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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한국인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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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기사입력 2018-09-17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파선으로 제주도에 표착해 3년간 조선 땅에 갇혀있다 탈출한 네덜란드 선원 하멜이 쓴 보고서 <하멜 표류기>(1653)에 “조선 사람들은 도둑질을 매우 잘하며 속이거나 거짓말도 잘한다. 그래서 조선 사람들은 신뢰할 수가 없다”란 구절이 있다.

 

19세기 말 도산 안창호는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군부(君父)의 원수는 불공대천(不共戴天)이라 했으니, 내 평생에 죽어도 거짓말을 아니하리라” 하여 거짓말 때문에 조선이 일본의 수모를 당한다고 판단했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한국의 탈세율은 26.8퍼센트에 달해서 그리스나 스페인과 비슷하고, 보험금의 13.9퍼센트가 사기로 지급되며, 교통사고 입원율은 일본의 8배나 된다. 우리의 부정직은 뿌리 깊은 민족적 고질이다. 물론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부정직한 국민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 교육, 기술, 예술 등 다른 분야의 수준과 비교하면 한국의 도덕적 수준은 매우 낮다. 국제투명성기구는 2016년도 한국의 투명성이 세계에서 52위라 발표했다. 아프리카의 보츠와나의 35위보다 17위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보다 부패가 더 심하다.

 

우리의 투명성이 일본 수준만 되어도 경제가 매년 1.4퍼센트에서 1.5퍼센트 더 성장할 수 있다 한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학문, 기술,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부정직의 피해를 보고 있다. 그 결과로 한국인은 세계에서 매우 불행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미국 퓨연구재단(Pew Research Center)이 2015년에 발표한 바에 의하면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100점 만점에 47점으로 베트남(64), 인도네시아(58), 말레이시아(56), 파키스탄(51)보다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정직한 사람이 많고 부정직의 정도가 높으면 속는 사람의 수가 많고 피해의 정도가 클 수밖에 없으므로 사람들이 불행할 수밖에 없다. 

 

왜 우리가 이렇게 부정직한 국민이 되었는가? 여러 가지 역사적 상황과 사건들이 빚어낸 적폐(積幣)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한국인의 무신론적 세계관 때문이다. 한국의 차세 중심적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무속 종교와 유교라 할 수 있는데, 두 종교는 모두 절대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무속 종교는 귀신을 인정하나 무당에 의해 조종되는 수준의 잡신에 부로가해 생활과 평가에 별로 중요한 작용을 하지 못한다. 논어(論語)에 보면 공자의 제자 계로(季路)가 공자에게 귀신 섬기는 일에 대해서 질문하자 공자는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느냐?” 하고 대답한다. 귀신같은 것에는 아예 관심도 없다는 태도다.   

 

그러나 전능한 초월신은 사람의 도덕적 행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계몽주의 사상가 칸트도 지적한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살피는 전능한 신이 ‘마음속의 경찰’(police within)로 기능하면 사람이 정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Voltaire)조차도 “하나님이 없으면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속종교의 귀신은 정직 같은 도덕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무력하기에 그런 기능을 전혀 할 수 없다. 유교적 전통을 가진 중국과 한국뿐만 아니라 무신론적 이념을 따랐던 공산주의 사회에서 부패가 극심한 것은 우연의 일치라 할 수 없다. 

 

‘마음속의 경찰’이 없으면 진실보다 외모가 중요해진다.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목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외모 지상주의와 피상적인 겉치레, 위선, 과시, 과장, 체면, 허례허식, 사치 등이 심각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뤄지고 있는 성형수술, 호화판 결혼식, 고비용 장례식도 이런 외식문화가 만들어 내는 부정적 현상들이 아니가 한다. 

 

우리 국민 가운데 이런 거짓의 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 먼저 고치기를 바라기에 고쳐지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 있다. 손해를 보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나서서 고쳐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사탄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 8:44)라고 가르치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천국 유업에 동참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계 22:15).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야말로 누구보다 신실하고 정직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19퍼센트나 되는데도 한국 사회는 그리스도인이 0.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일본보다 더 부정직하다. 그것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말해 준다. 소금과 빛은커녕 오히려 교회가 사회보다 더 거짓되다는 비판까지 받는다. 2017년 한국 교회를 신뢰하는 국민은 18.9퍼센트로, 천주교 32.9퍼센트, 불교 22.1퍼센트에 비해 낮다. 정직했다면 이렇게 불신을 받겠는가? 

 

정직해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정직해야 한다. 정직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마음속의 경찰’로 모시지 않는다는 뜻이며, 따라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정직이야말로 참 그리스도인을 판별하는 시금석이 아닌가 한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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