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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용 화백의 인생과 예술을 향한 여정(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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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국 기자
기사입력 2020-06-18


박종용은 누구이며, 운명과 사명은 무엇인가 자문 


 

 

박종용 화백은 화가를 꿈꾸던 고향 시절(함안·마산시절. 1953〜1969)에서 출발하여 인사동 시절(1969〜1979과 용인·천안시대(1979〜2006)를 거치면서 축적된 내공으로 모든 예술분야를 능수능란하게 창작해 낼 수 있는 예술의 연금술사로 변모했다. 

 

그러나 운명의 계시에 따라 우주의 신비를 표현하는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시작했으나, 초기(2004〜2005년)의 실패를 거쳐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2015년 겨울경에야 제대로 된 작품들이 탄생되기 시작했다. 다시 3년여의 인고의 과정 속에서 명상과 신비를 머금은 수많은 명작들이 탄생되어 2019년 1월 예술의 전당 및 같은 해 5월 춘천KBS 전시장 등에서 뜨거운 열풍을 일으킴으로서 박종용의 예술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 (왼쪽) ◆8세 때 사진 (작품(스케치)을 시작한 시기) (오른족)◆제목:아버지의 초상 ◇재료 : 아트지·연필 ◇크기 : 22x35cm(가로x세로) ◇제작년도 : 1977 (75년 작고한 아버지의 증명사진을 보고 그린 초상화)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이후 최고권위의 ‘(올해의)최우수예술가’ 선정 등으로 (미국)최대화랑의 초청을 받아 2020년 2월 하순 미국을 방문했다. 1주일의 짧은 기간 속에 미국과의 전시협의와 주요 예술계 인사들과 교분 및 프랑스 초청까지 받게 된다. 창념의 상념 속에 세계를 향한 비상을 꿈꾸면서 예술에의 순교를 다짐하는 결연한 자기선언을 하면서 다시 작업장으로 향한다. 

 

박종용은 누구이며, 운명과 사명은 무엇인가를 자문하며, 처절한 예술의 노예로서 흙으로 돌아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예술 혼을 불태울 것을 다짐하고, 세계로의 비상을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세계로의 비상을 꿈꾸며 치열하게 예술 혼을 불태울 것 다짐 


 

 

2019년은 박종용 예술의 운명전환을 예고하는 질풍노도의 시간들이었다. 사실  1월의 예술의 전당, 3월의 춘천KBS 전시 및 11월의 여수 아트디오션 갤러리 개관 전 출품뿐만이 아니라, 화랑관계자들을 통해 조형아트 서울전시(코엑스), 중국 상해 아트페어, KIAF 서울(코엑스), 창원 경남국제아트페어 등에 출품하기도 했다. 

 

더하여 연말 ‘(올해의)최우수예술가’ 선정 및 미국 방문초청으로 올해 2월 미국방문과 전시협의 및 국제적 인맥구축과 프랑스 (전시)초청 등,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눈물날만한 일들이 아닐 수 없었고, 향후 계획 및 운명과 사명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후의 순간까지 치열하게 예술 혼을 불태울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변화된 상황에 고무되어 세계로 비상하는 꿈을 꾸면서 건강관리와 자료 및 작품관리 등에 노력을 다하기로 결심하면서 작가노트를 끼적거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라도 일생의 활동을 기록·보존하려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파란으로 얼룩진 지난 세월의 아픔들을 되새기면서 3월 어느 날 작가노트에


 

 

▲ 2020. 3. 15일 작성한 작가 (단상)노트 2장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


