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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스토리] 불멸의 8체급 석권, 국가대표 출신 김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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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 기자
기사입력 2020-01-17

지난해 12월, 남양주시 화도 문화체육센터에서 벌어진 KBC 주최 프로복싱 경기장에서 인근 구리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김민기 관장을 만났다. 복싱 볼모지 구리는 김민기가 친형처럼 따르는 84년 LA올림픽과 85년 서울월드컵 라이트미들급 국가대표 안달호(일우공영)의 본향이다. 

 

그는 서울체고, 한국체대, 대전 중구청을 거치면서 15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현역에 몸담으면서 국내에서 전무후무한 8체급을 석권한 불멸의 기록을 보유한 복서 출신이다. 8체급 석권은 매니 파퀴아오가 기록한 세계타이틀 8체급 석권에 비견할 순 없을지라도 진귀하고 값진 기록임엔 틀림없다. 

 

▲ (왼쪽부터) LA 올림픽대표 안달호와 김민기 관장 (사진=조영섭 기자) 

 

김민기는 송강 정철과 함께 가사문학의 쌍벽을 이룬 조선 인조 때 문장가인 고산 윤선도의 체취가 묻어난 전남 해남 출신이다. 초등학교 때 구리로 터전을 옮긴 김민기는 84년 장안중 1학년때 스몰급(39Kg)으로 출발, 86년 제15회 소년체전 코크급(45kg)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낸다. 

 

첫 우승은  마치 새하얀 화선지 위에 떨어진 먹물이 번져 나가듯 8체급을 석권하는 시발점이 된 우승이었다. 장안중 복싱은 김종철(중앙대)교사가 창단해 정해명, 임경수, 김석호, 나학균, 오영교, 이상헌, 등이 주축이 되어 제5, 6회 김명복배 2연패를 달성한 신흥복싱 명문이었다. 야구 종목에서 4S(SPeed, Sense, Start, Sliding)가 도루성공의  필수적인 요소 이듯 그는 복서가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4S(Speed, Sense, Skill, Strategy)를 겸비한 동체시력이 뛰어난 카운터 전문의 사우스포였다. 

 

본래 정통파 복서였던 김민기는 담당 트레이너인 이형수 사범이 사우스포로 전환시켜, 전무후무한 8체급의 서곡을 울렸으니 결과론적으론 신의 한수가 된 셈이다. 87년 서울체고에 입학한 그는 1학년때 황금의 밴텀급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이후 88년 69회 전국체전과 18회 대통령배에서 페더급 석권하며 성인무대 마져 평정한 그는  졸업반인 89년 김명복배 와 제5회 세계 주니어 선수권(푸에르토리코) 선발전과 70회 전국체전  라이트급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이듬해 한국체대로 진학한다.  

 

▲ (왼쪽부터) 89년 김명복배 우승자 강형석 정진한 신수영 김경일 김민기 (사진=조영섭 기자)

 

이후 90년 라이트웰터급으로 월장,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난적 김재경에 쾌승을 거두며 국가대표로 발탁된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본격적으로 해외원정을 시작한다. 그해 인도네시아 대통령배에서 미국대표인 토머스 티번을 누르고 결승에 진출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필리핀의 사미즈에게 석패하며 은메달에 머물렀다. 그는 93년 중국 국제복싱대회에서도 태국의 키트 사디캄을 꺽으며 결승에 올랐지만 쿠바의 쿰바 반테도에게 고개를 숙였다. 

 

‘동방(東邦)을 지배한다’란 뜻을 지닌 우리에게 친숙한 도시인 러시아의 ‘블라디 보스토크’에서 개최된 93년 태평양 국제대회에 미들급으로 출전, 홈링의 러시아 선수와 준결승 에서 맞대결을 벌여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지독한 텃세에 눈물을 뿌렸다. 당시 코치로 참석한 84년 LA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인 신준섭이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준섭은 자신과 비슷한 체형에 스타일이 흡사한 김민기에게 내심 많은 기대를 걸었기에 무척이나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였을까  러시아 복싱협회는 대회가 종료된 후 최우수복서로 이례적으로 김민기를 선정, 그의 실력을 인정 해줬다.

 

김민기는 대전 중구청 소속이던 97년, 78회 전국체전에서 슈퍼헤비급으로 출전해 당시 현역 국가대표이자 95년 제4회 서울컵 슈퍼헤비급에서 소련의 알렉세이 초디노프를 꺾고 우승한 안정현(나주시청)과 91년 제6회 세계선수권 헤비급(호주 시드니) 동메달 채성배를 연달아 누르고 결승에 올라 88서울올림픽 헤비급 은메달리스트 백현만 마저 동네북 치듯이 일방적으로 난타해 4회 RSC로 꺽으면서 45Kg, 54Kg, 57Kg, 60Kg, 63.5Kg, 75Kg, 81Kg에 이어 91Kg 슈퍼헤비급 마져 금메달을 목에 걸며 8체급을 석권하자 당시 김옥태 충남복싱회장이 흥에 겨워 격려금 백만원을 즉석해서 전달하는 등 축하세례를 받았다. 

