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415총선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WBA 슈퍼 미들급 챔피언 백인철

가 -가 +

조영섭 기자
기사입력 2020-02-23

백인철, 그는 반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공·수·주 3박자를 갖춘 한국 중량급의 간판 스타다. 타고난 복싱센스, 순발력과 함께 차분한 경기운영으로 국내 중량급의 블루칩 이었던 그는  50전 47승 43KO승 3패를 기록하고 은퇴한 복싱계의 대표적인 무골호인(無骨好人)으로, 주변에 많은 지인들이 포진되어 있는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보자. 

 

프로복서는 자신의 전적을 생명처럼 여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복서는 은퇴 후 기록을 남긴다. 기록은 인기와 비례하고 인기는 수입과 직결되기에 기록은 선수의 레벨을 측정하는 중요한 척도로 작용한다. 사각의 링은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칙이 철저히 적용되는 곳이다. 상대를 거꾸러뜨리지 못하면 내가 쓰러져야하는 상대성이 있기 때문이다. 

 

▲ 수년전 기자의 체육관을 방문 포즈를 취한 박종팔과 백인철(우측)    ©조영섭 기자

 

이런 먹고 먹히는 생태계의 원리가 적용되는 냉혹한  세계에서 백인철은 대뷔 후 2년 10개월 동안 26연속 KO퍼레이드를 펼쳐 기네스북에 등재된 국내 유일의 복서다. 60년 1월 21일 전남 고흥 출신인 백인철은 78년 고흥농고를 졸업하고 복싱을 했던 사촌형의 알선으로 상경, 그해 11월 중산체육관에 입문해 채용석 선생 문하에서 칼날 같은 스트레이트를 배운다. 그 후 동아체육관으로 이적해 김현치 관장에게 정교한 훅을 마스터한 그는 마포 유덕체육관에 등록, 유제두 관장에게 회심의 라이트 어퍼컷이라는 비기(祕技)를 전수받는다. 

 

결국 돌고 돌아 79년 7월, 극동체육관에 정착해 명장 권재우 관장과 운명적인 만남으로 체계적인 지도를 받으며 80년 5월 9일 문화체육관에서 김성준과 이승훈의 라이벌전이 벌어진 경기에 언더카드로 프로에 데뷔한다. 그 때 그의 나이 만20세 였다. 당시 동료 복서들인 장정구와 전주도가 만20세에 세계정상에 등극한 것을 대비 시켜보면 늦은 출발이었다. 특히 전주도가 만22세에 타이틀을 풀면서 아침에 피어났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 같은 짧은 복싱인생을 살면서 야인으로 전락했다면 백인철은 모진 풍파를 인동초(忍冬草)처럼 감내하면서 89년 5월, 서른에 세계정상에 올랐던 사연과 곡절이 많은 챔프였다. 

 

▲ 라이벌 유제형과 동양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전 을 펼치는 백인철(우측)  © 조영섭 기자


백인철은 야구의 김재박에 견줄 만큼 만능 스포츠맨이다. 레슬링과 육상, 축구, 당구 등 전 종목에 걸쳐 발군이었던 그에게 당시 수경사 오영세 코치는 ‘인철이 저 녀석은 운동신경만큼은 타고난 복서’라고 극찬을 했다. 이처럼 복서로서 겸비할 모든 재능을 갖춘 백인철 이었지만  아쉽게도 복서에게 치명적인 2가지 헨디켑을 완벽하게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지독한 체인 스모커(Chain smoker)에 헤비 드링커(Heavy drinker) 였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도 50전 중 박종팔, 황준석, 유제형, 김종호, 노창환, 정상도 등 18명의 국내 정상급 복서와 맞대결을 펼쳐 전승에 16KO승을 기록했으니 천부적인 복서란 생각이 든다. 또한 백인철은 바둑의 고수다, 김환진, 신운철, 김철호, 유제두, 오영세 등과 함께 자웅을 겨룰 정도로 초고수다. 그래서 였을까. 그는 일발필도로 상대방을 제압하기보다는 레프트 잽으로 차분히 매듭을 풀다가 찬스 때 정석대로 결정타를 날리는 전형적인 슬로우 스타터다. 