『너무 어렵게 먼 길을 달려 왔다.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언제나 공허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바위덩어리처럼 육신을 지배했다. 남은 생의 시간들이 얼마인지 모르고, 나의 예술이 어디까지 갈 런지는 알 수가 없지만, 새롭게 탄생된 결의 작품들에 (예술)인생을 마무리 하고 싶다. 결의 완성을 위해 남은 인생을 불태울 것이며, 이를 위해 생의 종점까지 쉬지 않을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한 작품들을 하면서 수많은 세월동안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아파했다. 결의 완성을 위해 이제는 고민과 괴로움을 멈추고 싶다. 실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작품들을 했다. 아픈 세월 속에 마디마디 피멍이 들어있는 것 같다. 이젠 우주를 향해 비상하는 결들의 향연에 모든 것을 날리고 싶다. 결은 나의 분신이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산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나 목탁소리를 듣거나 사찰(절)의 오래된 목조건물들을 쳐다보면 절로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정화되는 것은 같아 수시로 사찰을 방문하여 오래된 목조건물을 만지면서 세월의 풍상을 느껴보기도 한다. 또한 불상, 불화 등 각가지 불교예술품들을 숙연이 바라보면서 불국정토의 모습을 연상하기도 한다. 단청의 색처럼 화려하고 강한 이미지가 항상 가슴에 남아 오늘도 불국정토를 지배하는 33관음 중 하나로 물에 비친 달을 내려다보는 수월관음의 여러 형상들을 생각하면서 심사를 달래기도 한다.

 

두 번 다시 긋게 되어서는 안 되는 필력의 일동(획)성과 그 자체의 완결미 및  그 과정에서 허용되는 우연의 가능성 포용 등은 예부터 또 다른 동양적 미학의 표상인 “선은 불의의 문”이라는 정신적 인식과 같은 세계인 것이다. 불설불명경(佛說佛名經)의 월면불(月面佛), 일면불(日面佛)의 원리인 것이다.

 

나는 항상 대상을 초월하여 공간에서 영감을 얻는다. 진경산수란 실제의 산천경을 토대로 하고는 있으나, 그 산천의 특징적 요소와 전체적인 이미지만을 강하게 부각시키면서도 의식이나 상상 등을 강하게 표출하곤 했다.

 

입체예술 중에서 조각 작품은 매우 어려운 영역이다. 형상과 의식을 최소질량의 오브제에 집약적으로 표현해야하기 때문이다. 구상(탈, 불상 등)조각의 경계를 넘어가는 추상조각은 모양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망치로 두드리고 두드려 저절로 형상화시키는 땀방울만 배어 있을 뿐이다. 절충주의와 타협하거나 흥정하지 않고, 또한 어떤 편견이나 아집에 빠지지 않고 자연과 문명의 결합이 빚어내는 자연과 생명의 빛을 갈구하면서 땀방울을 흘렸을 뿐이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각종 생활도예나 작품도예 들을 상당량 제작했다. 도예(자기)제작을 통해 따뜻한 (조선)도공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다. 각종 도예(자기)의 모습에는 형상의 오묘함과 사랑스러움, 조용함, 자연스러움, 따뜻함, 그리고 예술성 등이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함축미를 살려내기 위해 집중력을 견지하면서 땅방울을 흘려가며 자기 표면에 갖가지 문양이나 형상 등을 새기거나 칼로 도려내는 방식으로 나름 최선을 다했다. 되돌아보면 당시 생계유지 차원에서 도예(자기) 작업을 했지만 순수한 열정은 식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생계유지 등을 위해 어렵게 먼 길을 달려 왔지만, 갈등과 번민이 엄습하면서 새로운 추상미술의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추상미술이란 정답이 없고, 고뇌와 의식의 산물일 뿐이다. 추상이란 무엇인가와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표리부동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솔직히 추상미술에 관한 문제는 그 자체의 문제이기보다 는 추상 미술을 대하는 사람의 의식과 태도 등에서 운명 등이 결정되어진다.

 

나는 새로운 추상미술 창조를 위해 10여년 이상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돌이 닳아 가루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을 안고 모진 세월의 아픔을 감내하면서 여러 점의 추상미술을 창작했다. 이렇게 창작되어진 추상작품들은 결로 명명되어 작년 예술의 전당 및 춘천KBS 방송국에서 전시되어 큰 호응을 받았다. 이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연말에 큰 상을 받았고, 얼마 전 미국까지 방문하여 큰 화랑과 내년 전시를 논의하기도 했다. 프랑스, 일본에서 연락오기도 했다. 갑자기 이런 일들이 생겨 당황스럽기조차 하다. 생각해 보면 운명이고 생의 마지막까지 추상작품(결) 창작에 매진하라는 명령 같기도 하다. 