 

▲ 90년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은메달 김민기와 김동호 감독 (사진=조영섭 기자)

 

당시 국내에선 신창석이 라이트플라이급에서부터 라이트급까지 5체급을, 김동길이 페더급에서 웰터급까지 4체급을 석권한 전례가 있었지만 김민기의 8체급 석권은 전무후무한 불멸의  대기록이다. 이 과정에서 이재권, 김석현, 김재경, 서근식 등 정상급 복서들이 김민기의 예리한 카운터 펀치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여담이지만 김민기에게 패한 안정현의 딸이 2019년 고교생 베드민턴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그해 프랑스오픈에서 리우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인 카롤리나 마린(스페인)을 꺽고 5개 대회 정상에 오른 기대주로 현재 세계랭킹 9위에 오른 안세정(광주체고)이다. 

 

한편, 김민기는 불어나는 체중속에서 8체급을 석권하면서 살아남은 비결은 체급을 올리면서도 순발력과 스피드 훈련에 주력하면서 경량급으로 뛸 때의 강점인 민첩성을 최대한 되살렸다는 점이다. 

 

덩치가 큰 기업이 항상 작은 기업을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빠른 기업은 언제나 느린 기업을 이긴다는 어느 경제인의 어록처럼 그는 생존을 위한 변화에 주력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살아남는 종(種)은 강한 종도 아니고 지적능력이 뛰어난 종(種) 도 아닌 변화에 잘 적응하고 대응하는 종(種)’이라 갈파하지 않았던가.  

 

▲ (왼쪽부터) 한국체대 3년 선배 박성춘과 김민기 (사진=조영섭 기자) 

 

또한 그는 한 체급씩 올리면서 정상을 정복할 때 느끼는 달콤한 승리의 쾌감은 빨리 망각하고 또다른 체급에서는 또다른 상대와 결전을 진지하게 준비하고 고민했다. 5초간 기뻐하고 무엇을 무얼 더 잘할 수 있는지 5시간 반성하자는 슬로건을 내건 마이크 델 컴퓨터 회장의 어록이 생각난다. 현대복싱 에서는 신체를 강화하는 피지컬 트레이닝 못지않게 심리를 담당하는 멘탈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이런 김민기에게도 천적이 있었다. 바로 김시영(경남대 상무)이었다. 90년 서울컵과 북경아시안게임 최종 선발전 등 중요한 경기에서 3차례나 발목이 잡혀 브레이크가 걸렸던 그에게 높은 수준의 기량을 겸비한 선배복서였다고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 선발전에서는 그가 3차례 꺾었던 김재경(동국대)에게 역으로 어이없이 결정적인 순간 판정에 덜미를 잡히자 피눈물을 흘렸다. 또한 92년 11월 전국선수권대회에서 3체급을 뛰어넘어 미들급으로 출전해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이승배와 격돌,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4:4 동점이 됐고, 종합점수에서 판정이 넘어가자 ‘네임밸류에 밀려 졌다’고 크게 상심한 그는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96 아틀랜타 올림픽 선발전에 불참한다.   

 

그의 현역생활은 한마디로 냉탕과 온탕을 오간 영욕이 점철된 그의 복싱사였다. 그는 말한다. “8체급을 석권한 짜릿한 스릴보다는 결정적인 순간 참담한 패배는 가슴속 깊이 총총히 박혀오는 시련과 아픔이었고, 그를 통해 정말 소중한 것을 배웠다. 그리고 선수생활 때 빠른 목표달성과 성장이 결코 축복이 아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은퇴 후 한국체대 장윤호 선배의 소개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경호팀에서 근무하다 얼마 후 접고 제2의 고향인 구리에서 활발하게 체육관을 운영하는 그에게 사랑의 가치는 이별 속에서 배우고 웃음의 가치는 눈물 속에서 깨달으며 행복의 가치는 슬픔 속에서 경험하듯이 복싱에서 실패로부터 학습(learning From Failure)효과는 험한 인생을 항해하면서 흔들릴 때마다 나침반이 되어준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불멸의 8체급을 석권한 사나이 김민기. 그의 건승을 바란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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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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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월드 20/01/17 [14:54]
민기가 그정도의 실력을 갖춘 선수인진 몰랐네요
대딘하네요.
잘읽고 갑니다.
민기
살짝 보구싶네요.
나인 같았던걸로 기억하는데~~~
신성수 20/01/19 [19:14]
대단한 선수 김민기..이렇게 또 김민기를 알게 해준 조영섭의 보싱스토리~흥미진진 합니다
다음이 또 기다려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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