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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복싱인보다 복싱을 더 사랑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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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 기자
기사입력 2020-06-19

30년을 훌쩍 넘는 세월을 복싱이라는 울타리에서 진지를 구축하면서 활동 하다보면 자의든 타의든 각계각층의 다양한 분들과도 교류를 하며 지낸다. 그 중 한국체대 졸업생 중 최초로 교장을 역임하다 작년에 퇴임한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의 유종현 선생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 (좌측부터) 2012년 런던 올림픽 베트민턴과 레슬링 국가대표 감독 성한국, 유종현 감독 © 조영섭 기자


기자가 1997년 10월, 처음 서울체고에 복싱강사로 입성했을 때 그는 서울체고 레슬링 감독 이었다. 레슬러 출신 이면서도  유독 복싱에 깊은 애정을 지닌 그분 덕분에 5년 동안 서울체고에 근무하면서 분에 넘치는 과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았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 이다. 

 

최초의 세계대회 금메달리스트인 박기철과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이남의 와는 막역지우로 지내는 유선생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 레슬링 국가대표 감독으로 참가, 그레코로만형 66kg에서 김현우를 조련해 금메달을 탄생시킨 지도자이기도 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레슬링의 유종현 감독과 베트민턴 감독으로 동반 출격한 성한국 감독, 그리고 기자는, 체육관 근처에서 가끔식 동석해 만찬을 함께 하면서 소통을 하고 있는데 이분의 복싱사랑도 유 선생 못지않게 각별하다. 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베드민턴 금메달리스트인 성한국 감독은 오래전 장남 성충현 군에게 악착같은 승부근성과 인내심을 심어주기위해 직접 복싱에 입문시킬 정도로 그는 복싱 애호가다. 

 

▲ (주) 한국 스포츠 컨설팅 성한국 대표이사  © 조영섭 기자


미국의 존 F 케네디는 인생을 복싱과 마라톤이라 정의한 대통령이다. 시발(始發)과 종결(終結)을 본인 스스로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하는 두 종목 만이 지닌 독특한 특성이 우리네 인생과 흡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성충현은 취미활동으로 복싱을 하면서 3승 1패를 기록한 후 조용히 복싱을 접었지만 복싱을 통해 홀로서기를 익혔으리라. 성한국 감독은 라켓부부다. 88년 서울 올림픽 베드민턴 금메달리스트인 한국체대 김연자 교수가 아내이고 2013년 코리아오픈과 2014년 아시아선수권 금메달리스트인 성지현(한국체대)이 딸이니 한집안에서 국가대표가 3명이 베출된 라켓 페밀리다. 

 

유 감독과 마찬가지로  성감독이 스포츠계에서 허물없이 지내는 가장 친한 친구가 88년 서울올림픽 복싱 미들급에 출전한 하종호(한국체대)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셔틀콕 황제 박주봉의 가장 친한 동료가 복싱의 (故)허영모 라는 사실을 성감독에게 전해 듣고 복싱과 베드민턴이란 종목은 선수들끼리 교감이 통하는 묘한 공통분모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가로 6.1m 세로 13.4m인 직사각형의 베드민턴 코트는 1.55m의 네트로 양분되어 있다. 이 공간에서 선수들은 나비처럼 춤을 추다가 하늘높이 치솟아 올라가다 벌처럼 빠르고 강하게 스매싱을 쏘아대는데, 마치 가로 세로 6m의 정사각형 링에서 무하마드 알리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복싱과 스타일이 일맥상통 한다. 또한 최고 300km를 훌쩍 넘는 스매싱을 민첩한 풋워크로 받아내는 순간적인 움직임은 마치 복서 메이웨더가 1m 지근거리 에서 던지는 초속 8m의 전광석화 같은 스트레이트를 록 어웨이(Roke away)로 피하는 장면처럼 가히 신기에 가깝다. 

