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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챔프 홍수환, 남기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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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 기자
기사입력 2020-05-23

지난 주말 KBC 홍수환(중앙고-인천체대) 회장의 취재를 위해 길을 나섰다. 지난 9일 백인철 챔프 31주년 기념식에 참석해준데 대한 답방 이었다. (존칭 생략) 장소는 홍수환의 친조카인 홍자린이 체육관을 운영하는 서대문구 북아현동 JR 복싱 체육관으로 정하고 서대문구에서 입지를 구축한 조흥전 관장과 동행해 홍수환과 만남을 가졌다. 

 

▲ 조흥전 관장을 지도하는 홍수환 KBC 회장     ©조영섭 기자

 

홍자린은 기자가 2002년 당시 배재고 졸업반인 그를 3개월간 지도한 인연이 있었는데 동체시력과 민첩성이 뛰어난 사우스포로 양질의  DNA를 가진 남양 홍가(洪家)의 뿌리인 관심 받는 유망주였다. 하지만 모친의 극심한 반대로 복싱을 접은 홍자린은 이후 신학대학에 입학한 후 복싱의 향수를 잊지 못해 선릉역에 위치한 백부 홍수환이 운영하는 스타복싱 체육관 에서 5년 정도 트레이너 생활을 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홍수환과 이영래 사범 휘하에서 고급 기술을 전수 받았는지 첫눈에 미트잡는 테크닉이 예사롭지 않았다. 조흥전은 이런 홍자린의 지도능력을 인정, 2015년 본인이 서대문에 체육관을 오픈했을 때 홍자린을 수석사범으로 임명해 2018년 그의 결혼과 동시에 트레이너 생활을 접을 때까지 함께한 인연이 있다. 이러한 인연으로 조흥전 관장이 이번 홍수환의 취재에 오작교 역활을 담당했다. 

 

홍자린의 부친은 1986년 ‘철없던 사랑’이란 곡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5주 연속 가요톱텐 1위를 차지한 홍수환의 친동생이자 현재 구리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홍수철 목사이다. 그날은 서울 한남동 에서 KBC 복싱 경기가 있던 날로 경기를 참관한 홍수환은 경기가 끝나자 2시에 북아현동 체육관에 도착, 오찬을 함께하며 3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시작했다. 

 

▲ (왼쪽부터) 조흥전관장 김민희선수 홍자린관장    ©조영섭 기자

 

새천년, 기자가 문성길과 강동구에 체육관을 오픈할 때 홍수환이 친히 방문하여 같이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눴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홍수환이 돌고 돌아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누님 처럼 생긴 옥희 여사를 17년만에 극적으로 재회 하듯이, 필자도 홍자린과 18년만의 상봉을 상기시켜보면 법화경에 나오는 인생이란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는 회자정리 (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홍수환 회장이 백인철 기념행사에 참석을 한 쉽지 않은 결정과정에는 전 IBF 페더급 챔피언 정기영 선배의 가교역할이 참으로 컸다. 그는 기자에게 한국복싱의 단합과 발전을 위해 지난일은 모두 잊고 모든 권투인이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기자도 지난번 영주 체육관 개관식과 남양주에서 개최된 복싱 경기장에서 홍 회장을 외면하고 인사를 거부한 경솔한 행동에 대해 홍자린과 후배 조흥전 관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70년대 한국 프로복싱 무대에서 2체급을 석권했던 홍수환 만큼 영욕을 함께한 선수도 없을 듯하다. 1974년 7월4일 해와 달이 교대하는 남아공 더반에서 홍수환이 세계챔피언에 등극, 폭팔적인 인기와 함께 그 자신의 영광은 물론 한국 프로복싱의 활로가 크게 열리기 시작했다. 당시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는 6번 다운당하고 극적인 한방으로 로메오 아나야(멕시코)에 13회 역전 KO승을 거둬 럭키하게 WBA 밴텀급 정상에 등극한 32살의 전성기를 지난 복서였다. 

 

그러나 그 경기 이면에는 홍수환이 스스로 지옥의 혈전이라 불리는 12전승(9KO승)을 기록한 태국의 별이자 세계랭커인 타놈지트 수코타이와 정상정복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 방콕 결전(73년 2월9일)에서 주저앉았다면 더반의 영광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한 영광은 없는 법이다. 

