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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름다움이 지닌 참담한 비극,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

작은 공간, 단 두 명의 배우, 충만한 비극과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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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경 기자
기사입력 2017-08-15

코란에 묘사된 천국이 지상에 구현됐다. 완벽한 대칭적 균형, 서로 다른 건축 요소와 자재들의 미학적 결합, 태양과 달빛을 흡수하며 매순간 오묘하게 빛나는 새하얀 대리석, 여기에 무굴제국 황제 샤자한의 러브스토리가 더해지며 타지마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징’이 됐다.

 

이 건축물이 완성된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나기 하루 전, 두 명의 근위병이 타지마할을 등지고 서 있다. 오랜 친구 휴마윤과 바불이다. 위대하고 자애로우며 전능한 황제에게 충성해야하는 이 보초병들은, 타지마할처럼 아름다운 것을 다시는 만들 수 없도록 하라는 황제의 명령을 받아 건축에 참여했던 2만 명의 손목을 자르게 된다. 타지마할은 세상일에 초연한 듯 고요하게 찬란한데, 아름다움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이 두 친구는 비참해져야하는가 아니면 잊어버려야하는가.

 

▲  바불 역의 배우 김종구(왼쪽)와 휴마윤 역의 조성윤 (사진제공=달컴퍼니)

 

침묵해야한다는 명령을 어기고 대화를 이어가며 보초를 서던 휴마윤과 바불은 역시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 처음으로 성벽 안에 있는 타지마할을 본다. 압도의 경험 바로 다음 장면은 핏물 가득한 곳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 앉아있는 휴마윤과 바불이다. 이들은 다시 일어나 참상의 현장을 스스로 청소해야 한다. 원래 선택권은 없었다. 신과 같은 절대권력 앞에서 도덕적 올바름에 대한 사유는 무의미해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인물들은 이제 회복되지 않는 허약한 자신을 탓하거나 세상의 부조리함을 원망해야할 따름이다.

 

휴마윤은 이것이 명령이었음을 되새기며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바불은 2만 명의 사람과 4만 개의 손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한다. 아름다움이 죽어간다는 것, 그러다 언젠가는 완전히 없어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절망감에 휩싸인다. 오랜 시간 타지마할을 위해 자신을 바치고도 손목이 잘려야했던 ‘피해자’들보다 강압에 의해 타인의 손을 잘라야하는 근위병의 비극은 좀 더 아이러니하다. 내 손이 아님에 다행이고 이후 전례 없는 승진의 기회가 있지만 마냥 긍정할 수도 없다.

 

아름다울수록 치명적인 비극을 내포하고 있음을 경험한 바불은 꿈을 꾼다. 비행기를 타고 몰려오는 적들은 멀리에서도 눈에 띄는 타지마할을 통해 위치를 찾아내려 한다. 이쪽에서는 거대한 검은 천으로 타지마할을 덮어 숨기려 하지만 모두 손이 없다. 두 친구가 잘라낸 것은 손이 아니라 인간 가치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존엄이자 상식, 즉 ‘인간다움’이다. 권력이 행하는 폭력의 참담함과 함께 아름다움의 본질이 흔들린다.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 보다 그 사건에 대책 없이 내던져진 작고 선량한 인간이다. 적어도 이런 역사에 관해서는 영원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고 그저 관광객일 따름인 우리는 무력해진다. 이쯤이면 되었다 싶을 때 더 큰 비극이 찾아오고, 휴마윤과 바불은 이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연극 속 아름다움은 살아 있다. 빨간가슴새, 하늘에서 빛나는 별, 이 별과 달과 신을 향해 날아가는 거대한 가마새(비행기)에 대한 상상, 3일 동안 숲에서 만들었던 뗏목, 차(茶)로 만들어진 다양한 색의 비, 서로를 ‘바이(형제)’라고 부르며 자신이 생각한 발명품을 이야기하던 그 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남몰래 뒤를 돌아 처음으로 타지마할을 봤을 때의 경외감 등이 반짝거린다. 작은 공간, 단 두 명의 배우뿐이지만 비극과 아름다움이 충만하다. 라지프 조셉 작/ 이종석 연출/ 김종구, 조성윤, 최재림, 이상이 출연/ 2017년 8월 1일부터 10월 15일까지/ 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문화저널21 이영경 기자 ly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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