 

또 하나, 복싱과 베드민턴의 연관성을 찾아보면 1995년 제4회 서울컵 대회 슈퍼 헤비급 결승에서 소련의 알렉세이 초디노프를 꺽고 우승한 안정현(당시 장흥군청)의 딸이 2019년 고교생 베트민턴 국가대표로 그해 프랑스 오픈에서 리우올림픽 국가대표인 카롤리나 마린(스페인)을 꺽고 5개 국제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세계랭킹 9위 안세영(당시 광주체고)이란 사실을 유추해보면 복싱과 베드민턴의 묘한 불가분(不可分)의 역학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 권정달 전 민정당 사무총장 (우측)  © 조영섭 기자

 

정치인들 중에는 1984년에 3월에  안동공고 복싱부 창단에 산파역을 담당했던 권정달 전 국회의원을 빼놓을 수 없다. 4년 전 강동구 모처에서 장윤호 한국체대 동문회장의 소개로 권정달 전의원과 동석한 기자에게 당시 동석한  경북 복싱연맹 조태석 전무는 권 의원은 자신의 고향인 안동에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국가대표 였던 장흥민(한국체대)을 픽업, 교사로 임명과 함께 복싱부 창단에 큰 공헌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안동공고 김용을 교장과 친분이 두텁던 권정달 의원은 평소 복싱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지닌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당시 권정달 전의원은 기자와 1 시간 가량의 대화에서 우당 이회형 왕산 허위와 더불어 3대 항일 명문가로 손꼽히는 석주 이상용과 저항시인 이육사 서애 유성룡 등이 안동 출신임에 강한 자긍심을 나타냈고, 1948년 학생선수권과 전국체전 라이트 플라이급에서 2관왕을 거둔 복서 출신 염보현 서울시장에 관해서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도 재계의 대표적인 복싱 마니아다. 복싱광인 이병철 회장은 라이트훅을 주특기로 70년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영호를 특히  좋아해 TBC(동양방송)에 1976년도에 금요권투를 전격창설, 오영호를 스카웃  하면서, 전속 계약금을 지급하고 경기에 출전하게한 단초를 제공한 기업인이다. 오영호 선배는 몇 해 전 기자에게 후배복서 김석호(수방사)와 함께한 만찬자리 에서 삼성 이병철 회장의 복싱에 대한 열화와 같은 성원에 이런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고 회고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한바 있다. 

 

▲ 수방사 소속 김석호선수와 동양챔프 오영호(우측)  © 조영섭 기자

 

이병철 회장은 과거 1966년 3월 13일, 일본 도쿄에서 후지타를 12회 판정으로 꺽고 강세철, 김기수, 강춘원에 이어 국내에서 4번째 동양 Jr.미들급 챔피언에 등극한이안사노에게 격려금을 지원한 바 있다.이 회장은 당시 중앙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안사노 에게 장충동에 집을 한 채 살 수 있는 돈을 격려금으로 지원한 적이 있다. 이병철 회장은 복싱처럼 격렬한 투기종목에서 볼 수 있는 투지, 열망, 끈기 전략이 사업에서 필요한 기질과 일치하기에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71년 프로에 대뷔한 오영호는 초반에 12전 7승(2KO승) 4무2패를 기록한 평범한 복서에 지나지 않았지만 74년 이후 괄목할 만큼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21연승(15KO승)을 거두면서 주목을 받았고 1976년 TBC(동양방송)에 금요권투가 탄생하자 전속계약 선수로 등록, 그해 4월 필리핀의 토니 휴무아스를 꺽고 동양라이트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이타이틀은 7 차례 연속해서 방어에 성공했고, 그 중 5차례는 KO 방어에 성공했지만, 2차례 세계타이틀전에서는 모두 패하면서 세계챔피언과는 아쉽게도 인연이 없었다. 


참고로 동양방송(TBC) 사장은 홍진기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 과는 사돈관계 이자 동지적 관계 였다. 현재 오영호는 아내와 함께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면목동에서 본인 건물에 대형 사우나를 운영하며, 모범적으로 건실하게 살고 있는 복싱인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방송인 김미화씨 와 부군인 성균관대 스포츠 과학부 윤승호 교수의 복싱 사랑도 절대적으로 빼놓을 수 없다. WBA Jr.미들급 챔피언 유제두 관장과 친분이 두터운 윤승호 교수는 2012년 부천 상동고 3학년인 신한울 양이 57Kg급에서 전국대회 3관왕을 달성하자 윤승호 교수가 근무하는 성균관대에 수시모집 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연결해 줬다.