 

IMF가 한창일 때 박세리의 US오픈 우승과 함께 고통받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일깨워준 CF가 하나 있었다. 빛바랜 흑백 필름에서 되살아난 홍수환의 4전5기 신화였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오뚜기처럼 일어나 끝내 승리의 포효를 외쳐댄 홍수환은 산업화되는 사회에 점점 왜소해져 가는 사람들에게 원시적 생명력과 투혼의 향수를 되살린 박제 되지 않은 신화였다. 

 

▲ 최초의 2체급 챔피언 홍수환의 현역시절 트레이닝 

 

사실 카라스키야도 실력에 비해 언론에 의해 크게 포장되고 부풀려진 복서였다. 78년 8월19일 카라스키야와 장충체육관에서 맞대결한 황복수는 그다지 강펀치를 보유한 위협적인 복서는 아니었고 턱보다는 배가 약한 복서라 평했다. 물론 홍수환의 복싱을 폄훼하는 의도는 아니다. 원정경기에서 시차적응 등 핸디켑은 경험상 필자는 익히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홍수환이 카라스키야 전을 앞둔 2체급 챔프가 되는 과정에서 76년 5월 맞대결한 전 WBC 플라이급 챔피언 베니세 보코솔(태국)과 치열한 타격전 끝에 신승한 경기가 없었다면 카라스키야와의 극적인 경기도 연출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다. 통산 57전 49승(36KO승)8패를 기록한 베니세 보코솔은  1975년 2월 30승 1패를 기록한 유망주 황복수에 9회 KO승을, 그해 9월 장충체육관에서 12전 전승(8KO승)을 기록한 고생근을 10회 판정으로 잡은 파워와 테크닉을 겸피한 강타자였다. 

 

또한 홍수환이 한 차례씩 누른 염동균과 장규철 그리고 WBA 플라이급 챔피언 살라바리아에 9회 KO승한 필리핀 국가대표 출신 알디아즈 역시 72년 6월 홍수환과 동양 타이틀전에서 판정패한 전력 등을 종합해보면  홍수환의 복싱스킬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잣대가 된다.  

 

홍수환이 2체급을 석권한 1977년은 우리나라가 최초로 수출 100억불을 달성한 해였고 김응룡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이 슈퍼 월드컵(니콰라과)대회에서 사상 첫 세계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린 해였다. 또한 77년은 고상돈이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해이자 작곡가 신대성에 의해 발탁된 약관의 홍수철이 가수로 데뷔한 해였다. 홍수철은 히트곡 ‘철없던 사랑’이 단일곡 으로 1986년 640회 방송되면서 최다방송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해 겨울은 어수선했다. 수십 명의 인명을 앗아간 이리역 폭발사고를 비롯해 장성 탄광 연쇄사고 등 잇따른 대형 참사는 가뜩이나 우울했던 사람들을 더욱더 움츠리게 만들었고, 홍수환의 경기를 일주일 앞둔 11월 20일,  WBA Jr 라이트급 타이틀에 도전한 김태호의 10회 KO패는 국민들의 분위기를 차갑게 냉각시켰다. 이런 암울한 분위기에 폭발한 홍수환의 역전 KO승은 푹 꺼진 분위기를 반전 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3차방어전까지 일본인 프로모터 아라시다에 의해 그가 원하는 장소에 그가 지시하는 상대와 그가 지급하는 파이트머니를 군말없이 받는 굴욕적인 옵션에 발목이 잡혀 사기가 크게 꺾인 홍수환은 자모라와 2차전처럼 질질 끌려다니면서 방어전 을 치른다. 경주마가 좋은 기수를 만나야 우승을 자주 할수 있듯이 프로복서들도 매니져를 잘 만나야 출세의 길이 열린다. 그 때문인지 홍수환은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이란 말을 자주 내 뱉었다.  

 

아라시다는 지난해 WBA jr페더급을 신설할 때 직접 참관 초대 챔피언을 뽑는 흥행권을 몽땅 사들이면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한 프로모터 였다. 1차에서 가사하라를 15회 판정으로 꺽고 방어에 성공한 후 홍수환이 받은 파이트머니는 겨우 3만불(한화 1천500만원)이었지만 도전자 가사하라는 당일 수령한 격려금만 2천4백만원 이었다. 현대판 어둠의 자식과 신의 아들의 차이점 이었다. 

