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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시] 명필名筆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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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선
기사입력 2017-12-18

명필名筆

 

필생의 전시회 준비를 끝내고 막 서실을 나서던 겨울

밤이었다.

 

-군 고구마 사시오-

 

군고구마장수 리어카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던 삐뚤빼

뚤한 글씨체 앞에서 걸음을 뗄 수 없었다.

 

자신의 글씨가 오늘따라 눈에 들오지 않았다.

 

어느 서예가가 문짝도 없는 달동네로 잠적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삐뚤빼뚤한 그 글씨체 하나만을 죽자사자 연습 중이라는 것이다.

 

# “-군 고구마 사시오-” 간절한 마음이 가득 담긴 소리가 마음을 흔든다. “삐뚤빼뚤”한 글씨 속에는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언제 올지도 모르는 손님을 위해 수시로 고구마를 뒤집어 놓는 아저씨의 퍼런 입술이 바싹 말라있는 것이 보인다. 군고구마장수 아저씨는 고정급도 없고, 쉬는 시간도 없고, 정해진 퇴근시간도 없다. 운이 좋아 군고구마가 일찍 팔리는 시간이 가족에게 돌아 갈 수 있는 시간이다.

 

아마도 산동네이거나 지하 월세 방 쯤에서 기다리는 아내는 식은 된장찌개를 연신 다시 데우며, 찬바람 부는 길거리에서 고구마를 굽고 있는 남편과 숙제하는 자녀의 등 뒤에서 내일을 그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고, 시는 마음의 소리’ 라고 한다. 혹한의 겨울밤 군고구마 장수의 고단한 삶과 마주한 시인은 화환의 축하를 받으며 값비싼 족자와 액자 속에 담겨 전시되는 글씨보다는 아픈 삶의 현장에서 “삐뚤빼뚤” 하지만 간절한 마음의 소리가 담긴 군고구마장수의 글씨체에서 ‘고졸’한 “명필”을 보는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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