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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몰락의 신호탄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 국무회의 의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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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영 기자
기사입력 2019-09-17

부마민주항쟁, 유신독재에 항거한 ‘4대 민주화운동

다음 달 16일 창원서 첫 정부 행사, 대규모 기념식

 

박정희 유신독재 몰락의 신호탄인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1016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1016일 부산에서 발생해 옛 마산·창원으로 확산한 대규모 민주화운동이다.

 

행정안전부는 1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부마민주항쟁 기념일 제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이 심의·의결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4·19혁명(1960), 5·18광주민주화운동(1980), 6·10민주항쟁(1987)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4대 민주항쟁인 부마민주항쟁이 제 위상을 찾게 됐다.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는 관련 지자체와 민간단체, 각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지난해 9월부터 부마민주항쟁 최초 발생일인 10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위원회는 이후 국가기념일 범국민 추진위원회 발족과 서명운동, 지방의회 결의안 채택 등 과정을 거쳤다.

 

국회에서도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부산 금정)과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경남 김해시갑), 전재수 의원(부산 북구강서구갑) 등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가 지난해 12월 열리는 등 부마민주항쟁의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했다.

 

부마민주항쟁은 유신독재 말인 19799월과 10월 당시 여당인 공화당 주도로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제명하자 1016일 부산대학교를 시작으로 학생과 시민 5000여 명이 일어서며 촉발됐다. 박정희 정부는 시위 이틀 만인 18일 부산지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시민 1058명을 잡아들였다. 그러자 경남 마산과 창원, 진주지역으로 시위가 확산했다. 1020일에는 마산·창원지역에 위수령이 발동, 506명의 시민이 연행됐다. 당시 부산·마산 등에서 시위에 참가했다가 군사재판에 회부된 시민은 100여 명이 넘는다.

 

당시 권력 실세였던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부마민주항쟁의 수습 방안을 놓고 갈등을 벌였다. 차지철 실장은 캄보디아의 민중 학살 사건인 킬링필드를 언급하며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죽였다는데 우리는 100, 200만쯤 죽이는 게 문제이겠냐고 말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김재규 중정부장은 결국 10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차 실장을 저격했다.

 

한편 행정안전부와 부마진상규명위원회는 다음 달 16일 첫 번째 국가기념식을 경남 창원에서 개최한다. 부마항쟁기념재단 주관으로 열릴 행사는 국가 주요 인사와 각계 대표, 유족 및 민주화 인사, 시민 등 30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문화저널21 성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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