 

▲ 성균관대 스포츠 과학부 윤승호교수와 방송인 김미화(우측)  © 조영섭 기자

 

2008년에는 WBA 페더급 챔피언에 등극한 최현미(90년, 평양)가 2009년 11월 2차방어전을 앞두고 스폰서가 없어 타이틀전이 무산될 위기에 봉착하자 아내이자 방송인 김미화씨에게 공조를 요청,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무한도움을 창출해 내면서 타이틀 매치를 차질 없이 치르는데 후견인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이에 코가 석자나 빠진 채 기(氣)가 푹 죽어있던 최현미 선수가 ‘음매 기 살아~’를 외치면서 타이틀 방어전을 성공리에 마치면서 윤 교수에게 보은을 했다.  2010년에 윤 교수는 역시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에 최현미를 입학할 수 있도록 오작교 역할을 하는 등 변함없는 복싱사랑을 몸소 실천해왔다. 키다리 아저씨는 언론에서 붙힌 윤승호 교수의 별명이다. 동화 속 한 소녀의 뒤에서 묵묵히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처럼 윤교수가 최현미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주었다. 

 

최현미가 입학한 성균관 대학은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복싱사상 플라이급 에서 첫 메달을 획득한 한수안 선생의 모교였기에 기쁨과 희열은 배가되었다. 오직 남들을 위해 산 인생만이 가치 있는 삶이란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오늘 단 한사람을 위해서도 좋으니 누군가가 기뻐할 만한 일을 하자는 니체의 어록처럼 나를 위해 행하는 일은 그 여운은 오래남지 않지만 오늘 누군가에게 가치 있고 남을 위한 참다운 배려를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실행했다면 두고두고 행복으로 다가올 것이다. 복싱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 에게 행운을 빈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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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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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니 20/06/19 [11:53]
복싱의 역사
잘읽었습니다 
봉복이 20/06/19 [12:23]
언제나 복싱의 역사와 훈훈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관장님 언제나 건강하시고 좋은글  많이 써주세요.^^:
김민혁 20/06/19 [12:53]
매번 많은 것을 알아 갑니다 
좋은 기사글 감사합니다
민준 20/06/19 [13:18]
복싱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분들이 존재하기에 

복싱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박성우 20/06/19 [13:19]
훈훈한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지는 복싱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신성수 20/06/19 [13:55]
내가 복싱 초보 수련원일때 오영호 선배는 한국챔피언 이었다....그 분의 팔뚝은 거의 내 허벅지와 같았고....그분의 샌드백은 묵직한 펀치로 정신을 못차렸지요.....오랜만에 그분을 이글에서 만나보는군요...또한 최현미 선수는 고등학생일때 잠깐 미트를 받아보았는데...웬만한 남자 선수의 펀치력과 자세...챔피언이 될꺼라 생각되어졌던 선수....그후에 챔피언이 되었있더라구요.....항상 이렇게 지나간 세월을 일깨워준 조영섭님....감사합니다...항상 기다려 지는 복싱 스토리 입니다.....
창스 20/06/19 [18:17]
복싱의 역사를 한 눈이 볼 수 있게 매주 집필해주시는 필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싱이 침체기에 있지만 용광로처럼 뜨거운 복싱인들의 열정이 뭉친다면 한국 복싱의 부활은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헬로 20/06/23 [18:14]
감사합니다
회상유~ 20/07/04 [19:03]
오영호선배를 오랫만에 보니 반갑고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 두툼했던 강한 어깨는 마치 들소를 보는듯 했는데 뵙기에 그저 순한 마을 아저씨를 뵈옵는듯 합니다.
조영섭기자님의 글을 읽으면 물흐르듯이 순탄하게 흐르고 옛날을 회상하며 그 현장으로 옮겨간듯 회상에 푸욱 잠기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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