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 아침의 시] 뭉클 / 이사라

가 -가 +

서대선
기사입력 2020-06-01

뭉클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시력이 점점 흐려지는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희로애락

가슴 버린 지 오래인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사랑이 폭우에 젖어

불어터지게 살아온

네가

나에게 오기까지

힘들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

눈물이 가슴보다

먼저 북받친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네 뒷모습을 보면서

왜 뭉클은

 

아니다 아니다 하여도

끝내 

가슴속이어야 하나 

 

# 그 많던 시간 모두 어디로 간 걸까요. 이렇게 “저녁이 쉽게 오다니”... 나이를 먹으면 왜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쟈네의 법칙(Pierre, Janet, 1859-1947)’에 의하면 ’지금 살고 있는 시기에서 일정한 시간의 심리적 길이는 나이의 역수에 비례 한다‘고 보았습니다.

 

예컨대, 1살짜리의 하루는 30세의 30일과 같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워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지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 사물이 익숙해져 새로운 자극이 줄어들게 되면 기억을 다양하게 조각할 수 없기에 하루가 무척 짧게 느껴지는 것이랍니다. 또 같은 일 년이라도 2살 아이에게는 인생의 1/2이지만, 70세 어른에게는 1/70 이기에 인식하는 시간의 느낌이 달라집니다. 그 외에 기억력 감퇴도 요인이 됩니다, 나이 들수록 기억력이 저하되면 한 달 전이나 몇 년 전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만큼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력도 점점 흐려지고”, “저녁이 쉽게 오며”, “희로애락/가슴 버린 지 오래인/사람에게/뭉클한 날이 자주”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면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로 설명 될 수 있겠지요. 자이가르닉 효과란 완전하게 마치지 못한 일을 마음속에서 쉽게 지우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는 다중작업(Multitasking)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쉬운 과업부터 빨리 마쳐 버린 후에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워버리려 합니다.

 

풀지 못한 문제에 더 많은 자원을 배정하기 위해서 필요 없는 것을 재빨리 지워 버리려는 것인데, 이렇게 지워버리기 위해서는 ‘끝’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이 완결되지 않으면 긴장이나 불편한 마음이 지속되어 잔상이 오래 남을 수 있는 데,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쉽게 잊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폭우에 젖어/불어터지게 살아온/네가/나에게 오기까지/힘들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라고 반문해보는 시간,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랑은 쉽게 올 수 없었기에 그 사랑은 마음속에서 해결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기억의 회로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되뇌고 있었던 것이지요. “시력이 흐려져도” “저녁이 쉽게 오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네 뒷모습을 보면서/왜 뭉클은” “아니다 아니다 하여도/끝내/가슴속”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요.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댓글

i

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문화저널2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