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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돌주먹 문성길이 인정한 해머주먹 송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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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 기자
기사입력 2020-06-01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모든 스포츠가 정체현상을 빚거나 멈추면서 현실 속 재앙으로 피부 깊숙이 다가온 지난 주말, 경기도 시흥시의 송광식 관장이 운영하는 로드복싱 체육관 개관식에 복서 출신 임종대(수방사), 문성길(목포대) 챔프와 함께 참석했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이참에 한국복싱도 성찰의 시간과 자성의 침묵으로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무엇을 준비할까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 국가대표 출신 송광식 관장  ©조영섭 기자

 

이날 개관식에는 염동균, 장정구, 문성길, 이경연 등 세계챔프 4명을 비롯해 아마추어 국가대표 호계천, 김명곤(수원대)과 34살에 국내 플라이급 정상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인 안산제일체육관 김학명 관장 등 60여명의 복싱인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특히 오랜만에 기자와 조우한 1981년 제7회 킹스컵 라이트급 은메달에 이어 82년 템머대회에도 국가대표로 출전한 안양지역 최초의 국제심판(AIBA)이자 현재 안양시청 감독과 전무를 병행하고 있는 호계천(60년 용인대ㅡ수경사)선배와 만남은 옛 추억이 진한 향수처럼 묻어있기에 매우 반가웠다.  

 

복싱계 변방인 안양의 박정치 관장 휘하에서 복싱을 수학한 호계천은 1980년 61회 전국체전(전주)에서 전북대표 박남철을 꺽고 라이트급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는다. 이후 장족의 발전을 이룬 호계천은 그해 11월 킹스컵 선발전(라이트급)에서 정용범(동국대)과 김응식(수경사)을 잡았던 극강의 장윤호(한국체대)와 팽팽한 접전 끝에 판정으로 누르고 태극마크를 단다. 

 

탄력을 받은 그는 올림픽 대표였던 신종관(한국체대)을 판정으로 꺽고 상승세를 탔지만 결정적인 고비마다 암초처럼 만난 복병 김동길(한국체대)에 3연패를 당하며 상승세에 브레이크가 걸린 불운의 복서였다. 그는 김동길에게 80년 제10회 대통령배 결승에서 RSC 로 패한 경기를 시작으로 81년 4월에는 킹스컵 본선 결승에서 판정패 했으며,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라이트웰터급 최종결승에서는 초반 스탠딩 다운을 뺏는 등 주도권을 잡았지만 3회 역전 RSC 로 패했다.

 

▲ (좌측부터) 송광식 관장, 염동균 챔프, 민영기 대표   ©조영섭 기자

 

그 후 83년 로마 월드컵 라이트급 최종선발전(동국대)에서 전칠성 에게 패한 후 복싱을 접은 호계천은 박정치 관장 휘하에서 지도자로 변신해 철학 있는 스파르타식 지도로 명성을 날린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8강에 진출한 한형민(안양공고ㅡ한국체대)과 서울컵에서 라크바 심(몽골)과 맞대결한 김종길(안양공고ㅡ경희대)등 걸출한 국가대표 선수들을 발탁, 조련한 그는 최근에는 청소년대표 이학진(경기체고)을 발굴해 선수를 보는 안목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도자 에겐 다이아몬드 같은 선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감정할 능력이 없으면 그저 돌일 뿐이다. 지도자는 때론 혹독하게 때론 부드럽게 제자들이 성공의 꽃을 피우는 과정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카멜레온 같은 능력을 갖추지 않고는 곁코 좋은 성적을 창출할 수 없다. 그는 기자에게 지난번 정선용 총장 기사를 감동적으로 잘 탐독했다고 덕담을 건넨 후 정 총장은 총명함과 영민함 그리고 두둑한 베짱을 지닌 한국복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후배 복서 라고 칭송하면서 아마나 프로나 빨리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선 시멘트처럼 강한 응집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번 주 복싱 스토리의 주인공은 호계천과 같은 국군체육부대 출신의 국가대표 출신의 복서 송광식 이다. 그는 1964년 3월16일 대전출신으로 국내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전 한밭체육관(이수남 관장) 출신이다. 한밭체육관은 WBC 슈퍼 밴텀급 챔피언 염동균을 비롯해 김옥태, 김수원, 강민구, 이형신, 김사왕과 연예인 출신 이계인, 오영세, 신우영 등 국내 정상급 복서들을 다수 베출한 사설 명분 복싱 체육관이다. 

