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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⑯

[제3기] 일제강점기(1910~1945년) “통신”에서 “체신”으로 명칭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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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훈
기사입력 2020-05-12

[제3기] 일제강점기(1910~1945년) “통신”에서 “체신”으로 명칭 변경

 

1910년 10월 1일 일제는 조선총독부 설치와 아울러 총독부 통신국 통신관서 관제를 제정하여 통감부 통신관서 관제를 전면 개정한다. 총독부 통신국은 통신뿐만 아니라 항로표식. 기상관측. 전기사업감독. 발전수력 조사업무 등 부대관리 사무도 포함시켜 전국적 체제를 활용했다. 1912년 4월에 공포된 총독부 체신관서관제에 따라 “통신”이라는 명칭을 “체신”으로 개칭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발발한 1941년을 고비로 하여 중첩되던 부대관리 사무를 타 관서에 이관하기 시작한다. 이는 대동아 통신망의 구성으로 인한 통신관리의 강화와 관장기구의 전문화를 기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인 편중의 통신보급 

 

일제는 1922년에 전신전화정비 5개년계획을 수립하여 공중통신에 이용될 수 있는 대규모 확장공사를 수립한다. 그러나 군비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므로 경비의 조달이 순조로울 수 없었다. 결국 전신전화 정비사업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제는 1930년에 다시 제2차 전신전화정비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확장사업에 착수한다. 그러나 1931년 만주사변으로 인한 재정긴축정책으로 본 계획은 예정대로 시행하지도 못한 채 사업을 끝낸다. 

 

▲ 조선시대에서 현재의 우체국 로고 변천사 


일제는 1937년에 제3차 전신전화확장개량 5개년 계획을 시행했지만 역시 큰 성과를 보지 못한다. 비록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지만 몇 차례에 걸친 전신전화확장 사업으로 전화보급은 조금씩 증가하고 있던 추세였다. 조선통치에 불편을 느낀 일제는 주요도시에 시내전화 교환시설을 신설하는 한편 이에 연결하여 시외전화회선을 신설 또는 증설해갔다. 

 

대여전화와 다방

 

1920년대부터 경성 명동과 충무로 일대에 일본인 상점 밀집지대가 형성된다. 여기에 일본계 백화점으로 미츠코시, 조지야, 미나카이, 히라타백화점이 설립된다. 1930년대 후반 민족계 백화점으로 화신 백화점이 들어선다.

 

일본계 미나카이백화점은 경성본점을 시작으로 주요 지점의 신·개축으로 규모에서 조선 최대가 된다. 무선전신을 이용한 경영정보시스템의 구축에 그 비결이었다. 시외전화도 어려운 시기에 미나카이백화점은 교토본사와 경성본점, 신경점 간은 모두 무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무선전신을 활용한 일상적인 지시나 보고로 경쟁 백화점보다 앞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1930년대 당시 백화점의 등장으로 인하여 상업계는 점차 위협을 받게 된다. 따라서 전화는 상품판매의 수단으로 상업계의 필수품이 되었다. 또한 간판에 전화번호가 없는 상점은 고객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상점을 열게 되면 아무리 값이 비싸더라도 먼저 장만하려고 하는 것이 전화였다. 상점 주인이 제일 아끼는 것이 전화였다. 당시에는 전화가 귀해서 전화를 빌려 쓰는 대여전화가 있었다. 이렇듯 전화는 상품주문의 접수를 받는 용도로서 사용되었다. 

 

특히 1920~1930년대 조선에서 전화가 가장 많이 사용된 곳은 요리점과 요정이었다. 일본인 고관들이 기생을 부플 때 의례 전화를 이용한다. 전화를 건 횟수에 따라 요금을 내는 도수제가 시행 된다. 도수제 실시 이후 1년 사용료 114원을 초과하는 가입자도 많았다. 직업별로 보면 요리집이 104대로 제일 많고 그 다음이 관공서로 57대, 회사·은행 51대, 여관 24대였다. 또 이것을 하루 평균으로 사용도수를 보면 백화점이 88번으로 제일 많고 요리집이 66번, 기생집이 65번, 여관이 63번 등 이었다.

 

또한 전화가 많이 사용되던 또 하나의 장소로 다방이 있었다. 다방은 전화를 걸거나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이다. 다방의 전화는 업무용에서부터 사교용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러한 사정은 해방이후에도 마찬가지여서 1970년대까지 다방은 전화방의 역할을 했다. 당시 다방은 차를 마시는 만남의 장소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사무실이자 연락처였다.

 

처음 사용된 수동식 전화기에는 자석식과 공전식이 있다. 자석식 전화기는 전화기에 붙어있는 자석 발전기를 손으로 돌려야 했다. 이때 교환수가 들어온 신호를 보고 통화를 원하는 상대방에게 물어 본 후에 교환대에서 수동으로 전화선을 연결시켜 준다. 공전식 전화기는 전화를 거는 사람이 수화기를 들면 곧바로 교환수에게 신호가 갔고 그러면 교환수가 상대방을 물어본 후 연결시켜 준다. 이후 전화교환기는 수동식 교환기에서 교환수가 필요 없는 기계식 자동교환기 그리고 전자식교환기로 발전해 왔다. 

 

이세훈 

KT 시니어 컨설턴트

한국경제문화연구원 ICT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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