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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역사_봉수대 이야기③]봉수는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의 뿌리

4차 산업혁명 기술로 만나는 옛 봉수대 이야기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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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훈
기사입력 2018-09-17

4차 산업혁명 기술로 만나는 옛 봉수대 이야기③

 

▲ 이세훈 소장 

[편집자 주] 본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근대 이전 통신의 원천인 옛 봉수대 이야기를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6개의 섹션으로 구성해 본 칼럼을 기획해 연재한다. 필자는 1979년부터 현재까지 KT에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 KT 마이크로웨이브통신중계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오늘날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 중계소의 위치는 옛 봉수의 지리적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봉수제도는 변방에서 발생한 나라의 위급 상황을 중앙에 알리기 위한 장거리통신 중계방식이다. 전기통신을 이용한 과학적인 통신방식이 등장하기 이전에 각광을 받았던 통신방식이라 하겠다. 

 

봉수제도는 인간이 시각에 의존하는 가시거리 통신방식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오늘날 첨단 통신임을 자랑하는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 역시 가시거리 통신이다. 옛날의 봉수대 터와 오늘날 마이크로웨이브 중계소 자리가 겹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시거리 통신이기에 이 둘의 자리는 겹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전국 도처에 남아 있는 유적들이 말해주듯이 봉수제도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 전역에 골고루 정착되어 왔었다. 그 후 고려시대에 들어서 봉수제도가 정비되고 체계를 갖추어 조선시대에는 전국적인 봉수망으로 군사통신의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는 산악지역이 많다 보니 원할한 교통망을 구축하기 어려웠다는 자연적인 조건과 삼면이 바다인데다 대륙에 맞닿아 있어 봉수제도는 최선의 통신수단이었다. 조선 후기까지 중앙집권적 국가 형태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완벽한 봉수망을 형성하여 그 기능을 유지 발전시켜올 수 있었다. 

 

▲ 산 정상에 위치한 무선통신소

 

그러므로 옛 봉수통신은 현대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의 뿌리이다. 개발 논리에 밀려 사라져가는 봉수와 근근이 흔적이 남아 있는 봉수대는 원형을 복원시켜 보존되어야 하는 우리민족의 유구한 호국문화유산이다.

 

봉수는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과 매우 유사하다

옛날 중요한 통신 수단이었던 봉수제도는 이전 봉수대로부터 신호를 전달받아 다음의 봉수대로 순차적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통신의 하나로서 오늘날 가시거리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과 매우 유사하다. 봉수제도란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변방의 비상사태를 중앙에 알리는 통신체계이다. 

 

전파를 이용하는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은 주파수의 파장이 짧아 직진하는 성질이 빛과 비슷한 전자기파이다. 높은 산에 있는 봉수대에서 위급한 소식을 중앙으로 전하였던 봉수와 오늘날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의 성질이 유사하다. 봉수나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은 모두 가시거리 통신으로 성질은 비슷하다. 이에 따라 봉수대 터나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 중계소 자리는 높은 산과 확트인 전망으로 통신장애가 거의 없어 최적의 통신기지로 이용되었다. 

 

 

봉수대 터 자리에는 마이크로웨이브통신 중계소가 위치하고 있다

산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옛 봉수대가 있었던 터의 흔적을 볼수 있다. 우리나라 전국의 산에 조선시대까지 봉수대가 약 643개 있었다고 전한다. 이렇다 보니 산에 가면 옛 봉수대의 터를 쉽게 볼수 있다는 것이다. 옛날 봉수대가 위치한 터에는 오늘날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 중계소가 위치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국 도처에 남아 있는 유적들이 말해주듯이 봉수제도는 우리나라 전역에 골고루 발전되어 왔었다. 우리나라는 산악이 많다 보니 봉수제도는 최선의 통신수단 이었다. 근대의 전국통신이 이루어지기까지 이런 봉수대가 있었던 방법으로 산악 고지를 이용한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 전국망을 이루었다. 1960년대 장거리통신망과 시외전화, TV전국방송이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으로 시작된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은 텔레비전 방송중계 등 국가기간통신망으로 계속 운용되고 있다. 이렇듯 봉수통신은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봉수의 종류에는 경봉수(京烽燧), 연변봉수(沿邊烽燧), 내지봉수(內地烽燧) 등 세 종류로 5개 봉수로가 있었다. 

 

경봉수는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는 중앙봉수로서 서울 남산(목멱산)에 위치하여 목멱산봉수라고 했다. 연변봉수는 국경이나 섬.해안 등의 최전방에 설치되어 적의 침입을 가장 먼저 알리는 역할로 통신시설로서 뿐만 아니라 국경경비소 구실을 겸했다.  내지봉수는 육지의 내륙에 설치되어 경봉수와 연변봉수를 연결하는 중간 봉수로 절대다수를 차지하였다. 

