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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시] 불조심 포스터 /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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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선
기사입력 2017-11-06

불조심 포스터

 

  1

  불이 혀를 내밀어 집을 삼키는 그림을 그릴 거야 우리

집이 그렇게 타 버렸으니까. 잘 그릴 수 있어 불에 타 녹

아 버린 지구본을 들고 울던 봄날, 라면을 끓이려 부루스

타를 켜면 푸른 불꽃에서 태어난  새들이 내  눈을 쪼아

대곤 했다

 

  불을 더 빨갛게 그리라니까, 선생님이 뺨을 때렸다 화

끈거리는 뺨 위로 햇살이 눌어붙었다 상장을 받아 온 나

를 할아버지는 기사 식당에 데려 갔다 접시 위 돈가스가

아프리카 대륙처럼 보였다  나 이담에 아프리카에 갈래,

할아버지가 내 뺨을 어루만졌다

 

  그리운 이들은 모두 아프리카에 있다고, 누군가 그랬

다 그게 거짓말 이란 걸 알았을 때 할아버지는 불 속에

누워 잠들었다 어른들이 돌아가며 내 뺨을 만졌고 뺨을

만지는 손가락들이 크레파스가 되어 그림을 그렸다 표정

이 생길 때마다 뺨이 화끈거렸다 

 

# “불조심”에 예민한 탓에 까칠하고 유난떠는 이웃이란 뒷담화를 듣고 산다. 산 중턱에 집을 짓고 제일 먼저 든 걱정은 산불이었다. 이웃과 위화감을 줄이려 걸어 잠그는 대문을 만들지 않고 기둥만으로 경계를 대신했더니, 아무 때나 드나들며 버리고 가는 담배꽁초 때문에 신경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참다못해 담배꽁초는 절대로 버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자 그 다음날부터 이웃들 표정이 사뭇 싸늘해졌다. 

  

늦가을 단풍이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불”을 더욱 “조심”해야 하는 계절이다. 산행하는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불씨 하나가 온 산을 불태울 수 있다. 불은 소중하고 그리운 것들을 소멸시키기도 한다. “불에 타 녹/아 버린 지구본을 들고 울던” 유년시절의 “봄날”은 청년이 된 시인의 의식, 무의식 속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불의 혀”는 삶의 냄새가 배여 있던 소중한 것들을 삼켜버린다. ‘꺼진 불도 다시 한 번 살피자’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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