 

또한 그의 장점(?)중 하나는 상대방의 강약(强弱)에  따라 음주량을 조절하면서 경기에 임한다는 사실이다. 이길 만큼만 마신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85년 4월 20일 문화체육관에서 벌어진 유제형, 86년 10월 18일 벌인 황준석과 동양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이 각각 걸린 경기에서는 바짝 긴장하고 절주(節酒)를 하면서 경기에 임했지만 다소 만만한 상대와 대결할 땐 숙소를 무단이탈, 권재우 관장에게 검거(?)될 때까지 폭음에 폭음을 거듭하면서 경기를 치렀다. 

 

▲ 유종현 교장 박광호 대표 백인철 챔프  © 조영섭 기자


유제형은 전국 신인대회에서 황충재를 눌렀고 대표 선발전에서도 천갑수(한국체대)를 꺽고 우승한 실력파로 프로로 전향해 24승 21KO승 3패에 당시 16연승(15 KO승)에 13연속 KO퍼레이드를 펼쳤던 상승세의 복서라 나름 큰 기대감을 갖고 관전했지만 결과는 33승 32KO승 1패를 기록한 백인철의 6회 KO승으로 싱겁게 끝이 났다. 

 

또한 36전 34승 23KO승 2패를 기록한  찬스 포착에 능한 황준석(동아)과의 경기에서는 5회 손부상으로 라이트를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상적인 불꽃파이팅을 펼치며 파상공세를 취하는 저돌적인 황준석에게 한차례 다운을 탈취하는 등 무난한 판정승을 거두면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절주였던 것이다.  

 

하지만 절주에 절주를 하면서 진중한 자세로 맞붙은 87년 11월 라스베가스 에서 치러진 WBA주니어 미들급 타이틀전에서는 챔피언 줄리안 잭슨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통산 61전 55승 49KO승 6패를 기록한 월드 클라스 챔피언과 맞대결에선 결국 절주의 효과도 무용지물이었다. 3회 회심의 일타에 KO패 당한 백인철은 그동안 조절해 마셔온 술을 멕시코인 거주지인 슬럼가에 들어가 폭음을 하며 안타까움을 술로 달랬다. 

 

88년12월 백인철은 박종팔과 라이벌전을 펼친다. 전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박종팔은 46승 39KO승 2무 4패를 기록하며 탑독의 위치에서 5천만원의 대전료를 보장받았고, 언더독인 백인철은 당시 44승 40KO승 2패를 기록하며 3천 5백만원의 파이트머니를 약속받고 일전을 펼쳤다. 중요한 것은 그날 80Kg으로 시합을 한 것이다. 라이트 헤비급 한계체중인 79.38kg을 오버하는 체중은 박종팔에 비해 체급이 낮은  백인철에겐 큰 헨디캡 이었지만 경기 일주일 전까지 동료복서 전주도를 불러내 부족한 체중을 폭음을 하면서 맞춰 경기에 임한 백인철은 능숙한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군말 없는 9회KO승으로 거함 박종팔 시대의 마침표를 찍게 만든다.

 

▲ WBA 슈퍼 미들급 챔피언 백인철  © 조영섭 기자


8회까지 채점도 세 부심이 79ㅡ72로 공히 채점할 정도로 일방적인 백인철의 페이스였다. 89년 5월28일 백인철은 박종팔에게 WBA 타이틀을 탈취해간 오벨 메이야스와의 타이틀전에서 극적인 11회 KO승으로 세계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당시 한국은 백인철을 포함해 유명우, 문성길, 이열우, 김봉준, 변정일 등 WBA, WBC 챔피언만 6명을 보유, 7명을 보유한 멕시코 미국과 함께 3번째 복싱 강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0회까지 채점에서 1점에서 4점까지 백인철이 근소하게 앞섰던 이날 경기에서 상대를 녹아웃시키는 11회에 전광석화처럼 터진 좌우연타는 백미였다. 이 타이틀은 2차례  모두 KO로 방어에 성공한 후 90년 3월 3차방어전을 어린왕자를 쓴 세계적인 작가 생 떽쥐베리의 고향인 프랑스 리용에서 크리스토퍼 티오조를 상대로 치른다. 

