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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부부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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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기사입력 2019-07-22

손봉호 박사(사진)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는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유교에서는 가정의 핵을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둔다. 유교 윤리의 기본으로 알려진 오륜(五倫)서는 부자유친(父子有親)이 부부유별(夫婦有別)보다 먼저이고, 삼강(三綱)에서도 부위자강(父爲子綱)이 부위부강(夫爲婦綱)에 앞선다. 그러나 성경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우선한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마 19:5 참고). 

 

부모와 자식은 혈연관계에 있기에 본능적이고 자연적이지만 남편과 아내는 같은 피가 아닌 약속으로 맺어져 있다. 이는 기독교가 자연종교가 아니라 언약의 종교란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인도 신화에서 가르치듯 신이 인간을 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우리와 언약을 맺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 

 

언약에서 중요한 것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신실하셔서 한 번 약속하신 것을 변하게 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전하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으로 위로를 받는다. 물론 우리도 마땅히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해야 한다. 부부간의 약속도 마찬가지다. 결혼식 때 신랑과 신부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 어디서나 서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남편이며 유일한 아내로 서로를 자신의 몸처럼 아끼고 보호해 줄 것을 약속한다. 그 약속에 신실할 때 부부는 서로 믿을 수 있고 가정은 안전하고 안정되어서 참 평화와 행복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부간의 사랑에는 약속에 대한 신실함이 그 핵을 이룬다. 일생 부부가 연애할 때처럼 서로 좋아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면 참 좋겠지만, 그런 것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존재한다. 너무나 많은 젊은 부부가 그런 애송이 사랑이 사랑의 전부인 줄로 착각하고 그런 느낌이 사라지면 사랑이 식었다고 판단해 이혼한다.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란 말도 그런 송아지 사랑(calf love)을 참사랑과 혼동한 데서 생겨나는 오해다. 

 

그러나 그런 감정적인 사랑은 젊은 남녀가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두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심어 주신 하나의 씨앗에 불과하다. 끌림이 있어야 서로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 더 알아보려고 노력한다. 만약 그런 감정이 없다면 아무도 이성에 관심을 쓰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결혼하는 사람이 적어 인류의 존속이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사랑의 전부가 아니고 사랑의 핵심도 아니다. 사랑의 핵심은 서로 믿고 서로에게 철저히 신실한 것이다. 아무리 서로 사랑한다고 야단을 쳐도 서로에 대한 철저한 믿음과 신실함이 없으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감정적으로 사랑스럽지 않을 때도 ‘사랑’할 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이다. 

 

감정적인 사랑은 참사랑의 시작은 될 수 있지만, 결혼의 조건은 아니다. 나의 부모님 세대에는 사랑해서 결혼한 경우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결혼이 잘못되었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렇게 결혼한 사람들이 모두 불행하게 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대 아니면 죽는 것이 낫다”고 야단법석을 떨며 결혼한 요즘 젊은이들이 더 많이 이혼한다. 성경도 부부가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사랑이 결혼의 조건이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성경은 부부 간에도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라고 명령한다. 성경이 사랑을 ‘명령’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그 사랑이 감정적인 것이 아니란 것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감정은 명령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학자 다드(C. H. Dodd)는 아가페를 “감정이나 애정(emotion or affection)”이 주가 아니고 “능동적인 의지의 결단(active determination of the will)”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부부간의 관계는 감정적인 사랑만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쉽게 변하고 사라지는 감정에 근거한 관계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태에서는 삶의 안정도, 생산적인 활동도 기대할 수 없다. 부부 간의 사랑은 그보다는 훨씬 더 깊고 성숙해야 한다. 합리성과 의지가 같이 작용해야 하고 감정이 그에 따라야 한다. 아가페 사랑에는 감정적인 애착이 동반할 수 있다.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고 경고한다. 이 경고는 우선하여 부부 관계에 적용되어야 한다. 모든 아내는 남편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남편으로, 모든 남편은 아내를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내로 인식하고 서로를 철저히 신실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부부가 서로 돌보지 않는다면 이는 서로가 상대에 가지고 있고 마땅히 가져야 할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다. 그런 배신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 

 

이혼은 약속을 배신한 결과다. 성경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방 신을 섬기는 것을 간음에 비유한 것은, 우상숭배와 간음이 모두 배신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한 것은, 거기에는 모두 신실함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가정의 부부들은 서로를 철저히 신실함으로 스스로 행복해질 뿐 아니라 지금 대대적으로 파괴되고 있는 한국의 가정들에 소금과 빛의 기능을 수행했으면 한다. 

 

*본 내용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 수록되었던 원고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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