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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⑪

[제3기] 일제강점기(1910~1945년) 조선의 통신을 대륙 침략의 중간 병참기지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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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훈
기사입력 2020-04-21

[제3기] 일제강점기(1910~1945년) 조선의 통신을 대륙 침략 중간 병참기지로…

 

고종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1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이를 알리기 위하여 외교활동을 전개한다. 1907년 이를 구실로 일제는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킨다. 일제의 고종황제 퇴위를 계기로 의병의 항일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일제는 조선의 통신을 이용하여 국민을 강압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따라서 처음부터 조선총독부 전기통신사업은 이러한 정책을 보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경비 통신의 확장에 치중한 일제는 대륙침략 수단으로 전기통신사업을 진행한다. 

 

이러한 통신사업 방식은 극도의 공중통신시설 부족을 초래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 ~1938) 중반에 들어선 1916년을 전후하여 공중통신은 자금난으로 중단된다. 반면에 전기통신의 이용은 늘어나게 된다. 1922년 전신전화확장 5개년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일제의 불가피했던 재정긴축 정책과 통신확장 계획의 의도는 식민지 수탈정책 강화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일제 본토와 만주, 북중국을 연결하는 통신망을 늘려간다. 

 

▲ 일제강점기 조선의 전신전화선 지도  ©


그러나 1931년 9월 일본군이 중국 둥베이 지방을 침략하는 만주사변과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일제가 조작한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만주와 중국 대륙에의 침략이 본격화 한다. 이때 조선의 통신망은 주로 일본본토와 중국대륙을 이어주는 시설에 이용되었다. 1935년 3월 이 땅에서 자동전화가 수도 경성 보다는 함경북도 나진항에서 제일 먼저 개통되었다. 부산 부두에서 서북쪽 국경 압록강과 동북쪽 국경 원산에 이르는 무장하케이블의 포설 등에서 잘 알 수가 있다. 

 

일제가 인도차이나까지 진출하자 미국은 영국·중국·네덜란드와 포위진을 구축하고 대일 석유수출을 금지한다. 전쟁초기에 일제는 필리핀·말레이시아·미얀마·싱가포르·자바·수마트라와 남태평양의 여러 섬을 점령한다. 일제는 이러한 대륙 및 동남아 침략과 전쟁에 조선을 중간 병참기지로 삼았다. 전쟁수행을 위하여 발전소가 건립되고 군수공장이 세워진다. 광산이 개발되고 병기관련 중화학공업이 육성된다. 지형상 대륙침략의 거점으로 삼기 위하여 조선의 함경도 지방을 공장단지로 개발했다. 

 

특히 1938년에 준공된 만주-일본간 무장하케이블의 포설은 생각지도 못한 대규모의 시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의 발발로 군사는 물론 정치·경제·문화·사회 등의 제도가 전시체제로 개편된다. 흔히 국민총동원령의 제약을 받게 되자 전기통신도 방위통신체제로 개편되어 일제가 공언한 대로 국방의 제2군으로 활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한글전보의 사용정지, 가입전화의 징발, 전보특수 취급의 제한 등을 비롯한 여러 조치가 시행된다. 그 양상은 극에 달해 우리나라의 전기통신 역사상 가장 참담한 암흑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세훈 

KT 시니어 컨설턴트

한국경제문화연구원 ICT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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