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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82년 신인왕 최우수복서 이정택의 복싱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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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 기자
기사입력 2020-06-08

지난 주말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위치한 신도복싱 체육관에서 개최된 KBC(한국 권투 위원회)루키 퍼레이드 대회에 참관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사설 체육관에서 4회전 5경기, 6회전 1경기 등 단촐하게 치러진 경기였지만 한국복싱의 부활을 알리는 예광탄을 쉼 없이 쏟아내다보면 시나브로 부활의 서곡이 울려 퍼지리라 생각한다. 

 

야구경기 에서 타석에 선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려야 삼진을 당하든지 안타를 때리던지 결과물이 나오듯, 잦은 경기를 치러야만, 구우일모(九牛一毛)나 창해일척(滄海一擲) 같은 미세한 울림 현상에 그칠지라도 권토중래(捲土重來)의 그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 KBC 심판위원이자 WBO 국제심판을 겸직하고 있는 이정택 심판위원  © 조영섭 기자


과거 한국스포츠 역사에서 역사성과 전통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때 첫손가락에 꼽히는 종목이 바로 복싱이다. 프로복싱은 전종목을 통틀어 세계무대를 무려 52회나 정복한 독보적인 종목이고, 아마복싱 역시 역대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 등 각종 국제무대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효자종목임에 꼬리표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런 과거의 영광을 재현시키기 위한 시금석을 삼기위해 치러진 이번 대회는 비록 사설체육관에서 소리 소문 없이 치러진 대회였고, 임팩트 있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복서도 없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참관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새천년 들어 하향곡선을 긋기 시작한 한국 프로복싱은 여러 해 동안 내분으로 자중지란을 겪으며 침체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목과 질시는 도를 넘었다. 또한 선수수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이해관계가 겹치는 여러 단체가 경칩 봄날에 개구리 뛰어나오듯 탄생·난립하는 상황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세월이 흘렀고 시대도 변했다. 한국복싱이 분명 잘못 돌아가고 있다. 이건 전적으로 ‘너’가 아닌 ‘나’와 ‘우리’가 잘못했다는 공동체 책임을 가져야 정상적인 궤도로 진입할 것이라 생각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의식구조를 개선하는 게 시급한 선결과제란 생각이 든다. 

 

▲ (좌측부터) 이정택과 상원체육관 동료 양홍규 


이번 남양주시 신도체육관에서 벌어진 루키대항전을 참관하면서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다. 4회전 3번째 경기인 윤원형(손정오 비트체육관)과 박한규(은성복싱)의 라이트급 경기였다. 이 경기는 일진일퇴의 시소경기였고 결과는 1ㅡ0 무승부로 판결이 났는데. 윤원형 선수에게 승점을 준 이정택 심판은 은성복싱 정완구 관장과 동갑내기 막역지우(莫逆之友)다. 기자는 이정택 심판의 공명정대한 포청천의 실체를 현장에서 확인하면서 그가 소신껏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 채점을 한 것은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이번 주 복싱스토리 주인공 이정택은 1962년 면암 최익현, 백사 이항복의 탄생지인 경기도 포천출신 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중학교때 서울로 이전한 그는 고교에 입학한 78년 노병엽 관장이 운영하는 상원체육관에 등록, 졸업할 때까지 20전14승(8KO승) 6패를 기록한 망치주먹 으로 불리던 하드펀처 였다. 그런 그가 81년 3월 경희대 체육학과에 당당히 합격, 입학한다. 특기생이 아닌 일반 학생으로 시험을 치러 합격한 케이스라 더욱 더 상징성 있는 학사복서란 생각이 든다.  

 

경희대 체육학과에 입학한 이정택은 기량을 인정받아 학교 기숙사에서 당시 김유현, 윤영복, 김장범, 양설석 등 동료 선후배들과 1년 동안 합숙 훈련을 하면서 지낸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 경희대 복싱감독이자 70년 방콕 아시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에서 금과 은을 획득, 국위를 선양한 박형춘 선생에게 자신은 아마추어 보다는 프로에 더 적합한 체형이라고 말한 후 아마복싱을 접는다. 

