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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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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훈
기사입력 2020-04-23

[제3기] 일제강점기(1910~1945년) 대동아 전쟁수단의 무장하케이블 2,700Km 포설

 

일제는 대륙침략과 동남아 공격을 위하여 일본-조선-만주를 하나의 축으로 연결하는 대동맥 통신망을 구성한다. 1905년 한일통신협정이 체결되기 전에는 시외전화회선이 경성과 부산에 불과했다.

 

1906-1907년에는 경성-인천, 경성-춘천, 경성-평양, 평양-진남포, 개성-해주, 함흥-서호, 용산-인천, 경성-부산, 부산-대구, 부산-마산, 군산-강경, 충주-강릉선 등을 증설한다.

 

일제는 1936년부터 전신전화확장 3개년 계속사업으로 만주-조선-일본구간을 건설한다. 이미 일본은 후쿠오카에서 부산 간 200Km에 해저케이블 14대를 포설하고, 3개소에 중계소를 설치했다.

 

부산에서 경성간의 450Km는 케이블 20대를 포설하고, 9개소에 중계소를 건설한다. 일본에서 70%, 조선에서 30%로 공사비를 부담했다. 경성에서 압록강 간의 460Km는 케이블 14대를 포설하고, 7개소에 중계소를 건설한다. 무장하케이블은 지하에 매설하여 통신보안에도 철저를 기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부산-경성을 거쳐 압록강에 이르는 무장하케이블은 도쿄-봉천 간 총거리 2,700Km의 장거리회선을 연결한 것이다. 이로써 대동아 통신의 대동맥을 구축하게 된다.

 

이 무장하케이블 공사는 1938년 12월에 완성되어 전신전화 회선을 수용하여 만주-조선-일본 간의 통신에 사용하게 된다. 이 시설은 일본의 대륙침략과 동남아 전쟁의 전쟁통신 수단으로 이용했다. 

 

▲ (좌)땅속에 뭍혀있는 무장하케이블 위치를 표시하는 통신표주 / (우)등록문화재 제435호 무장하케이블 접속장치 (kt사료제공)


1907년 항일의병의 봉기로 곤경을 격은 일제는 우리정부에 강제 요청하여 경비전화망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1908년 5월 통신관리국의 특별조직으로 경비전화건설본부를 만들고 사무총장에 통신관리국장을 촉탁형식으로 임명한다.

 

내무부 경무국, 통신관리국, 주한일본 수비대, 헌병대등의 관계기관 회의에서 주요의사 결정을 한다. 경비전화는 군대, 헌병, 경찰기관 등에 상호 연락하여 의병탄압과 식민통치에 이용했다. 우리국민을 회유할 목적으로 시골. 벽지 지역에는 극소수 공중통신을 설치했다. 

 

1931년 경비전화 10개년 계획으로 10년간 경비전화를 구성한다. 이 계획은 경성을 중심으로 각 도간, 경찰서간, 주재소간에 거미줄 같이 구성하여 통제하고자하는 것이었다. 특히 국경지역에 경비전화를 보강하고 취약한 지역에도 경비전화를 보강했다.

 

1934년 평안북도 북서쪽 압록강 신의주에서 국경 요충지 강계군 만포진 까지 900리를 완공하여 국경에 있는 각 경찰서와의 통신소통을 강화했다. 규모에 있어 총연장 5,600Km의 경비전화를 확장하게 된다. 만주사변 이후엔 경비전화완성계획으로 1936년에 한반도 전 지역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경비전화망이 완성되었다.

 

이세훈 

KT 시니어 컨설턴트

한국경제문화연구원 ICT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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