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 26

[제5기] 대한민국 정부수립, 혼란시대 (1948~1950년) 국제통신 개시로 반세기만에 자주권 확보

가 -가 +

이세훈
기사입력 2020-06-17

[제5기] 대한민국 정부수립, 혼란시대 (1948~1950년) 국제통신 개시로 반세기만에 자주권 확보 

 

미군정 당시의 국제통신 이용은 주한 미군의 군용통신 일부와 미군 장병들의 본국과의 통신이 대부분 차지했다. 이를 충족할 만한 시설은 미비한 상태였다. 미군정 당국은 이의 대응조치로 미국의 국제통신 사업체의 하나인 RCA사로 하여금 한국 내에서의 국제통신 사업의 운용을 담당하게 한다. 

 

이와 같은 조치에 따라 1945년 12월 6일 미국의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는 국제통신 사업을 민간 기업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서울영업소를 중구 을지로 1가 소재의 구 주한미국대사관 건물 내에 설치하여 국제통신업무를 개시하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부터 국제통신의 자주권은 마땅히 확보되어야 한다는 주장 아래 미국 RCA의 시설 그대로 매수를 희망했다. 한국인 기술자를 파견하여 통신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등 인수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다. 그해 정부가 수립되자 교섭을 진행하여 체신부와 RCA사 간에 설치한 한국내의 국제통신시설에 대한 매수계약을 1948년 11월 5일 체결하게 된다. 

 

이 매수계약에는 체신부측에서는 장관과 전무국장 등 실무 관계관과 미국 RCA사 측에서 부사장 등이 참석한다. 이로써 1910년 이래 통신의 자주권을 확보하지 못했던 상태에서 거의 반세기만에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통신사업의 실질적인 주체가 됨으로써 자주권을 확보하게 된다. 

 

미국 RCA사와의 업무협정이 체결되고 시설을 인수한다. 1948년 12월 1일 미국 RCA로부터 국제통신의 운영권 인수를 계기로 역사적인 국제통신사업의 출범을 보게 된다. 이에 따라 을지로 1가에 체신부 전무국 국제통신실이 설치되고 국제전신전화회선을 구성하여 국제통신업무가 개시된다. 

 

▲ 국내외 전보소통용 전신기 (사진=KT사료) 


1952년 1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에 정식가입으로 국제통신분야에서 우리의 자주권을 널리 펼칠 수 있는 실마리를 연다. 같은 해 12월에는 서울-부산 간 텔레타이프(TTY) 통신개시 등으로 발전을 시작한다.

 

한편 국제전신전화국은 체신부 본부의 직할을 벗어나 서울체신청에 소속된다. 국제전기통신사업이 독자적으로 시작되어 그 수요는 놀랍게도 증가한다. 신생독립국가로서의 국제정치 및 국제통신의 비중도 높아지게 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1950년 1월 12일에 서울국제전신전화국(KIT)으로 승격하여 그 기구를 확장한다. 이로써 세계 각국 간의 국제 관문국으로써 산업발전의 기초가 되는 바탕이 된다.

 

국제전신회선은 서울-샌프란시스코간과 서울-마닐라간에 직통 전신회선을 구성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예비 전신회선은 상하이 회선을 운용햇다. 국제전화회선은 한국과 미국 AT&T통신사간의 합의에 의해 서울-오클랜드간 직통 전화회선을 구성했다. 한·미간은 물론 미국 AT&T통신사 중계로 남북미와 태평양 및 유럽간의 전화통화를 제공하게 된다.

 

통신장비에 있어서 전신은 전신기 키보드를 글자로 치면 자동 전기부호로 번역되어 보내어지는 텔레타이프 방식이다. 전화는 상·하측파대 신호를 함께 사용하는 양측파대전송방식(DSB : Double Side Band)으로 당시의 최신방식 시설들이다. 이로써 세계 각국 간의 국제통신을 교환하는 국제 관문국으로서의 기능과 체제가 확립되어 산업 발전의 기반이 구축된다. 청사는 을지로에서 구 체신사업회관(광화문세무서)으로 이전하게 된다. 

 

이세훈 

한국경제문화연구원 ICT 전문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댓글

i

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최신기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문화저널2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