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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시민사회와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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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기사입력 2019-05-27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2017년 초에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와 퇴진을 반대하는 시위가 주말마다 벌어졌다. 다행하게도 그전보다 훨씬 더 평화롭고 질서 있게 이뤄졌다. 시위 경험이 워낙 많았으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좀 성숙해지지 않았나 한다.

 

바로 이렇게 일반 시민들이 공적인 일에 자발적으로 나서서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고 권력의 부패에 항의하는 문화 때문에 어떤 정치학자들은 한국이 민주주의에서 일본보다 앞섰다고 주장한다 한다. 일본은 아직도 시민사회라 할 수 없는데 비해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시민사회가 되어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시민사회”란 용어는 이미 주전 1세기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글에도 나타나고(societas civilis), 17세기 영국 철학자 로크의 책에도(civil society) 언급되어 있다. 19세기 독일 철학자인 헤겔은 시민사회를 역사 발전의 한 단계로서 유무상통의 가족중심 공동생활을 넘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개인들이 서로 계약을 맺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단계의 공동체 형태라 했다. 그가 기대한 이상적인 국가는 출현하지 않아 그의 역사철학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시민사회를 가족이나 국가와는 구별되는 공동체로 보았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이해와 일치한다. 

 

현대 시민사회는 겔너(E. Gellner)가 지적한 것처럼 “국가를 제외한 사회의 모든 다른 부분”으로 이해되고, 특히 그것이 공적인 의미를 가지는 경우를 뜻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지금의 한국처럼 수많은 시민운동단체(NGO)들이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공적인 기능을 활발하게 수행하는 사회를 뜻한다. 일본을 아직도 시민사회라 하지 않는 것은 시민단체의 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한 반면 국가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매우 크기 때문이다.

 

국가는 법률에 근거하여 공적 임무를 수행한다. 법과 권력은 선거란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이뤄진 것이므로 강제적 집행이 정당성을 갖고, 공적 임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그 수행에 상응하는 공적 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그런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인 권한이 없고, 비록 공익을 위해서 시간, 돈, 노력을 제공하지만 자발적인 봉사이므로 공적 보상을 받지 못한다. 

 

시민단체의 유일한 권위와 영향력은 시민들 다수의 호응과 신임이다. 시민운동을 위해서 필요한 재원도 원칙적으로는 동조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회비나 기부에 의하여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한국 등 일부 국가들에서는 그들도 공적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국가가 어느 정도의 재정적 지원을 하지만, 상당수 시민단체들은 그런 공적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물론 복지 단체가 정부의 공적 복지 임무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경우에는 그 비용을 정부가 제공해야 하고 그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일부 비용은 후원자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충당되고 공무원보다는 자발적으로 조직된 민간 복지 단체 종사자들이 더 헌신적이기 때문에 더 효과적인 복지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러므로 건전한 시민단체가 많은 사회는 여러 가지 점에서 성숙하고 민주적이라 할 수 있다. 

 

시민단체가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정부, 정치인, 기업, 직능단체 등 상당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관과 단체들의 권한 남용이다. 특히 국가 기관과 정치인들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감시와 견제가 없으면 반드시 부패한다. 삼권분립이 이뤄졌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큰 비리에 휘말리게 된 것을 보면 권력 집중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잘 알 수 있다. 거기다가 현대 사회의 정부와 기업은 과거에 비해 그 조직과 운영이 매우 복잡해졌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바쁜 시민 개개인이 그들의 권한 오남용을 쉽게 알 수가 없고 그것을 방지하거나 견제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조직체를 만들어 시민다수의 지지를 배경으로 감시와 견제 활동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건전하게 유지되는 데 필수적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시민사회의 역할을 “국가로 하여금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물론 언론과 사법부가 행정부의 권한 남용을 감시하고 처벌하지만, 그들도 상당한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부패할 수 있다. 부패할 권한이 없는 시민들은 부패할 가능성이 약한데다 권력 기관의 부패에 가장 큰 피해자가 되므로 그들이 나서는 것이 논리적이다. 

 

형식적 위임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아무 법적 권한이 없는데도 공익을 위하여 활동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시민들의 지지와 신임에서 나온다. 시민들의 지지와 신임이 없으면 스스로 공익을 위하여 꼭 필요하고 매우 중요한 활동을 한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아무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자체 유지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시민단체는 우선 국가기관의 권한 오남용을 발견하고 감시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는 것을 개발하고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충분한 도덕성을 갖추는 것이다. 철저히 투명하며 공정하고 순수해야 한다. 부정을 감시하고 권한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권한보다 더 강한 자체의 도덕적 권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때 한국 시민단체들은 공명선거, 환경보호, 기업의 반사회적 행위 감시비판 등 여러 중요한 분야에서 언론이나 정당들이 이룩하지 못했던 성과를 거두었고 시민들의 호응을 얻어서 한국 사회의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많이 무력해졌다. 그것은 많은 시민단체들이 순수성과 공정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모든 힘은 부패할 경향을 가지고 있고, 절대적인 힘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액튼 (J. B. Acton)의 경고는 시민단체에도 적용되고 실증되었다.

 

공익을 위하여 많은 업적을 이룩하여 영향력이 커지자 그 성공이 실패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공익을 위한 활동보다는 자체의 존립과 위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활동가 상당수가 정치계로 진출하여 시민운동은 정치계 입문을 위한 디딤돌이란 오해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념적으로 지나게 편향되어서 중립성과 공정성을 상실함으로 보편적인 신임을 잃고 말았다. 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을 위하여 꼭 필요한 시민운동이 이렇게 약해진 것은 실로 안타깝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 복음주의 기독교 NGO들은 큰 도덕적 오류는 범하지 않았으나 시민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뚜렷한 정체성을 과시하는 데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다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시민단체의 소임을 활발하게 수행하여 큰 성과를 거두고 있고 〈좋은교사〉는 기독교 단체의 정체성도 분명하게 드러내며 잘 활동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앞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시민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했으면 좋겠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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