 

이후 상원체육관에서 명장 이형수 트레이너의 지도로 훈련을 한다. 이형수 사범은 상원체육관에서 이정택을 비롯해 정해명, 김민기, 김석호, 나학균, 전찬중, 안영수, 양홍규, 최갑철, 권철, 박병석 등 명선수를 발탁, 지도자로 명성을 날린 조련사다. 

 

▲ (좌측부터) 이정택 심판위원, 홍수환 회장, 박형춘 전 경희대 감독  © 조영섭 기자


기자는 이번 대회에 바로 경희대에서 이정택 지도를 담당했던 은사 박형춘 선생을 무려 38년 만에 상봉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팔순을 넘긴 연세에 어려운 자리에 참석하신 박형춘 선생에게 칠순의 홍수환 회장은 친히 일어나 영접하며 자리를 안내해줬고, 육순의 이정택은 38년 만에 해후한 은사님에게 큰 인사를 하며 지난 추억을 회상하면서 감격스러운 듯 잠시 눈을 감았다. 

 

상원체육관에서 이형수 사범의 조련을 받은 이정택은 82년 프로에 데뷔, 그해 11체급 247명이 출전한 신인왕전 Jr페더급 8강전에서 최석기(정일체)를 1회에 KO로 누르며 워밍업을 한 후, 결승에서 당시 4전 4전승(1KO승)을 기록한 남성체육관의 테크니션 장상인을 2회 KO로 꺽고 우승과 함께 대회 최우수복서로 선정된다. 장상인은 후에 동아체육관의 박항을 판정으로 꺽을 정도로 준수한 실력을 갖춘 수준급 복서였지만 이정택의 망치주먹에 무너졌던 것이다.

 

83년 대학을 휴학하고 이정택은 수방사에 입대한다. 당시 수방사는 동양의 진주 이승훈을 비롯해 백인철, 유명우, 장태일, 이경연, 안래기, 박병수, 임종대, 최응산, 권달원 등이 포진된 초호화멤버였다. 

 

이정택은 85년 6월 28일 한국주니어 페더급 타이틀에 도전한다. 챔피언은 부산동아 체육관 손영찬 사단의 선두주자인 당시 7전6승(3KO승)1패의 최봉호(동아대)였다. 최봉호는 아마추어 시절인 82년, 제32회 학생선수권대회 플라이급 결승에서 오경묵(한영고)를 꺽고 모교인 전북체고가 종합우승할 때 견인차 역활을 했던 유망주이자 펀치력과 근성이 좋은 전형적인 파이터였다. 이 경기에서 이정택은 초반 망치주먹으로 다운을 획득하며 전반적으로 상대를 압박하면서 우세하게 경기를 펼쳤지만 무승부 판정에 고개를 숙였다. 챔피언의 홈링인 부산에서 개최된 것이 승패에 케스팅 보트(Casting.vote)역활을 한 것이다. 

 

▲ (좌측부터) 류명우 챔프, 이정택 심판, 정선용 총장  © 조영섭 기자


이후 이정택은 85년 10월 9일 오차석(부산 아세아)과 대결에서 8회 복부를 맞고 녹다운을 당하는 등 수세에 몰리다가 마지막 10회전을 앞두고 ‘아 재대말년에 경기에서 패하고 자대영창에 입소한다면 후배들에게 무슨 망신살이냐’하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문득 이순식장군의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심오한 단어가 스쳐 가면서 결연한 의자가 치솟았다. 결국 10회 48초만에 터진 이정택의 망치주먹 일격에 오차석이 침몰, KO승으로 경기를 뒤집으며 경기를 메조지한다. 

