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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勞란 신호등] 474·408·404, 부끄러운 ‘세계 최장기’ 기록

400일 넘는 고공농성이 두 번째 진행 중인 ‘스타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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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영 기자
기사입력 2018-12-20

한국은 갈등에 점령당한 사회입니다. 그중에서도 노사갈등은 그 뿌리가 깊고도 단단합니다. 한 해 100건이 넘는 노사분규가 발생합니다. ‘()란 신호등은 한 주 동안의 노사갈등을 찾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려는 시도입니다. ‘란 신호등은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또 흔히 잘 안 풀리는 일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하듯 노사갈등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노란 신호등이라는 걱정도 담아봤습니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의 하늘감옥

1408일 이어 403일째 고공농성

고용·노조·단협승계 합의이행 촉구

정리해고가 불러온 12년 장기투쟁

 

473, 408, 404.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공농성 기록입니다.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긴 기록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 중 2개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전북 전주의 택시기사 김재주 씨가 사납금제 폐지와 월급제 도입을 요구하며 473일째 고공농성 중입니다. 408일은 지난 2015년 파인텍(현 스타플렉스) 노동자 차광호 씨가 세운 기록입니다. 한 달도 버티기 어려운 고공에서의 생활을 400일 넘게 이어가며 하루하루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것입니다.

 

▲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403일째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준호 조합원이 19일 자신들을 격려하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모인 고공농성 경험자들과 전화를 하고 있다.     ©성상영 기자

 

세 번째 긴 기록 역시 스타플렉스 노동자들이 경신해 나가고 있습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파인텍지회 홍기탁, 박준호 조합원은 404일째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농성 중입니다. 이들의 고공농성이 403일을 맞은 19일 굴뚝 앞에는 과거 고공농성을 했던 노동자들이 한데 모여 두 사람을 격려하고 조속한 문제 해결을 촉구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의 기록도 만만치 않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며 문제를 제기해 공론화 한 최병승 씨는 296일 동안 철탑 위에서 생활했습니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당시 171일 동안 송전탑 위에서 농성을 했습니다. 2011희망버스로 잘 알려진 한진중공업 대규모 희망퇴직 때는 노조 지회장이던 박성호 씨가 137일 동안 영도조선소의 골리앗크레인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 장연의 씨는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80일 동안 서울 도심 광고탑 위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고공농성이 기록 싸움은 절대 아닙니다. 또 그렇게 돼서도 안 됩니다. 고공에 오르는 노동자들은 먹고, 자고, 입는 것 모두를 희생해야 합니다. 제한된 넓이의 소음과 진동, 매연, 때로는 전자파가 가득한 곳에서 장기간 살다 보면 오장육부가 망가진다고 합니다.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포기하면서 오는 정신적 피로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땅 위로 내려오면 적응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럼에도 하루라도 더 버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404일째 고공농성 중인 스타플렉스 노동자들은 차광호 씨가 3년 전에 세웠던 기록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요구는 간단합니다. 2015408일간의 고공농성으로 이뤄낸 노사 합의 내용을 지키라는 겁니다. 홍기탁, 박준호 씨는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와 체결한 고용 승계, 노조 승계, 단체협약 승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112일 발전소 굴뚝에 올랐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12년 전인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62월 폴리에스터 원사를 생산하는 한국합섬이 경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직원 50여 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히자 노동자들이 이에 반발했습니다. 6개월 만에 공장 정상화와 정리해고 철회에 합의했지만 연료비가 없어 공장 가동이 중단됐습니다. 한국합섬은 결국 20075월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 19일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박준호 조합원이 농성 중인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앞에 이들의 농성 기간이 403일째라고 알리는 팻말이 걸려 있다.     ©성상영 기자

 

20107월 스타플렉스가 한국합섬을 인수합니다. 노조는 김세권 대표와 고용 보장, 공장 정상화에 합의했습니다. 2011년 공장 가동이 재개됐으나 2년여 만인 20131월 김세권 대표는 돌연 공장 가동을 중단합니다. 직원 168명 중 139명이 울며 겨자 먹기로 권고사직 당하고, 이를 거부한 29명 전원이 해고됐습니다. 공장을 돌릴 인원을 단 한 명도 남기지 않은 것입니다. 20145월 공장 가동을 요구하며 차광호 씨의 408일 농성이 시작됐습니다.

 

스타플렉스 노사는 20157월 극적으로 합의합니다. 회사는 노조 조합원들의 고용을 승계하고 기존에 맺었던 단체협약을 유지하는 대신 노조는 차광호 씨의 농성을 해제키로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20161월 충남 아산에 마련된 공장으로 첫 출근합니다.

 

그러나 일상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단체협약 유지를 약속했던 회사의 태도가 바뀐 것입니다. 김세권 대표는 113개에 달하는 단체협약 조항 중 임금에 관한 내용은 모두 수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201610, 출근 10개월 만에 또 파업이 시작됩니다. 20178월 공장의 설비가 빠져나가고 빈 공장에는 다른 사업자가 들어갔습니다.

 

물론 스타플렉스가 생산을 아예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충북 음성에 위치한 공장에서는 제품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스타플렉스의 지난해 매출은 8698800만원, 영업이익은 259900만원이었습니다. 남아있는 노조 조합원 5명은 회사 측이 2015년 합의했던 사항을 이행하기만 하면 농성을 풀고 음성 공장으로 출근할 용의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차광호 씨는 서울 양천구 스타플렉스 서울사무소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시민사회와 종교계는 극한의 상황에 두 사람을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다며 동조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아직 회사는 답이 없습니다.

 

회사의 외면 속에 갈수록 고공농성 기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큰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고공농성은 1931년 평양의 한 고무공장에서 일하던 강주룡 여사가 을밀대의 12m 지붕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당시 9시간 농성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9시간 농성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줬다고 합니다. 지금은 400일은커녕 470일을 넘겨도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기업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세태를 일컬어 야만적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이 부끄러운 기록이 또 다시 우리나라 노동자들에 의해서 깨지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문화저널21 성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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