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인터뷰] 특례업종서 빠진 영화업 ‘탄력근로제’로 ‘도루묵’ 될 판

안병호 영화산업노조 위원장 “줬다 뺏는 게 어딨나” 한숨

가 -가 +

성상영 기자
기사입력 2018-11-20

24시간 과로에 찌들었던 영화계

특례업종 제외로 장시간노동줄어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에 우려 커져

안 위원장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빠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탄력근로제를 확대한다니 그야말로 줬다 뺏기 아닌가.”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영화산업노조) 위원장의 한숨 섞인 말이다. 한국 영화의 메카 충무로에서 만난 안 위원장은 최근 정부와 정치권의 탄력근로제 확대 움직임을 깊이 걱정하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는 얼마 전 청와대에서 만나 탄력근로가 가능한 범위를 현행 3개월에서 6개월~1년으로 늘리는 데 사실상 합의했다.

 

▲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 성상영 기자

 

탄력근로제는 법정 노동시간 상한을 일이 몰리는 특정 기간에 한해 유연하게 적용하는 제도다. 지금은 3개월 동안의 평균 노동시간이 주68시간(300인 이상 또는 공공기관은 주52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특정 주의 노동시간을 68(52)시간 이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걸 6개월~1년으로 늘려 특정 기간 동안은 주80(64)시간까지 연속으로 일을 시키자는 것이다.

 

청와대와 국회의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에 안병호 위원장은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제작사와 감독, 스태프의 노력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무제한 노동횡행했던 영화계

특례 제외로 노동시간 단축 노력

28일 개봉 앞둔 국가부도의 날

법정 노동시간 지킨 작품의 예

 

영화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그간 노동시간에 제한이 없었다. 최근까지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그야말로 살인적 노동이 이루어졌다. 하루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촬영이 이어지는가 하면, 카메라 뒤편에서는 이틀에서 사흘쯤은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새우는 일상이었다. 안 위원장은 “06시에 집합하면 다음 날 06시 퇴근을 당연하게 여겼고, 감독이나 제작사도 온전한 한 회차는 다음 날 아침까지라고 생각해 24시간 동안 찍을 분량을 가져갔다고 회고했다.

 

스태프들은 졸면서 일하는게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집중력은 떨어지고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했다. 안 위원장은 세트장에서 23일을 연속 촬영한 적이 있는데, 위에서 조명 작업을 하던 스태프가 졸다가 난간을 헛디뎌 추락하는 일이 있었다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전했다.

 

퇴근 이후는 특히 더 위험했다. 안병호 위원장은 잠을 못 자고 다음 날 운전하다 사고 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수면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운전대를 잡았다가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은 지난 71일 개정 근로기준법의 시행으로 많이 나아졌다. 이른바 특례업종으로 분류돼 사실상 무제한 노동이 가능했던 영화업이 노동시간 규제를 받게 되면서다. 영화업이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빠지면서 최장 주68시간(40시간+연장12시간+휴일16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제한되고 있다.

 

▲ 안병호 영화산업노조 위원장이 '과로사 OUT'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 성상영 기자

 

지금 현장에는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을 통한 노동시간 지키기가 정착됐다. 하루 촬영 시간을 8시간에서 10시간으로 정한 근로계약서를 스태프와 제작사가 작성하고, 일정도 그에 맞췄다. 안병호 위원장은 68시간 상한 이후에 제작사와 감독, 스태프들이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미리 52시간(연장근로 제외) 범주에서 사고하는 제작사들도 있고, 10~12시간씩 일주일에 3~4회 정도로 스케줄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영화산업노조가 출범한 이후 13년 넘게 장시간노동 문제를 제기해온 성과이면서 근로기준법 개정 후의 변화다.

 

올해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둔 영화들 중에서도 법정 노동시간을 준수해 촬영한 작품이 있다. 안 위원장에 따르면, 올해 초 개봉한 염력은 하루 8~10시간씩 촬영됐다. 월 노동시간이 200시간이 안 된 달도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오는 28일 개봉 예정인 국가부도의 날도 하루 촬영시간을 많이 줄였다는 전언이다.

 

탄력근로제 확대하면 노력 물거품

특례 제외 전으로 돌아가자는 것

일부는 벌써부터 과거 회귀시도

근로계약서에 탄력근로제 집어넣어

 

안 위원장은 청와대와 국회의 탄력근로제 확대를 걱정하고 있다. 촬영 현장을 노동시간 특례업종 제외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어서다. 그는 영화산업의 특수성을 얘기하지만 오히려 시간 계획이 어렵다는 그 특수성 때문에라도 탄력근로제 확대 도입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촬영이 몰리는 때와 한가한 때를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안 위원장은 정부가 노동시간을 평균 내면 한 주는 더 일해도 된다고 말하는 건 특례업종 제외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우려는 촬영 현장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안 위원장은 탄력근로제 확대 얘기가 나오자 일부 제작사들이 단순히 임금을 적게 주면서 더 오래 일을 시킬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스태프들과 근로계약서를 쓸 때 필요 시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내용을 집어넣는 일이 최근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저널21 성상영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최신기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문화저널2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