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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동성애는 하나의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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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기사입력 2018-09-10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성경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오늘의 세계에서 당면한 가장 난처한 문제 중 하나가 동성애가 아닌가 한다.

 

구약 성경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도 분명히 동성애를 큰 죄악으로 보고 있다. 거기다가 비그리스도인들 상당수도 동성애는 미풍양속에 어긋나며 자연스럽지 못하고, 순수하고 정상적인 사랑이 아니고, 동성애자가 늘어나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가정이 생겨날 것이라 하여 반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동성애자들을 비도덕적으로 보지 않을 뿐 아니라 마땅히 보호해야 할 소수자로 보고, 그들을 차별대우하는 것은 장애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 못지않게 정의에 어긋나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한다. 

 

거기다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기독교 안에서도 동성애를 인정하는 교단과 신학자들이 있고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할 뿐 아니라 동성 결혼식을 주례하며 심지어 동성 간 결혼한 사람들이 성직을 갖는 것도 허용하는 교단이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살인을 정죄하고 금지하듯 기독교 교파나 신학자들이 모두 동성애를 반대한다면 그나마 입장 설정이 쉬울 텐데 그렇지 않으니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처신이 더욱 난감해지는 것이다. 

 

동성애를 인정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는 주로 동성애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면 그런 경향을 가진 사람들을 비판할 수 없다. 자신의 책임이 아닌 일로 비난 받는 것은 억울하다. 칸트가 주장했듯 모든 당위(當爲, Sollen) 혹은 책임은 가능성 (Können)을 전제한다. 김 씨가 날지 못한다 하여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비록 동성애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비정상적이라 하더라도 선천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라면 아무도 그것을 비난하거나 비판할 수 없다. 그것은 여자를 차별대우하는 것 못지않은 잘못일 것이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입장은 동성애가 후천적이란 전제에 근거한다. 비정상적인 양육, 좋지 못한 영향, 잘못된 문화, 건전하지 못한 상상 등 비유전적인 원인 때문에 생겨나는 성향이라고 보는 것이다. 마치 도박에 중독이 된 것같이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충동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취급하는 것이다. 도박 중독자는 자신을 제어할 수 없지만 그렇게 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동성애도 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이 문제가 확실하게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사회에 따라서 동성애자의 수가 다른 것을 보면 사회문화적 요소가 작용하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동성애를 자연에 어긋나는 것으로 취급한 과거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동성애자가 없었거나 거의 없었다는 사실, 영국 같은 나라는 청소년들을 성별로 따로 수용하는 기숙사가 많기에 다른 나라들보다 동성애자가 많다는 사실 등을 고려하면 동성애가 상당할 정도로 후천적이란 주장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동성애는 생물학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상당수에 이르기 때문에 비전문가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동성애가 선천적이란 것이 확실하다면 교회는 어떻게 이에 대처할 것인가?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성경을 비과학적이고 케케묵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고 무시해 버릴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하면 성경의 다른 가르침도 권위를 상당할 정도로 상실하게 될 것이고, 복음의 기본 요소들도 상대화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대안은 여자는 기도나 예언을 할 때 반드시 머리에 무엇을 써야 한다는 고린도전서 11장의 지적처럼 성경의 동성애 금지도 그 시대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 시대에는 금지했지만, 오늘날은 허용해도 괜찮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해석은 별로 자연스럽지 못하다. 오늘날 여자들은 중요한 행사에 반드시 머리에 무엇을 써야 한다는 주장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그러므로 그 두 가지를 비슷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보다 조금 덜 부자연스런 해결은 동성애를 바울 사도가 가졌던 ‘육체의 가시’(고후 12:7)와 비슷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바울의 가시가 무엇이었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것은 고통스러운 것이었고 바울이 원하지 않았던 것임은 분명하다. 바울은 그것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았고, 바울은 일생 그 가시를 육체에 지닌 채 살아야 했다. 

 

만약 동성애가 선천적이고 그리스도인이 그런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그는 그 충동이 요구하는 대로 동성과 결혼하거나 성관계를 가질 것이 아니라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그대로 품고 고통을 참은 것처럼 그런 성향을 억제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주위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동성애자들을 정죄하거나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차별대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스러운 육체의 ‘가시’를 참고 견디는 사람으로 동정하고 이해하며 위로해야 한다.

 

만약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면 성경의 권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대안은 이것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동성애의 원인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지금에라도 그리스도인들은 동성애자들을 정죄하고 멀리하기보다는 그들의 고통에 동정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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