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인터뷰]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생명의전화’다

한국생명의전화 하상훈 원장 인터뷰…자살예방 위해선 모두가 힘써야

가 -가 +

박영주 기자
기사입력 2018-09-13

 

▲ 한강대교에 설치된 'SOS 생명의전화'. 생명의전화는 자살위험자가 상담을 하는 창구임과 동시에 자살시도자를 목격한 시민이 신고를 하는 구조전화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다.  © 박영주 기자

 

대한민국은 OECD 가입국 중에서 13년째 ‘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나라다. 2017년 통계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자살율은 25.6명에 달하며 하루 평균으로는 36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명을 끊고 있다. 

 

정신건강·경제문제·가정문제 등 자살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자살을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사람이 자살을 부추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것 역시 ‘사람’이다. 어려움을 호소할 곳이 없어 고민하는 사람들은 속으로 끊임없이 ‘누군가 도와주세요’라고 외친다. 그러한 간절함은 죽음이 목전에 놓인 순간에 더욱 강렬해진다.  

 

마지막을 결심한 이들에게, 정말 마지막으로 손을 뻗어주는 존재 중 하나가 한강다리에 설치된 ‘SOS 생명의전화’다.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라는 짧은 한마디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이들에게 큰 힘을 안겨준다.  

 

▲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생명의전화에서 하상훈 원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박영주 기자

 

단절된 대한민국,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해

자살예방 위해선 주변사람 도움이 절실…자살신호 캐치해야

“인생은 혼자선 갈 수 없다. 서로 의지하며 걸어야 완주 가능”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생명의전화에서 만난 하상훈 원장은 “우리나라는 너무 비정하고 단절돼 있다.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친구‧이웃 같은 가까운 사람의 역할이 참 중요한데,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없지 않느냐. 힘든 사람들에게는 ‘괜찮아, 내가 옆에 있어’라는 말 한마디가 살아갈 힘을 준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한강다리에 설치된 ‘SOS 생명의전화’는 현재 2017년 기준으로 서울시 관할 19개의 한강다리에 총 74대가 설치돼 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많이들 알고 있지만 생명의전화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지원하고 민간단체인 생명의 전화가 운영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지난 7년 동안 약 6500건에 달하는 위기상담 전화가 걸려왔으며, 1077명에 달하는 자살고위험자들이 투신직전에 생명의전화를 통해 구조됐다. 한강다리에 설치된 SOS 생명의전화는 한강교량에서의 자살 투신 사망자를 2011년 95명에서 2017년 13명으로 크게 감소시키는데 기여했다. 

 

하 원장은 “대한민국은 자살로 인한 고통이 매우 큰 나라”라며 “2016년 기준으로 자살로 인해 사망한 사람만 연간 1만3092명에 달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이의 10~20배인 13만명에서 26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누군가 자살을 하게 되면 자살유가족이나 지인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는 경우가 많은데, 한명의 자살로 인한 자살유가족 수가 평균 6명인 것을 생각하면 연간 약 8만여명의 사람들이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살자, 자살시도자, 자살 유가족들, 자살문제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는 주변 사람들까지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자살로 인해서 홍역을 앓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생명의전화'는 생과 사의 기로에 선 이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하 원장은 생명의전화가 한강다리에서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사람들이 자살고위험자들에게 생명의전화로서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 원장은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10명 중 9명은 특정한 사인을 보낸다. 여기에는 언어적 사인과 행동적 사인·상황적사인이 있다”며 “언어적 사인은 죽고싶다거나 포기하고 싶다, 이제 한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경우다. 행동적 사인은 자주 울거나 위축되고, 좋아하던 사회활동을 중단하거나 신변을 정리하고, 자살사이트를 탐닉하거나 SNS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유언처럼 남기는 경우가 있다. 상황적 사인은 중요한 상실경험, 성적·신체적 폭력, 실직이나 진학실패, 법정에 연루되는 것 같은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살시도자들이 나를 도와달라는 뜻으로 보내는 경고신호에 제때 응답을 해주면 자살로까지 이어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 서울 성북구 한국생명의전화 본사에 있는 차트. 주로 대인관계나 취업·학업 문제로 상담을 하는 이들이 많았으며, 고등학생과 20~29세의 청년들이 한강다리에서 '생명의 전화'를 드는 경우가 많았다. ©박영주 기자

