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손봉호의 시대읽기] 정보의 홍수와 미숙한 인격

가 -가 +

손봉호
기사입력 2019-01-21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기독교 고전 중에 가장 깊이 있고 영향력이 큰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과 칼뱅의 《기독교 강요》라 할 수 있다. 《기독교 강요》는 칼뱅이 27세 때 쓴 책이다. 물론 여러 번 수정하고 보완했지만, 그 기본 골격과 사상은 초판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위대한 고전을 어떻게 27세의 청년이 쓸 수 있었을까? 그의 뛰어난 지적 능력 때문이란 말은 좋은 이유가 아니다. 칼뱅은 천재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정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무수하다. 그런데 온갖 책과 논문이 홍수를 이룬 오늘날에도 《기독교 강요》에 버금가는 역작을 내지 못했고, 더구나 30대 이전에 그런 무게 있는 책을 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칼뱅은 요즘 젊은이만큼 배워야 할 것, 알아야 할 것이 많지 않은 시대를 살았기에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 자동차, 신문, 잡지 같은 것도 없었고, 배우와 가수, 운동선수는 중요하지 않았으며 다른 나라와 바다 속, 천체에 대해서는 비교적 무지하였다. 칼뱅은 너저분한 것들 대신 몇 가지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에 시간과 관심을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유는 그 시대에는 읽을 책이 적었다는 사실이다. 칼뱅보다 거의 150년 후의 시대를 산에 태어난 라이프니츠(G. W. Leibniz)는 18세에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고 아버지 서재에 있는 책을 다 읽어 버렸다고 한다. 칼뱅이 읽을 수 있었던 책은 그보다 훨씬 적었다.

 

학문이 오늘날처럼 발달되지 않았고 학자나 필자도 많지 않았으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아직 초기 단계였다. 출판 사업이 돈을 버는 시대도 아니었다. 만약 칼뱅이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는 결코 27세 때 《기독교 강요》 같은 책은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라이프니츠도 물론 18세에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나이에는 해당 분야에 어떤 책이 출판되었고 특히 어느 책이 중요한지도 제대로 알 수 없다. 

 

물론 자연현상이나 기술 분야에서는 정보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더 많이, 그리고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 현상의 경우에도 정보의 양과 상황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는 비례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현상의 경우만큼은 아닌 것 같다. 정치학을 알아야 정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경영학 전문가라고 해서 기업을 잘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인간 현상과 관련해서는 많은 정보가 깊은 통찰과 이해에 별로 도움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인간 이해와 관련해서 철학자 하이데거의 유명한 발언이 있다. “오늘날처럼 인간이 이렇게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알려진 적은 없다. 오늘날처럼 인간에 대한 지식이 이렇게 강력하게, 그리고 매혹적으로 제시된 적도 없다. 오늘날처럼 그 지식을 이렇게 빨리, 그리고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던 적도 없다. 그러나 인간에 대해서 오늘날처럼 무지한 때도 없으며 오늘날처럼 인간이 문젯거리가 된 적도 없다.” 

 

칸트는 철학의 기본 문제를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소망할 수 있는가?” 등 세 가지로 요약하고, 그 세 질문은 모두 궁극적으로 “인간은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만약 하이데거의 말대로 인간에 대한 방대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인간에 대해서 과거 어느 때보다 무지하다면 지식과 도덕, 종교, 예술 등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과연 올바른가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칼뱅의 《기독교 강요》를 읽으면 하이데거의 주장이 그렇게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칼뱅 이후 많은 신학자들과 설교자들, 기독교 문필가들이 얼마나 많은 책을 쓰고 논문을 발표했는가? 그리고 그들은 《기독교 강요》를 비롯해서 얼마나 많은 연구 결과를 참조할 수 있었는가? 그런데 왜 인간과 하나님, 죄, 사랑, 구원에 대해서 칼뱅을 능가하는 이해와 통찰이 나타나지 않는가? 그 많은 자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의 설교는 왜 과거보다 더 피상적이고 감상적인가? 

 

오늘날엔 온갖 정보가 문자 그대로 곳곳에 널려 있고 ((ubiquitous) 너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하이데거의 표현대로 수많은 지식을 “이렇게 빨리, 그리고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던 적이 없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과거 어느 때보다 제대로 된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고는 점점 더 빈곤해지고, 판단은 오히려 유치해지고, 행동은 더욱더 야만적이 되고 있다. 

 

오늘날 정보는 얼마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얻을 수 있으므로 이제는 정보 습득에 시간과 정력을 너무 낭비하지 말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창조적으로 생각하며, 바르게 판단하고, 정의롭게 행동할 수 있는 성숙한 인격 형성에 교육의 관심을 모을 때가 아닌가 한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최신기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문화저널2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