 

나이 70을 바라보는 이제야 어렴풋이 길이 보이는 것 같다. ‘더는 해매지 말고 추상작품에 인생종지부를 찍어라’는 명령의 소리가 쟁쟁히 들려오고 있다. 고로 나는 오늘도 추상작품(결)의 창작을 위해 작업실로 향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생의 종점까지 이일이 계속될 지도 모르겠다... 』 

 

3월 어느 날 촘촘히 기록한 작가노트다. ‘더는 해매지 않고 생의 종점까지 추상예술에 전념하겠다는 다짐이다.

 

격렬한 인간드라마…처절한 예술의 노예로서 운명과 사명을 향한 자기선언

 

지난 3월의 2페이지짜리 작가노트는 60년 화업 인생의 축약 본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 각종그림을 그리면서 고뇌하던 모습과 수월관음도 등, 불교예술에 심취하는 이유와 (자신의)산수화의 특징, 자연과 생명의 빛을 갈구하면서 땀방울로 얼룩진 조각예술의 특성을 간결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더하여 생계유지차원에서 각종 도예작업 등을 하였지만 순수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는 항변 및 필연적 운명의 결과로 추상작업을 시작한 경위와 실패를 극복하면서 뜨거운 찬사를 받아 자신의 길을 비로소 찾게 되었고, 더는 해매지 않고 생의 종점까지 추상작업(결)에 매진을 다짐한 (자기)선언서처럼 읽혀졌다.

 

▲ (시계방향) 저서 ◆미술관·전시관의 건립과 운영(2013. 공저 작품오늘) ◆동양의 눈 서양의 눈(2016. 공저. 도서출판 재원) ◆내설악백공미술관 전경(2011. 11. 개관) ◆백공미술관 개관기념 박종용 猛虎氣象展 도록(2011. 8. 16〜 11. 30)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이에 다시 힘차게 붓을 들고 매진했지만, 공교롭게 이 시기부터(3월)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3월의 프랑스 방문은 미룰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특히 프랑스가 심하여 하루 1,000명 이상이 죽어가는 상황이었다. 미국 또한 ‘코라나19’가 날로 기승을 부려 현재 엉망인 상황이다. 미국 최대화랑 관계자들이 6〜7월에 방한하여 작업 과정 등을 촬영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런 상황이나, ‘코로나19’가 한풀 꺾이게 되면 미국·프랑스 전시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쨌든 박종용 화백의 세계무대 진출은 머지않은 장래에 실현될 것이다.

                             

8살 때 스케치를 시작하면서 화가로 길로 들어선 박종용은 만고풍상 60년 성상의 고난의 작가생활을 거쳐 나이 70세를 바라보는 오늘의 이르러서야 자신의 운명과 사명을 확실히 자각하고 생의 종점까지 결의 창작에 매진할 것을 선언했다. 60년 성상 풍상의 세월은 인간자체를 예술의 원형으로 주조시켰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끝내 추상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나가는 그의  삶의 과정은 땀과 눈물로 뒤범벅된 형언하기 어려운 격렬한 드라마다. 기자의 짧은 문면으로 이 격렬한 인간의 인생과 예술의 여정을 구석구석 스케치 하여 전달한다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눈은 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점점 더 불타오르고 있으며, 그의 손은 힘찬 붓놀림에 떨리고 있으며, 그의 몸은 칼날 위에 춤추는 곡예사처럼 화면 속에서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는 자기 속에 무궁한 예술의 광맥이 솟아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처절한 예술의 노예로서 가야할 운명과 해야 할 사명을 향해 결연한 자기선언을 했다.

 


예술가 박종용은 누구이며, 세계를 향한 그의 꿈은 이루어 질 것인가


 

 

 나오면서 

 

고난의 작가에서 생명의 작가를 갈구하며 세계를 향해 비상의 나래를 펴다

  

화업 60년의 박종용 화백은 풍찬노숙(風餐露宿)의 삶을 살아온 운명적 예술가이자 고난의 작가이다. 8살 때 스케치를 시작하면서 그의 예술(미술)활동은 시작되었고, 12살 때 화투그림으로 ‘그림신동’이란 칭찬에 고무되어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오늘에 이르는 60년 세월동안 일시도 붓을 놓은 적이 없다.  

