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415총선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LA 올림픽 복싱경기의 숨은비화

가 -가 +

조영섭 기자
기사입력 2020-02-12

지난 토요일 오후, 강동구 성내동 소재 기자가 근무하는 체육관에 84년 LA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8Kg급 금메달 리스트인 유인탁(당시 주택공사)과 문성길 챔프가  방문해 도란도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문성길은 선배 유인탁을 ‘지독할(?) 만큼 근검절약 하면서 모은 종자돈을 사업에 투자하며 탄탄대로를 달리면서 청담동에 아파트를 구입해 탄탄하게 입지를 구축한 체육인 선배’라고 웃으며 말한다. 

 

▲ (왼족부터) 유인탁과 문성길 챔프 (사진=조영섭 기자)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문득 36년 전 벌어진 LA 올림픽의 복싱비화가 스쳐지나간다.  27세기 전 그리스 펠로포네시아 평원에서 타올랐던 성화가 84년 7월 29일 상오 LA 메모리얼 콜로시엄 성화대에 점화되면서 역사적인 제23회 올림픽의 막이 오르고 열전 16일간의 대장정이 시작되기 200일전 한 신문사에서 금메달 유망주 5명이 스포츠 전문가들의 엄선을 거쳐 신문에 등장한다. 

 

주인공은 양궁의 김진호, 레슬링에 손갑도와 방대두, 복싱에 김광선과 허영모였다. 하지만 이들 중 단 한명도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았던 레슬링의 김원기, 유인탁, 유도의 안병근, 하형주, 양궁의 서향순, 복싱의 신준섭이 예상을 깨고 금메달을 획득한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인삼밭에서 산삼을 구할 수 없듯이 올림픽에서도 노다지 광맥을 찾아내는 임자가 따로 있는 듯하다. 이전부터 한국이 복싱에서 금메달을 딸 기회는 많았다. 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송순천, 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지용주 등이 금메달 일보 직전까지 접근했지만 제우스 신(神)의 냉담한 외면에 눈물을 머금고 하산한 전례를 상기시켜 보면 올림픽 정상은 신의 허락 없이는 등정할 수 없는 오묘한 자리란 생각이 든다.  

 

▲ (왼쪽부터) LA올림픽 금메달 후보 레슬링 손갑도, 방대두, 양궁 김진호, 복싱 김광선, 혀영모. (사진=조영섭 기자) 

 

라이트 플라이급의 김광선은 한번 패했던 쿠바의 라파엘 세인즈가 불참하면서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손꼽혔으나 첫판에 170Cm 의 큰 키에서 날카로운 스트레이트를 뿜어내는 홈링의 폴 곤잘레스에게 한차례 녹다운과 함께 판정패를 당한다. 역시 83년 로마 월드컵 결승에서 허영모를 꺽은 쿠바의 페드로 레예스가 불참한 가운데 참가한 플라이급의 허영모(한국체대)도  미국의 스티브 매크로리와 준결승에서 금메달을 건 일전을 예상하고 현지로 출발하기 직전 동료 박형옥과 가볍게 맥주 한잔을 마시다 감기몸살로 전이되어 현지로 떠나는 기내에서 트레이닝복을 입고 담요까지 덮어쓴  최악의 몸상태에서 도핑 테스트 때문에 약도 복용하지 못한체 경기에 출전, 8강에서 터키 선수에게 판정패하며 고배를 마셨다.

 

페더급에 출전한 박형옥(경희대)은 8강에서 카타리 테리사(베네주엘라)와 대결, 3회에 한차례 다운을 뺏는 등 3ㅡ2 로 승리 했지만 남미인 2명이 낀 5인의 배심원 판정에 1ㅡ4로 패배, 억울한 판정에 희생자가 되었다. 

 

84년 LA 올림픽 때부터 심판의 부당한 채점을 방지하기 위해 현행 5심제와 별도로 5인의 배심원 제도를 변칙적으로 운영했는데 우선 1차적으로 심판의 3ㅡ2 판정은 2차에서 시행되는 배심원들의 판정이 0ㅡ5 또는 1ㅡ4 판정이 나올 경우 승패를 뒤집을 수 있는 독특한 제도인데 이제도에 박형옥이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반면 헤비급에 출전한 이태리의 안젤로 무조네는 미국의 헨리 틸만을 상대로 3ㅡ2 판정으로 이겼지만 배심원 판정에는 0ㅡ5로 뒤집혀 피눈물을 뿌렸다. 밴텀급에 출전한 문성길(목포대)은 16강전에서 미국의 로버트 샤논과 대결하는데 이 경기는 현지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빅카드였다. 다운을 주고 받으며 문성길이 3회 RSC 로 제압하자 당시 언론은 멈출줄 모르는 메달전차 문성길의 금메달 획득은 공식이라고 평가했다. 

 

샤논의 패배로 12체급에서 한명의 탈락선수도 없던 미국팀에 샤논은 처음으로 탈락한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샤논은 경기 후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 LA 올림픽 8강전에서 눈부상으로 탈락한 문성길의 망연자실한 모습 (사진=조영섭 기자)  

 

하지만 8강에서 도미니카의 놀라스코에게 1회 불의의 눈부상으로 RSC로 패해 탈락한 문성길은 경기전날 훈련장으로 떠나는 선수들과 동행하지 않고 숙소에서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깜박 낮잠을 자면서 리듬이 깨져 결국 그날 밤  까만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불면(不眠)에 시달리면서 컨디션 조절에 실패, 탈락하는 비운을 맛보았다.

