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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⑮

[제3기] 일제강점기(1910~1945년) 통신이용 규제와 3.1운동의 통신시설 파괴 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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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훈
기사입력 2020-05-07

[제3기] 일제강점기(1910~1945년) 통신이용 규제와 3.1운동의 통신 파괴 항거

 

전화 징발과 이용제한  

 

1938년 8월 15일, 일제는 방위에 관한 통신소통을 신속·정확하게 한다는 취지로 ‘전기통신취급요령’을 공포하고 각종 이용제도를 제한한다. 방위통신을 경비. 정보. 지휘연락의 3종으로 구분하여 전시 또는 사변에 방위기관 상호간에 통화하도록 하고, 공중통신을 취급하는 사설통신, 전신전화, 무선전화도 방위통신에 공여토록 했다. 

 

또한 1941년 7월, 일제의 전시를 위한 인적·물적 자원의 총동원령 실시에 따라 긴급통신이 격증하자 ‘경비통신취급규약’을 제정한다. 이 규약으로 육·해군 및 헌병·경찰통신은 원활하게 된다. 그러나 일반 공중통신은 이용이 대폭 축소됐다.

 

그리고 ‘특별지급관보, 공습시전보취급특례, 전기통신사령규정’을 만든다. 1945년 4월 ‘전기통신 사령규정’은 기존 전기통신시설에 의한 통신소통을 보다 향상시켜 비상사태 발생 시에 중요 통신망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화사업 면에서도 통제를 시작한다. 1941년 8월 9일 시외통화를 억제한다는 구실로 ‘특별지급통화취급규칙’을 제정하고 통화용어는 일본식 등으로 제한한다. 전국 통신관서에는 ‘전시전화취급의 특례(용어 제한)’와 통화를 견제하기 위한 이용도수의 제한, 통화시간의 단축 등을 시달한다.

 

또한 1941년 8월 ‘전시취급순서’ 및 ‘특별지급통화취급규칙’의 제정으로 전화통화의 순서 와 지급통화 범위 등을 정한다. 1941년 12월에는 전화개통신청 방법에 대한 ‘전시전화 특별규칙’을 제정한다. 이러한 법의 규정으로 시외통화는 주로 전시지원체제를 수행하는 제반 공무와 일제의 정책 수행에만 이용되었을 뿐 일반가입자들의 사용은 억제된다. 1941년 8월 10일 시외통화가 점차 폭주하게 되자 전시지원체제상 긴요한 통화를 신속히 소통시키기 위해 ‘특별지급통화취급규칙’이 제정 실시된다. 

 

일제는 태평양전쟁(1941~1945)이 막바지에 이르게 되자 전쟁 상황이 악화되어 병력 부족이 심각해지자 1944년 조선에 징병제를 시행한다. 총독부는 조선인을 전쟁에 반강제적으로 동원한다. 징집을 연기하고 있던 학생들에 대해서도 재학기간을 단축하고 징집연기를 폐지해 조선학도지원병으로 일본군에 동원을 강행한다. 

 

한편, 헌납이란 허울 좋은 구실로 전화설비를 정부에 내놓도록 단행한다. 1943년 6월에 군사통신 및 중요정보의 수집, 전시물자의 생산, 수송력의 확보 등에 직접 관계있는 통신시설의 공출운동이 전개된다. 이러한 강압적인 징발로 인하여 관서나 개인의 통신시설들은 상당수가 강제로 거두어들여졌다. 또한 지급이니 특별이니 하는 각종의 통화를 취급하는 전화통화는 억제된다. 1945년 5월에는 전화설비의 전용에 대해서도 반강제로 자발적인 가입취소를 청구하도록 했다. 

 

3·1운동과 통신항거 

 

일제의 통치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조선에 대한 경제적 착취의 보조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던 전기통신시설에 대한 조선인의 반발은 거셀 수밖에 없었다.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으로 전기통신 시설은 조선인들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었다. 

 

▲ (좌) 조선시대 전신주 (우) 3.1 만세운동


만세운동 군중들은 정부 기관과의 연락을 끊기 위해 전선을 절단하거나 전화시설 파괴와 우편소를 습격한다. 경기도에서는 3월 29일 오산에서 800여명이 우편소를 습격하여 전화시설을 파괴한다. 4월 1일에는 여주와 안성에서 역시 우편소를 습격하고 다수의 통신기기를 파괴한다. 

 

강원도에서는 3월 28일 금성군에서 약 300여명의 군중이 3개의 우편소를 파괴한다. 충청도 천안시 병천에서 우편소를 습격하여 전선을 절단한다. 경상도 합천군 초계에서 3,000여명이 우편소를 파괴한다. 삼가에서는 운동 군중들이 전신주를 쓰러뜨리고 우편소를 습격하는 등 우편소 7개소와 다수의 전신주가 파괴된다. 

 

이와 같이 3.1운동이 발발한 약 2개월간 운동 군중들이 파괴한 관공서는 총 116여 개소였다. 그 가운데 우편소 완전파괴는 2개소, 일부파손은 14개소였다. 통신시설의 파괴도 상당량에 달했다.  

 

이세훈 

KT 시니어 컨설턴트

한국경제문화연구원 ICT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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