 

81년 복싱에 입문한 송광식은 82년 3월 청운실고 1학년 때 전국학생 신인대회(페더급) 에서 우승한 후 불과 11개월만인 83년 2월, 킹스컵 국가대표 선발전에 혜성처럼 나타나 아마추어 복싱판 페더급에 소년등과 장원급제한 복싱신동이었다. 학생대회와 국가대표 선발전은 링이라는 무대의 갭과 패러다임이 확연히 다르지만 척박한 토양에서 송광식은 그 차이를 짧은 순간에 극복하고 대표팀에 합류한 것이었다.  

 

▲ (좌측부터) 문성길 챔프, 호계천 감독  ©조영섭 기자

 

당시 페더급은 부동의 국가대표 박기철(한국체대)이 잠정은퇴를 한 상태에서 밴텀급에서 문성길과 3연전을 벌여 2승1패를 기록한 치악산 호랑이 신창석(원주. 경희대)이 페더급으로 월장해 킹스컵 대표선발전 준결승에서 송광식과 맞대결을 벌였다. 이 경기에서 돌주먹 문성길과 3차레 격돌해서도 끄떡없이 버티던 신창석이 송광식의 메가톤급  해머펀치에 RSC로 패했던 것이다. 송광식의 등장은 놀라움을 뛰어넘어 경이롭기 까지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신창석은 후에 국내 최초로 라이트플라이급, 플라이급, 밴텀급에 이어 페더급까지 석권, 국내 최초로 4체급에서 국가대표로 발탁, 종전 3체급(라이트/라이트웰터/웰터급)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한 김동길의 벽을 허물고 한국복싱의 역사를 다시 쓴 집념의 복서였다. 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7체급을 석권한 아마추어 국가대표팀은 당시 선발전을 통해 송광식을 비롯한 김광선, 신준섭, 김유현, 김기택 등 새얼굴이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세대교체의 전환점이 되었다 

 

사실 그 대회 최우수선수상은 한국체대 입학생인 이해정이 받았지만 냉정한 잣대로 평가하면 결승에서도 권길문(목포대)을 신창석 처럼 군말 없는 RSC로 꺽으며 강렬한 임팩트를 심어준 송광식이 진정한 MVP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송광식과 기자는 83년 월드컵 선발전, 대통령배 전국체전 등에 함께 출전하면서 얼굴을 익혔다. 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순발력과 태권도 4단으로 중무장한 스피드와 펀치력이 발군인 송광식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에서 문성길을 능가하는 천부적인 복싱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돌주먹 문성길이 서석에서 기자에게 “광식이 저 녀석은 무시무시한 해머펀치를 지닌 괴물같은 복서”라고 치켜세우는 유일한 복서였다. 

 

▲ (좌측부터) 임종대, 문성길 챔프, 송광식 관장  ©조영섭 기자

 

83년 4월에 킹스컵대회에 출전해 8강에 진출한 송광식은 5월에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챌린저대회에 신준섭(원광대), 이성목(원주농고), 정용범(동국대)과 함께 출전하며 관록이 붙는다. 송광식은 그해 제13회 대통령배대회(광주)에서 전북대표로 출전한 기자가  준결승에서 오광수(전남)와 일전을 끝내고, 스탠드에서 편안한 자세로 페더급의 송광식(충남)이 강성덕(경남), 박용운(부산)과 펼치는 육체의 퍼포먼스를 감탄하면서 지켜본 지난날이 생생히 떠오른다.    