 

오차석은 86년 11월 IBF 페더급 챔피언 오민근을 판정으로 잡으며 그의 재기에 고춧가루를 뿌린 것을 비롯해 87년 7월 중견복서 임동수에 9회KO승 88년 12월 김춘현을 판정으로 누르고 국내 페더급 챔피언에 등극한 정상급 실력을 보유한 복서였다. 이정택은 복싱 자질은 백인철·박찬희급은 아니더라도 수준급의 기량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단지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멘탈이 부족했다. 구슬도 닦아야 빛이나는 법이고 물도 섭씨 100° 가 되어야 끓는다. 마지막 1°를 넘기지 못하면 99°까지는 그냥 물일 뿐이다. 

 

야구해설가 고 하일성은 야구해설에서도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1% 차이에서 에서 결정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1°를 끓어 올려야만 액체에서 기체로 폭발하는 에너지가 만들어지는데, 이정택은 그 부족한 1%를 끌어올리는 강한 멘탈이 부족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발효과정이 필요하다. 발효기간을 거쳐 숙성단계에서 부족한 1°가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인내와 여유가 모든일에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유명우와 장정구는 그 1%를 끌어올리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친 대표적인 위대한 복서들이다. 마지막순간 포기하고 싶을 때 그 1°를 위해 참아낸 결과,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영웅으로 자리를 잡았다. 

 

▲ 홍수환 회장(사진중앙)과 KBC 한국 권투 위원회 임직원들  © 조영섭 기자


세상사 모든 일이 인과응보, 자업자득이다. 그래서 천재와 범재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석학들은 말한다. 이정택은 재대 후 은퇴와 함께 고향 포천에 정착해 많은 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였지만 단한차례도 결실을 얻지 못했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그가 깨달은 것은 욕심과 질투를 버리고, 마음을 진공상태로 비우는 것이었다. 이후 자신의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 잡았던 일들이 새털처럼 가볍게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지금은 스크린 골프장을 운영하면서 5층짜리 건물도 보유하고 있다. 

 

이정택은 12년 전 어느날, 현 KBC 정선용 사무총장이 포천에 정착해 체육관을 운영하다 경영난에 시달려 보증금과 시설비를 4년 만에 탕진하고 힘겹게 버틸 때, 목 좋은 곳에 위치한 잘 아는 지인 건물을 저렴하게 임대해 체육관을 운영 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해 정 총장이 각종 소송에 시달리며 탈진된 상황에서도 체육관 운영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 도약할 수 있는 시발점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세상은 역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가수 이진관이 ‘인생은 미완성’이란 곡에서 ‘외로운 가슴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라고 노래했듯이.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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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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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진 20/06/08 [18:39]
좋은기사 잘읽었습니다^^
신성수 20/06/08 [18:46]
이정택...포천 일반부대에서 만난 인연이 있는 분이시다..훈련소를 거쳐 수방사로 간듯하다~
그의 스토리가 또 이렇게 반갑게 와 닿는구나..이정택 심판위원은 기억하고 있을런지...
아무튼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정말로 좋다~!!!
이상기 20/06/08 [19:08]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베냐민 20/06/08 [19:14]
늘 좋은 복싱 스토리 들려주시는
조영섭 관장님 감사드립니다!
봉복이 20/06/08 [19:21]
권투의 곳곳의  역사를 재미있게 또 팩트있게 잘 전달 해주셔서 항상 즐겁게  읽을수 있었습니다.^^:  관장님 건강하시고
좋은글 많이 남겨  주세요.
민준 20/06/08 [19:36]
한국 복싱의 권토중래를 믿습니다
박성우 20/06/08 [20:14]
단어  하나하나가 모여 문장이 되고 깨달음의 보고가 되는 글이었습니다.
복싱월드 20/06/08 [20:27]
글 잘읽었습니다.
항상 현실감있는 기사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민혁 20/06/09 [14:44]
기사보고 많은걸 깨닫고 갑니다~!!
끈아 20/06/10 [14:22]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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