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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시] 노동 / 이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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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선
기사입력 2018-01-15

노동

 

진창길 걸어온 양말이

딱딱한 허공을 끼워 신는다

찬바람이 옷자락마다 서리조각을 꽂아 넣고

마당에 성긴 눈을 훑고 간다

텅텅 목어처럼 얼어붙는 소맷자락들

닿지 않는 지면을 향해 팔을 늘이고 있다

올올마다 들이찬 먼지를 씻어낼 때만 해도

강추위가 오래가리라 짐작 못 했다

구들에 언 잔등을 녹이며

쉬 마르지 않는 빨래들 아래

일손도 얼어붙은 한파를 걱정한다

황태 같은 작업복 가방에 넣고

체감온도로 달궈진 검붉은 얼굴이

이른 새벽 대문을 나선다

저 멀리 성에 낀 창을

푸른 입김으로 둥글게 녹여내고 있을 용역사무실

인적 없는 눈길 위에

빨랫줄 같은 발자국 길게 이어진다

 

# 한파가 몰아닥친 겨울, 저임금 노동자 ‘해고 통지서’에 싸인 한 손으로 따끈한 찻잔을 들고 아늑한 거실에 앉아서 그들도 음악을 들었을까? 수많은 목숨을 빼앗는 서류에 싸인 한 손으로 우아하게 피아노를 치던 챨리 채플린의 영화 ‘독재자’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해고 통지서 한 장 한 장 마다 들어 있는 타인의 삶의 무게를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직장을 잃고,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진 아득함의 질량을 알기나 할까.  

 

따스한 거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는 자신의 안락한 삶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시작조건’이 다른 자본주의 삶에선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오늘도 “이른 새벽” “용역사무실” 앞에 “빨랫줄 같은 발자국”을 “길게” 이어 붙이고, 하루치 노동에 차출되기를 기다리는 일용직 노동자들. “목어처럼 얼어붙는 소맷자락”과 “옷자락마다 서리조각을 꽂아 넣고”, 시간당 얼마에 인생을 팔아야 하는 ‘노동의 배신’에도 전전긍긍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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