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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일찍 복싱 접고 인생 2회전에 성공한 이해정 · 김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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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 기자
기사입력 2020-06-25

지난 주말, 서울 상계동 백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30년 지기 이해정(한국체대) 사무장의 연락을 받고 노원역 인근 모처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이 자리에는 이해정의 절친인 도봉경찰서 강력팀장 김응희 경감도 합석했다. 김 경감은 기자가 수년전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국가대표인 장흥민(한국체대) 선배 취재차 경북 안동에 들렸을 때 기자가 스쳐가듯이 만났던 짧은 인연이 있었다. 

 

▲ (왼쪽부터)백병원 종합검진 사무장 이해정과 도봉경찰서 강력팀장 김응희형사  © 조영섭 기자


현역시절 62회부터 64회까지 3년 동안 서울대표와 경북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하면서 자연스레 친분을 쌓은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은퇴한 이후 상계동에 있는 서울백병원과 인근의 도봉경찰서에 운명처럼 근무하면서 끊어진 철로가 연결되어 기차가 다시 달리듯, 이들의 만남이 새롭게 창출되었다. 

 

이해정은 현역시절 82년과 86년 아시안게임 2연패의 금자탑을 쌓은 한국 아마복싱의 상징적인 레전드다. 1963년 1월30일 충남 대천에서 부친 이하용 옹 의 6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이해정은  당시 그의 부친의 나이 42살이었다. 

 

풍운아 사도세자가 42살의 영조와 영빈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것과 묘하게 일치하는데 그가 태어난 음력 1월 30일은 1637년 청나라 2대 황제 홍타이지의 침략에 인조가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 三拜九叩頭)를 하면서 항복한 날과도 동일하게 일치한다. 

 

▲ 84년도 LA 올림픽선발전을 앞두고 훈련하는 이해정(좌측)


이해정은 서울체고 2학년인 81년 제62회 전국체전(서울) 미들급 결승에서 전북대표인 신준섭(남원농고)에 한차례 다운을 뺏고 판정승하며 금메달을 획득했고, 82년엔 그해 아시아선수권 금메달리스트인 김의진(군산대)에 판정승하며 뉴델리 아시안게임에 승선해 주목을 받았던 전형적인 클레버 복서였다. 

 

이에 반해  김응희 경감은 80년 안동공고 1학년 때 대뜸 청소년대표로 선발되어 전일선(군산제일고), 곽귀근(경북체고), 송준석(전남체고) 등 선배들과 제2회 대만 국제대회에 학생대표로 동반출격하면서 이해정보다 먼저 주목을 받았다. 62회 전국체전 경북선발전에서는 당시 1981년 5월17일 종료된 제5회 김명복배 라이트 웰터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박정하(당시 경북체고)를 판정승으로 꺽고 경북대표로 선발되면서 센세이선을 일으키며 기량을 인정받아 83년 용인대에 특기생으로 진학한 묵직한 파워가 돋보이는 슬러거였다.

 

여기서 잠시, 1981년도 당시 추억에 젖은 제5회 김명복배 우승자명단을 살펴보자. 라이트플라이급 방승현(서울체고), 플라이급 김상찬(가야고), 밴텀급 서윤교(가야고), 페더급 성두호(전남체고), 라이트급 조규남(전북체고), 라이트웰터급 박정하(경북체고), 웰터급 안영수(서울체고), 라이트미들급 김의진(군산제일고), 미들급 이호수(양명고) 등이다.  

 

이해정 김응희의 63년생 토생원(兔生員)들중엔 유난히 한국스포츠계에서 한 획을 그은 각 종목의 스타플레이어들이 많이 탄생한 해로 기억된다. 프로복싱에선 장정구, 박찬영, 최점환, 전주도, 신희섭, 장태일, 최창호 등 세븐 스타(Seven Star), 즉  7명의 세계챔프가 탄생했고, 아마복싱에선 이해정을 비롯해 아시아선수권을 재패한 송경섭(한국체대)과 김의진(군산대) 세계 군인 선수권 라이트급 금메달 정희조(경북대)등이 포진되어 있다. 

 

배구에선 이채언(현대), 박미희(미도파), 야구에선 유중일(삼성), 김상국(빙그레), 농구엔 김유택(기아), 김영희(한국화장품), 배트민턴엔 성한국(한국체대), 김연자(한국체대), 축구엔 조민국(럭키금성), 씨름에 이만기(경남대), 고경철(인하대) 등이 대표적인 스타급 선수들인데 경찰계통에서 도봉경찰서 강력계 팀장 김응희 경감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동반금메달을 획득한 신준섭과 이해정(우측)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1998년 10월27일, 노원구 30대 가정주부가 결박당한 채 목이 졸려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에 전담팀을 설치하고 끈질기게 추적했지만 18년전 당시에는 유전자(DNA) 데이터베이스(DB)도 구축되지 않았기에 수사는 난항에 빠져 추적하기 역부족이었다.

