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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간결한 말, 큰 울림의 시편들 '빙하는 왜 푸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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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원 기자
기사입력 2019-03-31

서대선 시집 '빙하는 왜 푸른가'

 

좋은 시를 읽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시의 순정한 감동을 온전히 접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시가 넘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세상 온갖 허접한 말들이 시라는 이름으로 휘날려가고 오는 난마의 세상이 되었다. 

 

사람 마음을 드높이 고양시키고, 순정한 감각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 마음을 혼돈 속으로 떠밀어버리는 말들, 몇 번씩 되짚어 읽어보아도 문맥조차 짚어낼 수 없는 요령부득의 말들이 시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자리를 찾이하고 있는 시편들이 횡행하고 있다.

 

시인이라는 허명을 내세운 자칭 시인들이 너무 많은 시대가 되었다. 정치판의 모리배도, 이전투구의 장사꾼도, 아파트 투기로 졸부의 반열에 서려는 아낙네들도 시인이라는 호칭을 악세사리처럼 내세우고 있다. 이런 자칭 시인들이 써내는 글들이 옳은 문맥을 이뤄낼 수는 없는 것이고, 신선한 감각, 고양된 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말의 구조에 다가 설 수는 없을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혹자는 시의 대중화라는 방편의 말로 이런 현상을 호도하려하지만, 시는 시대를 앞서가는 예지의 언어이고 영감의 언어이다. 탁월한 한 구절의 시가 한 시대 정신을 일깨워 주며 감성과 상상의 향방을 일러주는 위대한 말이었음을 환기해둘 필요가 있다.

 

최근에 간행된 서대선 시집 '빙하는 왜 푸른가' (문학세계사)의 시편들은 좋은 시의 참 면목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반가운 시집이다. 서대선 시인은 시단 등단 10 년, 이제 육신의 나이 고희를 맞은 늦깎이 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좋은 시가 갖추어야 할 필요 요소들을 온전히 담아내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는 오랜 문학 수련을 통해 쌓인 공고한 내공이 뒷받침 되어 있다. 시집 '빙하는 왜 푸른가' 에 실린 시 몇 편을 들어보기로 한다. 

 

찌르르

가슴에 젖이 돈다

 

잠결에도

 

입을 오물거리는

어린 생명 하나

가슴에 안겨 오는

밝은 양지.

_ 입춘立春

 

네 

위로

나를 포개어 보는 

먹물에 흠씬 젖어

네 위에 엎어져 보는

팔만대장경

혹은

월인천강지곡 같은

사람.

_ 탁본拓本

 

좋은 시는 이처럼 중층적이고 또 다층적이며 담아내는 사유의 폭이 광활하게 마련이다. 불과 10행 미만의 말들이 담아내고 있는 함축의 폭과 깊이가 무한까지 확산되고 있다. ‘입춘’무렵의 스산한 양지를 담아낸 시편으로 발군의 감각을 보여준다. 

 

아마도 한국현대시의 맥락 속에서 찾아보아도 이 시가 보여주는 감각만큼 여실한 감각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리라. ‘찌르르/ 가슴에 젖이 돈다’, ‘입을 오물거리는/ 어린 생명하나/ 가슴에 안겨 오는/ 밝은 양지’. ‘찌르르/ 가슴에 젖이 돈다’는 감각은 진술적인 말로는 도저히 설명해낼 수 없는 본질적 인식이다. 시인은 이런 탁월한 감각을 모유를 빠는 어린 생명과 연관시킴으로써 봄이 생명으로 맺어지는 모성의 인연임을 들어내 보여주고 있다. 

  

‘탁본’의 사전적 의미는 “원형 그대로 종이에 찍어내는 것”이다. ‘탁본’은 원형 위에 먹물을 칠하고 그 위에 종이를 얹어 그 원형을 찍어내는 것이다. 그렇다. 먹물을 묻힌 탁본의 원판 위에 종이를 얹고 원판의 내용을 그때로 인쇄해내는 일련의 과정은 한 여자 위에 한 남자가 포개지는 사랑의 행위를 그대로 닮아 있다. 

 

원판 위에 덮이는 종이에 ‘팔만대장경’이나 ‘월인천강지곡‘ 같은 사람이 찍혀 나오는 것이니, ‘팔만대장경’이나 ‘월인천강지곡‘ 같은 사람은 탁본의 원판에 새겨져 있는 것이고, ’먹물‘에 흠씬 젖어 엎어진 사람에게까지 투사되어 일체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로가 서로끼리 일체가 되는 이런 사랑은 그 폭과 깊이가 망극하기 이를데없는 사랑일 것이다.  

 

하얀 귀저기 안에

아기가 내놓은 선물

경단 같기도 

금빛 메추리알 같기도 한

아기 똥

 

엄마 젖 맛나게 빨아 

먹더니

침을 섞어 반죽하고 

조그만 위 속에서

주무르고 비벼

필요한 것은 제 속에 

간직하고

 

알뜰도 하지

물기는 꼭 짜서 오줌 만들고 

남은 재료 모아 둥글게 

빚어 만든 솜씨

 

엄마가 받은 경단 같은 

아기 똥

_ 애기 똥

 

모성애를 구현해 보여주는 시편들 중에서 “애기 똥‘은 명편이다. 모성의 위대성을 노래한 시편들은 많고 많지만 ’아기 똥‘이 자식 사랑의 상징물로 구체화 되고 있는 경우를 만나기는 퍽 드문 것이었다. 시인의 활달한 종횡무진의 상상력은 “하얀 기저귀 안에/ 아기가 내놓은 선물/ 경단 같기도/ 금빛 메추리알 같기도 한/ 아기 똥”(「아기 똥」)의 대목에서도 빛난다. ‘똥’이 ‘경단’이 되고 ‘금빛 메추리알’이 될 수 있다. 

 

대상의 본질을 전혀 뜻밖의 것으로 바꿈으로서 대상이 지닌 잠재태의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대상의 특징을 집요하게 묘파하여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의미의 가능성을 시로 형상화해 보여준다. 모성애는 이처럼 하찮을 수도 있는 ‘아기 똥’을 통해서도 찬연한 광휘가 되는 것이다.

 

‘서대선 시인의 시는 간결한 말로 깊고 큰 울림을 일으키는 언어미학을 통해 미적 완결성을 이뤄낸다. 그녀의 시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고서도 말하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아름다운 현상, 아름다움의 가치, 아름다움에의 체험을 ‘말’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예술이다. 모든 아름다움은 자신의 내부 속으로 시인을 끌어당겨 침잠시키고, 시인은 오감과 사상으로 전유한 아름다움의 질량을 자신의 언어 안에 고밀도로 압축해낸다. 

 

이때 그릇이 커야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릇이 클수록 난삽하고 오염된 더께들까지 함께 담기기 십상이다. 아름다운 시는 작은 그릇에 세계의 정수만을 담아낸다. 서대선 시인은 언어의 경제적 운용을 통해 관념은 함축하고, 이미지는 증폭시키며, 정서의 파동까지 두루 이루는 시인이다.‘ 이 시집에 해설을 쓴 이병철 시인의 글이다. 

 

이념의 방편으로 전락해버린 시, 욕구 불만의 토사물이 되어버린 시, 온갖 수사를 모두 적어쓸데 없이 길어진 시편들 속에서 서대선 시인의 시집 '빙하는 왜 푸른가'를 접할 수 있는 것은 기쁨이다. 서대선 시인의 시편들은 오늘 한국시단에서 시가 무엇이어야 하는 것이고,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문화저널21 최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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