 달인의 경지를 펼쳐 보인 피아노 축제

 

탁계석 음악평론가

한국예술비평가협회장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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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ja 23/10/23 [16:54]
와~~~2023문화의 달~~저도 갔었습니다. 현장에서 받은 울렁 거린 감동이 탁계석님의 글로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정리되었어요~~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ShockedandAmazed 23/10/23 [17:15]
이번에 신안에 대한 인상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무의식 어디에선가 자리잡은 '예술은 서초동에 있지 어떻게 외딴 섬 같은 데 있겠어 '라는 고정관념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동시에 우리 예술, 우리 음악에 대한 자부심은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어쩌면 한평생 우리 예술에 대한 열등감을 지고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항상 더 많이 들리고, 더 위에 있는 건 우리 소리가 아닌 그들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신안 문화의달 공연은 우리와 그들이 하나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 것이 그들을 아우르고 리드하고 있었습니다.

임동창 예술감독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앞으로 이런 공연 많이 만들어주십시오, 좇아다니겠습니다.
세종대왕 23/10/25 [20:24]
너무 좋은 글에 옥의 티가 되지 않도록 오타만 수정해주%!면참 좋겠습니다!
Luhruh 23/10/25 [22:56]
저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대학 가서는 작곡을 전공했습니다. 2010년도 서울대에 수석으로 입학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막막함을 느꼈어요.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 그렇게 좋아했던 음악인데, 연습실에 가서 피아노 의자에 앉으면 끝없는 허전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수만명의 건반을 잃은 피아니스트들이 걸을 수 있기 바란다" 이 말씀이 정말 눈물날 만큼 와닿아요. 저는 저만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우연히 기사를 보고 드는 생각이.. 저 말고도 방황하는 전공자들이 많을 거 같네요..ㅎㅎ 음악이 좋아 시작했고.. 수많은 시간을.. 수많은 곡들을 공부한.. 친구같은 사람들..
 다들 어찌 살고 있는지.. 그 중에는 어릴 때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했던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많겠지요.. 저 역시도 다르지 않아요.

그러다 문득 저는 서른살에 새로운 길을 가기 시작했어요. 우리 음악, 즉 국악에 눈을 떴어요. 새로움을 찾아 옆으로 다니는 가벼움이 아닌, 정말 깊은 뿌리를 만나는 행복함으로 걸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탁계석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원형 문화의 꿈틀거림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탁계석 선생님의 글이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뚜벅뚜벅 잘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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