 

웰터급에 출전한 안영수(한국체대)는 원래 2회전에서 미국의 무적함대 마크 브릴랜드와 맞붙기로 되어있었지만 브릴랜드가 1차전에서 기권 부전승에 이어 두 번째 대결할 네팔선수마저 연속으로 기권처리 되는 바람에 대회 규정에 의해 조 추점을 다시 하는 해프닝이 일어나면서 마크 브릴랜드와 갈라지는 행운을 얻었고 결국 비교적 쉬운 상대를 만나 결승까지 치고 올라가 마크 브릴랜드에게 패했지만 값진 은메달을 획득했다. 

 

가장 안타까웠던 복서는 단연 김동길(한국체대)이었다. 8강에서 미국의 제리 페이지와 격돌해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1ㅡ4 판정에 고개를 숙였다.  배심원 판정도 1ㅡ4 판정이 나온 이 경기는 복싱기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10ㅡ4로 김동길의 우세로 나왔고, LA 최대일간지 LA 타임즈 또한 59ㅡ57로 김동길의 우세라고 보도했으며, 프로모터 프레이져와 봅 앨럽도 판정에 의문을 제시하며 2회 김동길의 스탠딩 다운은 불공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패배는 이후 신준섭의 금메달 획득에 소리 없는 일조를 했다. 

 

한편, 라이트 헤비급에 출전한 미국의 에반더 홀리필드는 뉴질랜드의 케번 베리와 경기에서 2회 13초를 남기고 홀딩상태에서 상대를 가격, 유고의 주심에 의해 실격패가 선언돼 동메달에 그쳤지만 프로로 전향, 4차례에 걸쳐 헤비급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 버질힐과 신준섭의 미들급 결승전 판정이 내려지는 순간 (사진=조영섭 기자)

 

정부수립 후 최초의 금메달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신준섭(원광대)에 의해서 탄생했다. 결승전에서 초 접전 끝에 미국의 버질 힐에 3ㅡ2 판정승을 거두고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타이완과 루마니아 심판은 60ㅡ58, 59ㅡ58 로 신준섭의 우세로 채점을 했지만 서독과 모르코 심판은 59ㅡ58로 버질 힐의 우세로 판정을 했고, 마지막 튀니지 심판이 59ㅡ59 동점에서 신준섭 우세 판정을 내림으로써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신준섭은 선발전에서 장성호(목포대)에게 논란 많은 판정 끝에 올림픽호에 승선했고, 이후 86년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도 안달호(일우공영), 홍기호(서원대)에게 거푸 밀린 경기를 하고도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모두 본선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했다.

 

프로야구로 말하면 페넌트 레이스에서 보다는 한국시리즈 같은 큰경기에 강한 복서라 말하고 싶다. 미국 아마복싱은 금9 은1 동1를 획득 역대 올림픽 최고의 성적을 냈다. 아마복서들이 올림픽에 매진하는 이유는 올림픽 금메달이란 상징성이 선수들의 프로 입문을 눈앞에 둔 복서들의 몸값에 상승지표(上乘指標)가 되기 때문이다.  

 

76년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인 슈거레이 레너드는 데뷔전에서 4만불(3천 2백만원)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WBA 주니어 웰터급 챔피언 아론 프라이어는 데뷔전에서 불과 천불(80만원)을 받았고, 72년 뮌헨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알폰소 자모라가 21전만에 세계정상에 도전했지만 그렇지 못한 카를로스 자라테는 45전만에 도전할 정도로 편차가 컸다. 

 

▲ LA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신준섭 (사진=조영섭 기자)

 

신준섭이 훈련과정에서 보여준 상상을 초월한 초인적인 투혼은 경탄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극복하고 월계관을 쓰는 험난한  과정은 교과서에 등재되어 후학들에게 교훈이 될만한 이정표를 남겨도 무방한   위대한 인물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신준섭은 83년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 5개국을 돌며 유럽 전지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치러진 국제경기대회(템머 대회)와 평가전에서 유럽선수들에게 형편없는 기량으로 3연속 RSC로 패하자 핀란드 현지에서 국제심판으로 참관한 그의 스승 조석인 관장이 선수들 앞에서 ‘그런 자질로 너는 절대로 선수되지 못한다’며 ‘만일 네가 선수가 된다면 내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말하며 악담을 쏟아낸다. 

 

이에 자존심이 바닥까지 추락한 열혈남아 신준섭은 ‘당신의 말이 얼마나 잘못되었나를 내가 실증(實證)해 보이겠다’며 분기탱천(憤氣撑天)하며 귀국하자마자 이를 깨물며 지리산자락을 오르내라며 결사항전(決死抗戰)의 투지를 불태운다. 아이러니 하게 건국 이후 최초의 올림픽 복싱 금메달 탄생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조석인 관장(36년생, 작고)아었던 것이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댓글

i

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복싱월드 20/02/12 [17:49]
역시
복싱의 살아있는 역사
어제 있었던것같은 느낌의 생동감 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광명 20/02/12 [19:00]
  아..언제나 익사이팅한 글 올려주시는
조영섭 선배님  감사합니다 ^^
 중1때 시골에서 전파도 잘 안잡히던 구식
흑백tv로 신준섭 선수의 결승전을 손에
땀을쥐며 시청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엽기관장 20/02/12 [22:38]
 
영화관 스크린에 펼쳐지듯 달변으로 이어지는 관장 조영섭
 그는 한마디로 살아있는 복싱역사책 이다~ 하하 
반상도사 20/02/13 [07:33]
언제나 흥미진진합니다
무협지 읽는 기분입니다
베냐민 20/02/13 [07:33]
훌륭한 스승과. 훌륭한 제자의 이야기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
꿀오소리 20/02/13 [07:38]
멋진 이야기 입니다.
꿀오소리 20/02/13 [07:43]
복싱이야기멋지네요
영남 20/02/16 [20:06]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문화저널2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