 

티오조는 84년 LA올림픽 라이트 미들급 동메달 리스트로 184Cm의 큰키에 25전승 17KO승을 기록한 중견복서였다. 당시 IBF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인 베니슈를 보유한 프랑스로선 티오조는 프랑스복싱의 자존심 이었다. 당시 백인철에 지급된 파이트머니는 35만불, 그가 수령할 금액은 정확히 절반인 17만 5천불, 이에 백인철은 방송중계료가 1억원 전후해서 나오는 상황을 감안해 파이트 머니를 20만불에 맞춰달라고 말하자 극동 전호연 회장은 단칼에 거절해 버린다.

 

사실 백인철의 요구사항은 무리한 것은 아니었기에 상호간에  절충할 수 있는 문제로 보였지만 결국 두 사람은 루비콘강을 건넜다. 백인철은 이후 사보타지(sabotage)전략으로 맞대응하면서 경기를 치러 무기력하게 6회KO패 당한 후 링을 떠난다. 이 경기가 끝나면 토마스 헌즈와 백만불자리 경기를 치르기로 가계약까지 한 백인철로선 천려일실(千慮一失)이었고, 매니져 전호연에겐  극동프로모션의 폐막을  앞당기는 종말의 예광탄이 되고 말았다.

 

백인철은 프랑스로 떠나기 전 체중을 맟춰 놓고 탑승했지만 현지에 도착하니 체중이 2.5 Kg이 오버되었다. 기내에서 음주를 하면서 체중이 불었던 것이다. 예고된 패배였다. 한편 장정구, 김성준, 김환진, 김태식, 백인철, 김상현, 김철호, 이열우 등 WBA, WBC 챔피언 8명과 IBF 챔피언까지 21명의 챔피언을 탄생시켰던 전호연 회장은 이후 강순중과 이열우, 장정구가 연달아  타이틀전에서 패하자 의욕을 상실, 낙심하면서 4년이 지난 94년 9월 향년 77세로 눈을 감았다. 

 

▲ 백인철 챔프 이동포 관장 문성길 챔프(좌로부터)  © 조영섭 기자


부동산 격언 가운데 ‘길 따라 돈이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프로에 입문하는 유망복서들에게도 프로모터가 누구인가에 따라 챔피언벨트가 보인다는 신조어가  파생될 정도로 영어, 일어, 스페인어에 능통했던 전호연 회장은 국내 프로복싱을 쥐락펴락 하며 한시대를 풍미한 프로모터 였다. 

 

백인철은 50전을 싸우면서 단 3패를 기록했는데 모두 원정경기로 신 메니언, 줄리안 잭슨, .티오즈 에게 패했다.  또한 그의 이름처럼 백인복서 에게 철저히 약했다. 27전 째 첫패배를 기록한 신 매니언을 비롯해 동양주니어 미들급 4차 방어전에서 신승한 트로이 워터스, 다운을 주고받으며 판정승한 폴 제임스, 마지막 경기상대인 크리스토퍼 티오조까지 백인들과 4전 2승 2패 2판정승(1KO패)을 기록했다. 

 

백인철은 은퇴 후 여수에  지인을 통해 2억을 투자해 묘도라는 섬의 돌산을 샀는데 은퇴후 딱히 자리를 잡지 못한 그가 어쩔 수없이 눈물을 머금고 그 쓸모없던(?) 돌산을 약간의 이윤을 남기고 팔았는데, 아뿔사 그 돌산이 여수 엑스포 여파로 반듯한 다리가 놓여지고 간척지 매립등으로 돌산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그 돌산이 금강석(金剛石)으로 변신, 현재 강남 아파트처럼 수십억을 호가한다고 한다. 인생이란 울타리는 럭비공 같아서 종잡을 수 없는 신통방통한 요술 상자란 생각이 든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댓글

i

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선거(2020.04.02~2020.04.14) 기간 동안에는 모바일에서는 댓글쓰기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Sm복서 20/02/23 [22:10]
좋은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
베냐민 20/02/24 [07:27]
26연속 KO퍼레이드..
그 박종팔 선수를 ko시킨 선수가
백인철 선수였군요!!
한국 복싱의 역사와 이야기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끈아 20/02/24 [07:42]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챔피언이라니.. 정말 멋있습니다.ㅎㅎㅎ
꿀오소리 20/02/24 [09:43]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문화저널2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