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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경제민주주의,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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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기사입력 2019-06-24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경제민주주의는 이론적으로 복잡한 내용과 사회적으로 급진적인 변혁을 함축하고 있다. 핵심적인 것은 경제활동에서 중요한 결정권을 소수의 주주나 부자들이 아니라 근로자, 소비자, 생산자 등이 같이 행사하고 토지나 물 같은 기본 자원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이다. 이런 이론을 제시하는 학자들은 그렇게 해야만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때문에 생겨나는 가난과 실업, 기근 등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론적인 주장의 타당성과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는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논의할 문제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는 경제민주화는 아마도 상식적인 수준의 것일 것이다. 경제활동의 중요한 결정이 좀 더 민주적으로 이뤄지고 경제의 힘이 지금보다는 덜 집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는 지나칠 정도로 대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그 부작용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기에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았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것 외에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국가가 형성되고 법률과 정책이 국민의 삶을 상당할 정도로 결정하는 상황에서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일반 시민들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민주주의 제도에서만 개인들은 권리와 자유를 보장 받고 자신들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으며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정치적인 권력과 결정만이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오히려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경제의 힘과 경제적 결정이다. 과거에는 정치적 불평등과 자유의 박탈이 사회의 큰 문제였지만, 이제는 경제적 불평등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과거에는 정치적 권력이 경제를 통제했지만, 요즘은 경제가 정치를 좌우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까지는 총리 부재 시 내무부 장관이 그 권한을 대행했지만, 지금은 경제관계 장관이 부총리가 된다. 돈이 정치적 권력이나 권리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는 정치적 민주화만으로는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이 충분히 보장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활동에 관한 모든 중요한 결정이 생산 수단을 가진 소수에 의해 이뤄지고 절대다수의 구성원들은 다만 소비자의 자격으로만 경제활동에 참여할 뿐이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능동적으로 결정에 참여하는 주체가 아니라 생산자의 이윤 추구에 수동적으로 이용되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것은 절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삶을 크게 좌우하는 경제활동을 결정하는 데 아무런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 민주주의가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와 같은 전문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개인의 진정한 자유와 권리의 보장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경제민주화는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 경제적 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은 사회는 충분히 민주화가 되었다고 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맺은 또 하나의 소중한 열매는 부패 방지다. 막강한 국가 권력이 분립, 분산되기에 부패가 방지되고 기본적인 정의가 유지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 소장, 총리 후보들이 비리 의혹으로 낙마한 것은 민주주의가 부패 방지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 준 사례다. 앞으로 고위 공직자 지망자는 어떤 불법이나 비리도 저지르지 않아야 할 것이므로 부패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비판도 있으나 국민에게 미치는 득실을 따지자면 더 엄격해져야 할 것이다. 

 

돈의 힘도 소수에게 집중되면 권력 못지않게 반드시 부패하며 그 결과는 권력의 부패보다 약자들에게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다. 경제적 힘도 가능한 분산되어야 하고, 계속되는 감시와 제재를 받아야 건전하게 행사될 수 있다. 생산 수단을 가진 소수가 모든 결정권을 독점하면 그런 힘을 갖지 못한 개인이나 기업은 억울함을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횡포에 시달리는 것이 그 예다. 기업의 부패를 방지하는 법이나 소비자의 선택만으로는 기업의 부패를 충분히 방지할 수 없다. 몇 년 전 전 세계에 금융 위기를 몰고 온 월가의 부도덕은 법 제도가 비교적 잘 갖추어진 미국에서 자행되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부패가 상당히 심각하다.

 

한국의 투명성이 일본 수준만 되어도 우리 경제가 지금보다 매년 1.5퍼센트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부패가 경제성장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부패는 노사관계를 악화하고 사회 갈등을 심각하게 한다. 뇌물 때문에 비자금을 만드는데 비자금을 만드는 기업의 경영이 투명할 수 없고, 이러한 회사를 근로자들이 신뢰할 리 없다. 우리의 노사관계가 이렇게 심각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사회와 기업에 만연한 부패이다. 이런 점에서도 경제민주화는 시급하다. 

 

그러나 문제는 경제민주화가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인가이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문제지만 효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경쟁에서 과연 민주화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경쟁력 약화를 우리가 용인할 수 있을까? 장기적인 안목에서 일시적인 후퇴를 감수하려면 돈의 가치를 상대화하고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더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기독교적 세계관은 경제민주화에 적극적일 수 있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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