 

▲ 남한산성에 위치한 마이크로웨이브 중계소 


봉수의 선로 위치에 따라 직선봉수(直烽)와 간선봉수(間烽)로 구분하였다. 봉수는 대략 수십 리 마다 서로 바라볼 수 있는 산 정상에 봉수대를 설치하고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거화하였다. 서로 마주보는 봉수대간에 적합하지 않은 거리, 일기불순, 우거진 수목과 아침저녁 안개에 의해 차폐되는 경우 등으로 봉수운영에 어려운 점도 있었다. 특히 산꼭대기에는 기상 변화가 많아 횃불이나 연기로 신호전달이 곤란할 때는 봉수군이 직접 다음 봉수로 달려가 그 사실을 전달하였다.

 

전국의 봉수가 모이는 남산봉수대가 있었다면, 마이크로웨이브 통신집결은 지금의 남한산성에 위치한 마이크로웨이브 중계소이다

근대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도시 상호간의 통신 수요가 급증하여,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장거리 시외통신의 공급 문제가 점차 심각해져 갔다. 이에 정부는(당시 체신부) 경제적, 기술적 양면에서 가장 유효하고 보다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였다. 

 

장거리 기간통신망을 구성함에 있어 유선케이블 시설보다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 시설이 회선용량이나 건설비로 보아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통신사업 5개년 계획으로 마이크로웨이브통신망 시설에 의한 장거리 통신회선의 증설계획을 수립하였다. 당시에는 미국 콜린스사 마이크로웨이브 통신시설을 수입하여 1967년 12월에 국내 최초로 제1루트인 서울~부산간 장거리통신망을 개통하게 되었다. 

 

정부의 마이크로웨이브 구축사업은 제7차 시설계획까지 추진하여 1970년대 전국을 8개의 노선으로 마이크로웨이브 통신망 구성을 완료하게 되었다. 제1루트인 서울~대전~대구~울산~부산간을 1차로, 제2루트인 대전~전주~광주~여수~진주~부산간을 2차로, 제3루트인 서울~원주~강릉간을 3차로,  제4루트인 서울~충주~안동~대구~광주를 4차로, 제5루트인 대전~서산~홍성지역을 5차로, 제6루트인 강릉~정선~태백~삼척~동해~울릉의 6차로, 제7루트는 육지와 제주를 잇는 광주~목포~제주를 연결하는 7차로와 지하국사 방식으로 제2의 서울~대전간을 잇는 8차로를 구축하게 되었다.  

 

봉수가 조선시대에 국가경영의 기간통신망으로 유지 되었다면, 마이크로웨이브 통신은 근대 국가경영의 기간통신망으로 선두 역할로 시작 되었다. 천년 전 조상들은 가시거리 봉수통신을 위해 사방이 확 트인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세웠다. 천년후인 오늘날 마이크로웨이브 통신이 당시의 봉수경로와 비슷한 것을 보면 우리 조상이 얼마나 국토와 지형을 깊이 이해했고 활용했는가를 짐작케 한다. 

 

마이크로웨이브 통신시설은 시외통신, TV방송중계 통신으로 이용하여 왔었다. 1967년 마이크로웨이브 장거리 통신망 개통을 시작으로 텔레비전의 전국중계가 가능하게 되어 전국 텔레비전 방송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후 도시간의 시외통신은 완전히 자동즉시화(DDD)로 바뀌어 어느 도시와도 전화통화를 가능하게 해지는 것은 마이크로웨이브 통신망을 디딤돌로 시작된 것이다.

 

참고로 마이크로웨이브(Microwave)통신은 주파수를 이용하는 무선통신방식의 일종으로, 이용하는 주파수(1GHz~300GHz)의 파장이 마이크로파의 크기로 매우 작은 전자기파(100mm~1mm)로 가시거리 통신에 이용되고 있다.

 

또한 DDD(Direct Distance Dialing, 장거리자동전화)는 수동식 전화교환원의 연결 도움 없이 바로 연결되는 시외전화로, 시외지역별 각기 다른 지역번호(02, 031, 032...)와 전화번호로 통화가 이루어 진다. 

 

▲ 그림 왼쪽부터 △조선시대 봉수망 남한의 마이크로웨이브망


4차 산업혁명은 무선통신 네트워크가 핵심기반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네트워크로 연결된 주변의 모든 단말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서로 소통하고 작용하여 보다 높은 수준으로 지능화됨에 따라 많은 일이 수행된다고 본다.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로서의 네트워크(5G)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게 되면 상상이 현실화되어 우리가 사는 사회와 삶을 전반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무선통신 네트워크가 핵심 인프라로 손꼽히고 있다. 

 

2차 산업혁명으로 봉수제도는 역사속으로 사라져갔지만, 그 봉수의 뿌리는 최첨단 마이크로웨이브 무선통신으로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1970년대에 시작된 3차 산업혁명 또는 디지털 혁명은 아날로그 기계장치에서 디지털 기술에 이르기까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4차 산업혁명을 실현해가고 있다. 

 

[참고자료]

ㅇ 한국의 봉수(눈빛출판사,조병로,김주홍글)

ㅇ 문화재청, 근대문화유산전기통신(2007년)

ㅇ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실(aks.sc.kr)

 

이세훈  KT 마이크로웨이브중계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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