 

8살 때 시작된 화가생활에서 고향시절(함안·마산시절 1960〜1969)에는 고향산천의 풍광과 정물 및 서부활극이나, 서양 및 우리나라 유명배우들의 초상과 액션 등을 수없이 그리면서 기초를 닦았다. 12살 때는 눈썰매머리의 용 조각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대화가(大畵家)의 꿈을 안고 17살 때(1969년) 상경하여 고려민예사 작가로 취업하면서 만화 및 극장 간판부터 시작하여, 종횡무진 모든 분야의 그림들을 능수능란하게 표현함으로서 천부적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72년(20세)에는 마산 선화랑, 1973년에는 대구 반월당(표구사 겸 화랑)에서 당시 창작한 초상, 풍경, 화조도 등 여러 작품을 전시하여 상당량을 판매하기도 했다. 작가가 기억하고 있는 인사동 시절(1969〜 )의 (최초)전시들이다. 이후 군 복무시절(1974〜1977)에도 붓을 놓지 않았으며, 아버님의 타계로 제대(1977년) 후 어머님 및 가족과 형제자매들의 생활안정 등을 위해 용인시대를 시작(1979〜 )하면서 회화를 넘어 도예, 탈·불상 등 각종 조각예술은 물론 타일그림까지 그리는 등, 창작(제작)을 전 방위적으로 확산시키면서 발버둥 쳤다. 

 

이 시기(80년대 초반)에 국전에 한번 출품했으나 낙선하여 ‘국전은 실력이 아니다’고 판단하여 외면하면서 재야작가의 길을 걸었으며, 80년대 초반 2〜3년 동안 자신이 그려준 작품이 국전에 여러 점이 입·특선되기도 했다. 이후 스승격인 풍곡 성재휴 화백의 질책으로 그만 둔 비화 등도 간직하고 있다. 또한 대가들의 부탁으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려주어 대가들이 자기그림으로 낙관을 찍는 웃지 못 할 사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최고의 필력을 자랑하는 젊은 화가로 인식됐다. 

 

그의 그림들은 용인시대(1979. 3〜 )를 넘어 1990년 새로운 도약의 천안시대에 이르러 고도의 필력과 내공 등으로 모든 분야의 예술을 다재다능하게 창작함으로서 연금술사와 같은 전천후 예술가로 화려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1972 마산 선화랑, 1973 대구 반월당에서 시작된 전시역사는 1980〜1985  용인문화원 초대전, 1985〜1986 수원 크로바백화점 개인전, 1987 서울 한양파르코백화점 개인전, 1988 서울 진로백화점 개인전, 1989 서울프라자미술관 개관 초대전, 1992년 서울 현대호텔 2인 전 외, 그룹전 등에 (수시)참여하면서 나름대로 꾸준히 이어졌다. 1986〜1988 동서울미술관장, 1989〜1992년 서울역사 프라자미술관장을 역임하면서 미술문화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 (시계방향) ◆제목 : 박종용을 위하여 ◇재료 : 종이·먹 ◇크기 25x30cm(가로x세로) ◇제작년도:2016. 6.(이왈종 화백이 현대화랑에서 박종용에게 그려준 그림) ◆제목 미술관 발전기원 ◇재료 : 종이·먹 ◇크기 25x30cm(가로x세로) ◇제작년도 : 2016. 8(이왈종 화백이 미술관을 방문하여 그려준 그림) ◆결의 창작을 위한 밑그림 작업과정(2018) ◆호랑이 작품 창작과정(2010년대 중반) ◆1988년 호랑이작품 전시회때 캐나다 대사 및 올림픽스포츠화가 켄웰스만과 함께(1988) ◆박우찬 경기도립미술관장, 최은주 대구시립미술관장과 함께(2019) ◆올해의최우수예술가상’ 수상장면(2019. 12)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고도의 필력(내공)으로 모든 분야의 작품들을 다재다능하게 창작 할 수 있는 광대무변한 작가라는 명성이 자자해 질수록 도리어 생계유지 등을 위해 작품들을 창작했던 지난날들을 괴로워하면서, 우주만물의 생성원리를 탐구하는 생명예술에 대한 갈망은 깊어만 갔다. 운명의 필연적 흐름에 따라 추상회화 창작이 시작됐고, 초기 실패(2004)을 딛고 10여년 구슬땀을 흘리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오색영롱한 신비의 추상 작품들이 탄생되기 시작했다(2015〜).