 

생명의 전화를 통해 상담을 하는 이들은 대인관계에 따른 고민을 안고 있거나, 취업·학업 문제로 절망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수능으로 인한 학업스트레스를 받는 고등학생이나, 취업 고민을 안고 있는 20대 청년들이 한강 다리에서 생명의전화를 드는 경우가 많았다.  

  

타인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겠지만,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응원의 메시지는 힘든 사람들이 '자살'을 '살자'로 바꿀 수 있도록 힘을 준다. 나 혼자서만 힘든게 아니라는 생각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준다. 

 

하 원장은 자살예방은 자살시도자 개인이 생각을 바꿔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주변사람들이 함께 도와줘야만 가능한 일이라 강조했다. 

 

그는 최근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진행된 '생명사랑 밤길걷기' 행사에 대해 언급하며 “36km 코스를 걷다보면 끝날 즈음에 빌딩 숲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 우리 인생도 힘든 밤길을 걷는 것 같지만 내일의 해가 떠오른다”고 말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울러 “어둡고 힘든 밤길은 결코 혼자서는 걸어갈 수 없다. 36km라는 코스가 길고 힘들지만, 서로의 발걸음에 의지하고 주변사람들과 함께 응원해가면서 걸어야만 비로소 완주할 수 있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혼자 걸어가는 것이 힘들다면 주변을 둘러보길 바란다. 그리고 힘들지 않느냐고 서로 응원해주면서 걸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 한강대교에 설치돼 있는 '생명의전화' © 박영주 기자

 

자살예방, 정부도 나서야…교육 강화 주문

文정부 들어 자살예방활동 구체화돼…민관협의체 출범 

“우리의 작은 관심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생명의전화가 자살 직전에 놓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생명의전화만으로는 자살예방을 하기에 역부족이다. 하 원장은 대한민국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자살예방교육을 받고 정부와 민간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 원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자살예방활동에 대한 정부의 움직임이 보다 실효적이고 구체화되고 있다”며 “국정과제 세부과제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조성 활동이 추가된데 이어 1월에는 국가 자살예방 행동계획이 발표되고, 2월에는 보건복지부에 자살예방정책과가 신설됐다. 5월에는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체가 구성됐다. 늦은 감은 있지만 자살예방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호평했다.  

 

지난 5월10일 꾸려진 민관협의체에는 종교·노사단체·경제계·언론계·전문가단체·협력기관 등 35곳의 민간 부문과 함께 6곳의 정부 부처가 참여했다. 자살문제 해결을 위해 민관이 함께 노력하겠다는 의지로 협의체가 본격적으로 꾸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언론을 향해서도 “자살문제는 개인이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언론에서도 자살을 미화한다든지 자살의 방법과 수단을 구체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되도록 지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하 원장은 생명존중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시행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현재 삼성생명의 지원으로 한국생명의전화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수행하는 생명존중 교육은 우리나라 중학교 80%에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하 원장은 “현재 시도관할 지방자치단체와 보건소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센터 등에서 정신건강상담과 자살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가차원에서 홍보를 적극적으로 진행해서 보다 많은 국민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인터뷰 말미에 하 원장은 자살자 뿐만 아니라 자살자의 유가족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일반적인 죽음이 아닌 자살의 경우, 유가족들이 겪는 상처는 더욱 크다. 각종 편견과 오해와 싸워야 함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각종 죄책감과 무력감에 고통을 받는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마치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연쇄자살로 이어질 우려가 큰 만큼, 유가족지원센터를 통한 사후예방상담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하 원장은 “사람은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살아가야 한다”며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란다. 우리의 작은 관심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문화저널2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