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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종교개혁과 인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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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기사입력 2019-04-01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종교개혁이 인류역사에 공헌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민주주의, 기본 인권 사상, 자본주의, 현대 과학 등 현대 문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종교개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현대 교육이다. 오늘날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시행하고 있고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의무교육제도는 사실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에 의해 시작되었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오직 소수의 귀족만이 교육을 받았고, 주로 사제, 의사, 공직자 등 전문직 양성이 주목적이었다. 최근까지도 유럽에서 대학교(university)란 이름을 쓰려면 반드시 의학부, 법학부, 신학부가 있어야 했던 것도 그런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칼뱅은 교육의 목적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그 내용은 성경과 하나님의 창조라고 가르쳤다. 그런 지식은 귀족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알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므로, 모든 사람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칼뱅은 국가는 모든 시민이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도록 강제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터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는 모든 개인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책임이 있으며 그런 구원의 지식은 성경을 읽고 공부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면 모든 사람은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루터도 모든 아동은 무상으로 의무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 이전 천주교에서는 성경을 라틴어로만 읽었고 라틴어를 아는 사제들만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한이 있었다.

 

이에 반기를 든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서 누구든지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거기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것이 보편적인 의무교육이었다. 1524년에 독일의 시장들과 시의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루터는 교육이 가져다주는 영적,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강조했고, 루터의 정신에 따라 멜란히톤(Phillip Melanchthon)과 부겐하겐(Johann Bugenhagen)은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읽기, 쓰기, 수학과 종교 과목을 가르쳤다. 오늘의 독일어는 루터의 성경 번역과 보편교육의 강조가 계기가 되어 문명어로 격상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주교 예배에는 미사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성경과 강론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혁교회 예배에는 성경을 중심으로 한 설교가 중요한 자리를 잡았고 자국어로 이뤄지는 설교는 교인들에게 엄청난 교육적 효과를 가져왔다. 오늘날에 대부분의 개신교 국가가 교육이나 문화 수준에서 대부분의 가톨릭 국가보다 앞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사람의 삶이 자연환경이 아니라 사람이 인공적으로 형성한 문화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오늘날 ,그 문화 환경을 조성하고 발전시키는 동력을 생산하는 교육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다.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불과 60년 만에 절대빈곤에서 탈출하고 상당 수준의 민주화를 이룩한 것도 교육 때문이란 사실이 그것을 웅변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종교개혁 이전의 교육이 귀족 교육이며 전문인 양성을 위한 직업 교육이었다면 종교개혁은 하나님을 알고 성경을 배우는 인간 교육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의 교육, 특히 한국의 교육은 점점 더 종교개혁 이전의 교육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질되고 있다.

 

하나님을 알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인간 교육이 아니라 좋은 직장을 얻고 더 많은 힘을 획득하기 위한 직업 교육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교육도 돈 있는 소수만 받고 가난한 사람은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는 귀족 교육이 되고 있다. “이제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게 되었다”든가 “은수저, 흙수저” 등의 비아냥이 바로 이렇게 타락하고 있는 한국 교육의 모습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한국 교육의 바깥만 보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 오바마 대통령과는 달리 한국에 오래 살았던 독일 태생 이참 씨는 한국이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육이 큰 문젯거리라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우리끼리 경쟁”에 휩쓸려 있는 것과 ‘동방무례지국’으로 만드는 인성교육의 부재를 그 이유로 들었다. 정확하고 예리한 지적이다.

 

특히 사교육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선행학습은 타락한 한국 교육의 가장 전형적인 표현이다. 모르는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배울 것을 미리 배워 오직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경쟁에서 이기고자 엄청난 액수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비생산적인 사교육에 학부모는 막대한 돈을 바치고 학생들은 지쳐서 공부에 싫증만 내게 되고,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들은 낙오자가 된다. 이 일은 더 나아가 사회 계층을 형성하고 갈등을 조장하며 저출산의 재앙까지 몰고 온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이런 소용돌이에 휩쓸려 있다. 그것이 종교개혁의 유산에 어긋날 뿐 아니라 자녀들과 한국 사회에도 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종교개혁을 제대로 기념하려면 교육이 직업을 얻고 경쟁해서 이길 힘을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영화롭게 하며 이웃을 섬기기 위한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 위대한 전통을 다시 살려 한국 교육을 정상적인 인간 교육으로 되돌리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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