 

다시 3년여의 피를 말리는 인고의 과정 속에서 명상과 신비를 머금은 수많은 명작들이 탄생되어 2019년 1월 예술의 전당 및 같은 해 3월 춘천KBS 전시장 등에서 뜨거운 열풍을 일으켜 관객의 시대를 개막하면서 박종용의 예술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이후 39년 역사를 자랑하는 민간 최고권위의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의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 선정 등으로 미국 최대화랑의 초청을 받아 2020년 2월 하순 미국을 방문했다.

 

1주일의 짧은 미국 방문기간 중 수월관음도의 현지 제작 등으로 ‘극동의 보석’이란 칭송을 들으면서, 내년 하반기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미국 최대화랑과의 전시를 협의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더하여 프랑스 유수화랑으로부터 전시협의를 위한 방문까지 요청받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기도 했다. 세계를 향한 박종용 예술의 희미한 불빛의 비추어지지 시작한 것이다.

 

예술에의 순교를 다짐하면서 60년 성상의 풍상 속에 불굴의 의지로 끝끝내 위업을 달성한 박종용 예술에 세계예술계가 손짓을 보낸 것이다. 박종용의 운명과 사명은 무엇인가를 자문하면서, 흙으로 돌아가는 최후 순간까지 예술 혼을 불태울 것을 다짐하면서 세계로 비상하는 꿈을 꾸면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세계가 손짓하는 박종용 예술…부끄러운 침묵 속 세계인 박종용 탄생예감


 

 

60년 화업의 박종용 화백은 광대무변한 예술의 경지를 개척한 운명적 예술가다. 그의 화업 60년은 만화, 민화, 화조도, 인물(초상)화, 누드화, 정물화, 산수화, 영묘화(호랑이), 불화 등의 각종 평면예술을 넘어 조각(구상·목불·추상)은 물론 더하여 도예 등 전 방위적으로 전개되었다. 

 

뿐만 아니라 2004년부터 10여년의 묵언수행을 통해 우주만물의 생성원리를 탐구하는 추상표현주의 작품들을 탄생시켜 뜨거운 열풍을 불러일으키면서 박종용의 예술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그의 인생은 땀과 눈물로 뒤범벅된 장엄하고도 격렬한 드라마다.

 

노동의 결실로 탄생된 새로운 추상회화는 크나큰 반향을 일으켰고, 세계적 명성의 미국 최대화랑으로부터 ‘극동의 보석’이라는 찬사와 함께 초청전시를 협의하기에 이르게 된다. 더하여 프랑스, 일본까지 관심을 기울이면서 초청의사를 표명했다. 무궁한 예술의 광맥이 숨겨져 있는 그를 세계인들이 먼저 알아채고 초청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격렬하고 거대한 인간과 작품들을 짧은 문면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기껏해야 현장(전시)의 풍광을 스케치하면서 작가의 삶과 인생을 취재하여 나름의 생각을 첨가하여 전달할 뿐이다. 솔직히 언어의 빈곤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품마다 봇물처럼 흘러내리는 경건한 주술들과 붉은 수레바퀴 청산을 향해 붉음을 토해내는 듯한 광활할 예술세계를 어떻게 짧은 문면으로 표현해 낼 수 있단 말인가. 

 

▲ (왼쪽부터) ◆제목 : 무제(결) ◇재료 : 마대·흙·석채·단청 ◇크기 :150x150cm(가로x세로) ◇제작년도 : 2019 ◆제목 : 백담사 일주문 ◇재료 : 종이에 수묵채색(동양물감) ◇크기 : 50x50cm(가로x세로) ◇제작년도 : 2020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만 평가된다”는 명제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또한 예술의 세계는 스승도 제자도 없으며 독창적인 작품만이 전부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60년 풍상의 과정에서 박종용의 예술세계는 광대무변(廣大無邊)의 경지를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17〜18세에 이미 묘사력과 필력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천부적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화엄(華嚴)의 불화작품(수월관음도) 제작에 세계 최고 화랑 및 미술관계자들이 “극동의 보석”이라고 경탄하지 않았는가. 세계최고 수준의 호랑이 작품들을 위시하여 영감이 봇물처럼 흘러나오는 수많은 작품들 앞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10여년 구술 땀을 흘려 창작된 우주만물의 생성원리를 탐구하는 추상표현주의 작품들에 매료되어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가 손짓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해관계에 얽매인 국내예술계는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세계인 박종용 탄생을 예감하며 아쉬움 속에 취재·연재(12회)를 마친다. 