 

84년 2월,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라이트급 준결승에서 홈링의 아스도나에게 지독한 텃세에 밀려 3ㅡ2로 분패하며 동메달에 그친 송광식은 84년 LA올림픽 선발전에 출전해 내구력이 약한 83년 로마 월드컵 라이트급 은메달리스트인 전칠성(목포대)과 1차선발전 최종 결승에서 맞대결해 두차례 다운을 시키면서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판정은 뒤집어 지면서 큰 충격을 받는다.   

 

언론에서 불공정한 판정이라는 기사가 쏟아졌지만 흘러간 물은 되돌릴 수 없었다. TV로 생중계된 이 경기에서 송광식의 스승이자 70년 방콕아시안게임(플라이급) 금메달리스트인 김충배 교사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장면이 생각난다. 기자가 볼 때는 이경기가 송광식의 복싱역사에서 상승이냐 하락이냐를 결정하는 교착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중요한 일전이었다. 왜냐면 이경기후 멘탈에 균열이 생기면서 페이스가 주춤해졌기 때문이다. 

 

85년 동아대에 입학했지만 1년 후 휴학을 하고, 86년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하며 제2의 전성기를 펼친다. 87년 제10회 인도네시아 대통령배에 윁터급으로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한 송광식은 타고난 천부적인 실력에 비해 국내의 백인철 국외에 로베르토 듀란처럼 밤이 너무 화려했다. 그리고 툭하면 태능선수촌에서 훈련하다가 무단이탈, 야밤에 링위가 아닌 길거리에서 파이팅 대열에 합류해 난타전을 벌이다가 경고 누적(?)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되는 아픔도 겪으면서 그의 성장에 발목을 잡았다.  

 

▲ 시흥시 로드체육관 송광식관장 부부   ©조영섭 기자

 

올해 57살의 송광식이 돌고 돌아 복싱판에 컴백했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자신을 키운건 8할이 바람이라 일컬었지만 오늘날 송광식이 이 정도 위치까지 올라온 이면에는 아내의 평강공주 같은 헌신적인 내조가 있었다. 그 내조에 힘입어 박종팔에 이어 송광식도 장군(?)으로 진급했다. 

 

기자와 송광식의 관계는 기자가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시절 접한 김남조 시인의 평행선이란 시구절과 같은 관계다. 하나가 되어 본적도 없지만 둘이 되어 본적도 없고 가까워지면 가까워질까 두려워하고 멀어지면 멀어질까 두려워하는 불원불근(不遠不近)의 그런 관계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복서 송광식은 맺고 끊는 것만큼은 분명한 심지가 굵은 복서란 사실이다. 

 

이제 그의 인생 3막이 시작되었다. 삶은 확고한 굳은 믿음이 성공의 첫걸음이다. 왜냐하면 인생은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성경구절에도 ‘믿어라 믿는 대로 될지어다’라는 구절이 있듯이 확실한 믿음을 갖고 사는 인생, 그것은 성공의 보증수표다. 그의 건승을 바란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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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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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민준 20/06/01 [12:12]
인생3막 응원하겠습니다
박태진 20/06/01 [12:38]
좋은기사 잘읽었습니다^^
이재영 20/06/01 [12:42]
은혜로운 성경구절 감동입니다
늘 멋진 복싱이야기 들려주시는 조영섭 관장님
감사합니다
이상기 20/06/01 [14:00]
유익한 기사에 감사드립니다~^^
신성수 20/06/01 [16:50]
오늘도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에 흠뻑 빠져 본다....지나간 복싱 스토리를 보면서 그 당시의 추억을 다듬어 본다...오늘도 즐겁게 !!!!!!!!!
박성우 20/06/01 [19:01]
믿어라 믿는대로 될지어다!
개관을 축하드리고 번창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창창 20/06/01 [19:45]
복싱 스토리를 통해 복싱 역사를 새롭게 공부하는 마음으로 탐독하고 있습니다. 한국 복싱의 부활을 위해 화이팅해봅니다!!
라플란드 20/06/05 [22:10]
항상 좋은글  응원하겠습니다
ㅁㄴㅇ 20/10/06 [01:05]
MOK JUNA 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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