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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세계관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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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기사입력 2019-07-15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세계관과 어머니?” 제목을 보고 의아해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세계관을 오만군대 다 갖다 붙이는군! ‘달과 500원’에서처럼 ‘과’를 불법적으로 붙인 게 아닌가?” 그러나 사실은 그게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다. 어머니와 세계관은 절대로 무관하지 않다. 

 

누구도 세계관을 어머니 뱃속에서 타고나지 않는다. 세계관은 이 세상에 태어난 후 주위 사회로부터 교육과 경험을 통해서 습득한다. 합리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이 태어날 때 이미 기본 관념은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설령 생득적 관념(生得的 觀念)이란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지 구체적인 지식으로 현실화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존 로크 (John Locke)가 주장한 것처럼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경험을 통해 그 백지에 글자가 써지고 그 글자들이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들이 결합해 문장을 이루어 지식을 형성한다. 물론 거기에는 바깥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결합하는 주체가 작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란 의식적, 무의식적인 경험과 가치관, 행동방식 등을 모두 뭉뚱그려 표현한 것이다. 

 

세계관도 후천적인 것인 만큼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다. 세계관이란 의식할 수 있는 지식의 체계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무의식적으로 수행하는 행동과 판단, 소통에 녹아 있고, 거기에 작용하는 가치관 혹은 윤리관에 반영된 것이다. 그런 것은 체계적인 교육보다는 주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주위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의식적으로 전수된다. 이 사실을 고려하면 어머니의 세계관이 자녀의 세계관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태어나 최초로 만나는 사회는 가정이고 최초의 교사는 어머니다. 교육학이나 심리학의 심오한 연구를 거치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릴 때 받은 훈육과 교육이 사람의 일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고, 결혼 상대를 고를 때 가문을 보라는 충고도 공연한 것이 아니다. 백지상태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바탕이 되고, 그 바탕을 근거로 해서 원시적인 자아가 형성되며, 그렇게 생긴 자아가 주체가 되어 그다음에 들어오는 정보를 취사선택한다. 그래서 최초의 정보, 어릴 때의 정보가 한 사람의 인격 형성과 세계관 형성에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생 최초의 접촉이 어머니와 이뤄지고 어릴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어머니기 때문에 최초의 정보는 어머니가 제공하고 어릴 때의 정보 대부분도 어머니에게서 올 수밖에 없다. 어머니로부터 배운 사투리를 쉽게 바꾸지 못하고 어머니가 제공한 음식 맛을 평생 잊지 못한다. 나무도 어릴 때 곧게 키워야 곧은 나무가 될 수 있고 굽은 나무라도 어릴 때 바로 세워야 바로 자란다. 다 자라 버린 굽은 나무는 바로 잡을 수 없다. 

 

물론 인간은 나무와 달라서 성장 과정에서 가치관과 행동방식, 세계관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어릴 때 서양에 이민 간 사람은 비교적 쉽게 그 문화에 적응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이민 간 한국인은 대부분 그 지역 언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그 문화에 동화되지도 못한 채 한국인으로 죽고 만다.

 

물론 어머니의 세계관도 그 어머니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도 그의 어머니와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세계관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그 어머니 밑에 자란 자녀도 그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그 문화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한 개인의 세계관은 주로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세계관에 의하여 결정된다. 사실은 한 사회의 세계관이 어머니를 통하여 일찌감치 자녀에게 학습되는 것이다. 

 

만약 자녀에게 전수된 어머니의 세계관과 그 세계관을 결정하는 그 전의 세계관이 잘못되었다면 누가 그것을 가장 쉽게 고칠 수 있겠는가? 태어난 아이는 물론 고칠 수 없고, 사회는 인격체가 아니므로 자신의 세계관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고치지도 못한다. 그 셋 가운데는 역시 어머니의 역할이 가장 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세계관 교육을 위해서 어머니의 위치는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어머니의 세계관을 고치는 것이 세계관 교육에 가장 효과적이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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