 

▲ 78년 5월 WBA jr 페더급 타이틀전 카르도나와 홍수환(좌측)

 

카르도나와 벌인 2차 방어전에서도 홍수환은 초반부터 상대의 송곳처럼 날카로운 잽과 버팅으로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경기를 펼친다. 3회에 부상에 의해 경기를 중단시켰다면 규정대로 무판정으로 타이틀 방어를 할수 있었지만 그건 우리의 희망사항 이었고 옵션(이면계약)을 쥐고 있던 프로모터 아라시다의 꼼수(?)에 의해 경기는 속행되었고 결국 가로 4cm 세로 2cm L 자(字) 형으로 왼쪽 눈 위가 찢어져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상대의 공격을 속수무책으로 허용, 12회 마침내 스스로 경기를 포기하면서 타이틀을 상실한다.

 

도전자 카르도나는 홍수환이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싸웠다 해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디펜스가 견고한 복서였다. 특히 홍수환보다 6cm나 긴 리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리한 잽은 날카롭고 정교했다. 홍수환, 그가 카라스키야를 꺽을 때는 인기가 급상승하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부각되었지만 카르도나에게 패하자 지하2층 바닥까지 추락하며 주어진 찬사만큼이나 질타와 경멸이 뒤따랐다. 당시 홍수환의 참담한 심정은 노천명의 ‘고별’이란 짧은 시구가 그의 심정을 대변해  주었으리라.  

 

‘어제 나에게 찬사의 꽃다발을 보내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주던 인사들 오늘은 멸시 눈초리로 혹은 무심히 내앞을 지나쳐 버린다. (중략) 우정이란 것도 신의라는 것 이것은 다 어디 있느냐. 생쥐에게 뜯어먹게 던져 주어라.’ 

 

▲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김철호와 트레이너 홍수환(좌측)  

 

홍수환은 은퇴 후 극동 프로모션의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김철호의 트레이너로 발탁된다. 그가 트레이너가 되면서 풍부한 경험을 살린 리더십으로 3차방어의 관문을 쉽게 통과했다. 챔피언의 자리는 외롭고 괴로운 수도승 같은 길이라는 걸 숙지하고 있는 홍수환은 약관 20살의 김철호에겐 안성맞춤의 트레이너 였다. 하지만 이시이 고오키와 4차방어전 직전까지 호흡을 맞춰오던 홍수환은 김철호와 결별을 한다. 

 

이후 진충수, 송배영, 김준호, 김진길 등으로 트레이너가 교체하면서 김철호는 페이스를 잃었고 이는 결국 부메랑 이 되어 6차방어전에서 직격탄을 맞고 연체동물처럼 맥없이 주저앉는다. 달걀이 속에서 깨지면 병아리가 되어 나오지만 밖에서 깨지면 프라이가 된다는 것을 증명한 경기였고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 철칙을 간과할 결과였다.

 

기자는 복싱역사를 6년째 집필하고 있다. 인간은 시간 앞에 먼지 같은 존재다. 하지만 언젠가 먼지처럼 사라지더라도 흔적은 남기고 떠나고 싶다. 왜냐면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것은 기억에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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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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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복싱 20/05/23 [21:50]
멋있어요~ㅎㅎㅎㅎ
유철헌 20/05/23 [22:11]
잘 읽었습니다~
권투소년 이교덕 20/05/23 [22:26]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스포츠영웅
홍수환 선수의 얘기는 항상 감동적이고
재밌다
박태진 20/05/23 [22:41]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Jang777771 20/05/23 [23:00]
잘읽었습니다
김민혁 20/05/23 [23:35]
멋진글 잘봤습니다~!
봉복이 20/05/23 [23:36]
홍수환선생님 하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로 유명하신 분이죠^^  복싱역사를 이토록 줄줄꿰고 계신분은 조영섭 관장님만  가능  하신것같습니다.ㅎ  좋은기사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박사프로복서 20/05/24 [07:16]
"조영섭의 복싱스토리"는 언제 읽어도 감동입니다. 그때 그시절을 현장감 있게, 그리고 상화을 기사로 써주니 바로 한국프로복싱 역사가 만들어 졌습니다.
동수 20/05/24 [08:23]
조관장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베냐민 20/05/24 [09:13]
멋지고 아름다운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교덕 20/05/24 [22:00]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1976년  10월 16일 인천선인체육관
불멸의  난타전   홍수환 vs 알폰스자모라
경기가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인성이먼저 20/05/25 [00:10]
와이프분 폭행은 조금 충격적
폴민준 20/05/25 [13:05]
잊혀져가는 영웅들을 기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테 20/05/26 [10:34]
조영섭 관장님의 글은 언제나 맛있게 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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