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 아침의 시] 턱받이 / 이정록

가 -가 +

서대선
기사입력 2018-03-13

턱받이

 

흙받이는 부서지고 흘러내려도 흙의 무게를 견디는 것

물받이는 넘치고 넘쳐도 떨어지는 물의 힘을 감싸 안는 것

재받이는 숯불에 데어도 불티가 날아가지 않도록 재우는 것

화살받이는 화살처럼 쏟아지는 비난에 과녁이 되어주는 것

총알받이는 날아오는 총알에 앞장서서 심장을 내어주는 것

씨받이는 그 어떤 것보다도 무겁고 슬프고 어둡고 뼈아픈 것

턱받이는 아이의 턱에서 침과 음식을 조금씩 받아먹는 것

아픈 사람과 노인의 턱밑 낭떠러지를 지키는 것

웃는 아기의 꽃가루받이, 아픈 사람의 양지받이가 되는 것

첫 이유식부터 마지막 밥상까지 함께 하는 숨길 위 꽃밭

 

# ‘넌 학생이야. 다른 친구들 앞에서 콧물 흘리거나, 음식을 흘리거나, 더러운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거야.’ 초등학교 입학식 날 아침, 어머니께서는 부드러운 흰 천으로 길고 반듯하게 접은 “턱받이”를 내 앞 가슴에 커다란 옷핀으로 고정시켜 주셨다. 나는 어머니께서 달아주신 “턱받이”로 입도 닦고, 콧물도 닦고, 미술시간 손가락에 묻은 크레파스 자국도 닦아내었고, 달리기 하다 넘어져 묻은 흙도 닦았다. 나의 유년 사회생활을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단정하고 깔끔하게 지날 수 있도록 도와준 “턱받이”는 내재화 되어 내 정신의 “턱받이”가 되었다. 

 

내재화(Internalization)란 부모의 심리적 기능을 받아들여 자신의 심리기능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기능은 성장 발달과정에서 교육이나 가치관, 도덕, 윤리, 관습, 법, 역사, 타인등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정신구조를 구축하는 참조준거로 활용한다. “흙받이” “물받이” “재받이” “턱받이”의 정신을 내재화 한 행동들은 타인을 배려하고 자존감을 강화 시키는 정신작용을 촉진시킨다. 오로지 신념하나로 꿈 하나 이루려고, 존경심과 열정을 받친 사람들에게 폭력과, 추행도 모자라 인간의 존엄성마저 훼손한 자들은 무엇을 내재화하며 어른이 된 걸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최신기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문화저널2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