 


박종용 예술연보(Park Jong Yong. 1953. 경남 함안 출생)


 

 

 고향시절(1953〜1969. ‘화가를 꿈꾸던 시절’ 함안·마산시대)

 1960년(8세) 작품(스케치) 활동 시작. 풍경 및 동·서양 영화배우 그리기 등 

 1964년(12세) 화가 결심(화투작품으로 ‘그림신동’. 용조각 제작 등). 풍경(산수)·정물화 및 서부활극, 동·서양 영화배우 인물 그리기 등에 심혈. 1966 마산 유학(중학교) 및 이후 작품 활동에 더욱 심혈

 인사동시절(1969〜1979. ‘본격 활동’)  전시, 입대 및 제대 후 인사동 복귀

 1969년(17세) 상경 및 고려민예사 취업(학업병행). 만화, 극장 간판, 조선대가들(3원삼재) 작품모사 및 화조도, 인물(초상·인물·누드)화, 각종 민화·불화 제작 등 본격 활동. 뛰어난 필력으로 대가들의 칭송 받음

 1972년 마산(선화랑)·1973년 반월당(대구)전시. 이후 군 입대(1974〜1977. 수도사단에서 작품활동 지속) 및 제대 후 인사동에서 활동지속

 용인시절(1979〜1990. ‘도약’. 도자, 조각 등 전 분야 개척. 민화·조각 등 일본거래. 호랑이그림 탄생. 각종 전시. 동서울미술관·프라자미술관장 활동

 1980년부터 각종 도예 및 자기, 각종 조각(각종 탈, 불상 등 목조각과 석조각 등) 본격 제작 및 상인들을 통해 일본과 거래(전 분야 개척 등). 민화창작 활성화 및 호랑이 그림탄생. 용인문화원(1980〜1985), 수원크로바백화점(1985〜1986), 서울 한양파르코백화점(1987), 서울 진로백화점(1988), 서울역사 프라자미술관(1989) 개인전 및 수시 그룹전 등. 동서울미술관장(1986〜1988), 서울역사 프라자미술관장(1989〜1992) 역임 등

 천안시절(1990〜2006. ‘완숙’. 연금술사·전천후예술가) 평면, 도자, 조각 등 전 장르 완숙. 추상표현주의 작품 창작. 전시 및 내설악백공미술관 착공 

 평면 전 분야 작품들과 1980년 용인시대부터 시작된 각종 도예 및 자기, 각종 조각 작품(각종 탈, 불상 등 목조각과 석조각 등)완숙. 예술의 연금술사·전천후 예술가로 별칭됨, 평면(민화·호랑이) 및 도자·조각 작품 상인들을 통해 일본과 거래 활성화. 서울 현대호텔 2인전(1992) 및 수시 그룹전 등. 내설악백공미술관 착공(2006)

 설악산시대(2006〜현재, 비상의 나래) 백공미술관 개관 및 개관전. 결의 탄생과 (각종)전시열풍. ‘최우수예술가’ 선정. ‘비상을 꿈꾸며’

 결의 창작(2004〜2015) 및 탄생(2015〜 ). 미술관 개관 및 개관전(2011). 결의 전시열풍(2019. 1. 예술의 전당. 3월 춘천KBS. 9월 KIAF 등)

 

【활동(경력)사항】

  동서울미술관장(1986〜1988)

  서울역사 프라자 미술관장(1989〜1992)

  내설악백공미술관장(2011. 11〜현재)

 

【수상내역】

  창조문화예술대상 大賞(2019. 11. 국회)

 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2019. 12.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 한국경제문화대상(미술부분)(2019. 12. 한국경제문화연구원)

 

【저서】

  미술관·전시관의 건립과 운영(2013. 공저. 작품오늘)

  동양의 눈 서양의 눈(2016. 공저 도서출판 재원)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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