 

당시 도봉경찰서 소속이었던 김응희 경감(당시 경장)도 막내로 현장에 투입되어 수사를 거들었고 KBS 사건 25시에도 나왔지만 오리무중 미궁에 빠진 채 수사 2년을 끝으로 미제사건으로 처리되고 말았다. 

 

18년 전 노원구 살인사건이 다시 수사선상에 오르게 된 것은 순전히 김응희 경감의 불같은 짐념 때문이었다. 그간 서울청과 일선경찰서를 두루 거치는 동안 그날의 사건현장이 조금도 희석되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가 비슷한 또래의 딸을 가진 같은 부모의 심정으로 사건당시 피해자의 11살 초등학생 딸을 생각하면서 꼭 범인을 잡아야한다는 동변상련(同病相憐)의 애절함과 절박함이 가슴 한곳에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그가 강력사건을 전담하는 광역1팀에 배치되면서 복싱인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십분 발휘할 기회를 포착한다. 김응희 경감은 18년 동안 미궁에 빠져있던 이 사건의 용의선상에 올려있던 8천명을 대상으로 국과수의 협조를 받아 정밀분석하며 집요하게 추적한 끝에 결국 18년동안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은 이 사건의 범인을 전격적으로 5개월 만에 검거함으로써 화룡점정(畵龍點睛)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 도봉경찰서 강력팀장 김응희 경감     ©조영섭 기자

 

18년이란 세월, 박정희 정권의 통치기간이 18년이었고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전남 강진에서 귀양살이한 기간이 18년이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인생에 마침표를 찍은 세월이 18년 이었다. 아이러니하게 박근혜 대통령이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듯이 김응희 형사가 사건을 종식시킨 그날도 18일 이었다. 긴 세월동안 묻혀있던 사건을 수면위에 끌어올려 매조지한 김응희 형사, 그대는 진정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복서출신 경찰임이 틀림없다. 

 

82년 전국선수권 대회에서 라이트 웰터급에서 복서 김응희(당시 안동공고)와 치열한 일전을 치렀던 88서울 올림픽(웰터급) 국가대표 송경섭(당시 청주 기계공고)은 ‘응희(김응희 경감)는 문성길 처럼 악착같은 근성과 끈질긴 체력을 바탕으로 인간풍차 처럼 지구전(持久戰)을 펼치는 하드펀처로 정말 상대하기 힘든 괴로운 상대였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여담이지만 복싱이란 운동은 사회생활 하는데 여러모로 유익한 운동이란 생각이 든다. 20개 종목에 걸친 스포츠와 그에 따라 양성(養成)되어지는 심신의 요소를 철저히 분석, 지적한 러시아의 스포츠 심리학자인 푸니는 복싱에 의해 길러지는 요소 중 민첩성, 인내력, 정밀성, 저항력, 결단력, 용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봤다. 

 

그래서 그랬을까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미군은 기민한 동작과 적진을 격파함에 있어 용감한 투지 발휘와 적의 맹공에도 굴복하지 않는 반격능력을 고취시키기 위해 복싱훈련을 시켰고 병기와 포격술이 군사교육에 사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싱은 교육기관의 정식학과로 채택되어 교육이 시작되었다. 

 

세계적인 문호이자 불후의 명작인 노인과 바다를 저술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복서출신 이었고 삼각형의 기본원리를 처음 밝혀낸 수학자 피타고라스도 BC 588년 고대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임을 같은 복싱인의 한사람으로써  김응희 경감과 더불어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상계동 백병원에서 초년병 시절의 이해정 사무장     ©조영섭 기자

 

복서출신 이해정과 김응희는 63년생 동갑내기에 89년 입사한 공통점외에 사무장 이해정의 외아들과 김응희 경감의 둘째딸이 모두 성균관대 장학생 출신 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기자는 이해정과 김응희 두 복서가 복싱 선수로  정점에 있을 때 선수생활을 과감히 접고 제2의 인생을 선택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왜냐면 인생은 길고 복서 생활은 짧기 때문이다. 

 

전도유망한 복서출신의 김응희는 83년 용인대에 입학, 64회 전국체전에 미들급으로 출전한 후 과감히 복싱을 접고 군에 입대 한후 복학하면서 장고 끝에 방향전환을 한다. 전통적으로 용인대는 경찰계통과 직통하는 파이프라인임을 자각하고 방향전환을 한 것이다. 인생의 길은 알고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면서 찾는 것이다. 찾다보니 여러 갈래의 통로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이해정은 86년도 아시안게임 2연패를 이뤘을 때 그의 나이 만23세였다. 하지만 12체급 금메달리스트 중 가장 먼저 은퇴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복서가 이해정 이었다. 코앞에 월드컵과 올림픽이 아우토반처럼 펼쳐져 있었지만 미련 없이 복싱을 접고 박수칠 때 그는 떠난 것이다. 

 

프로야구의 이승엽도 프로무대 마지막 해인 2017년에 24개의 홈런을 때리고 은퇴를 선언했고, 메이져리그 최후의 4할타자 테드 월리엄즈는 마지막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마지막 홈런을 때리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은 법이다. 또한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시야가 좁은 사람은 벽창호처럼 닫힌 문만 계속 바라보다가 다른 문이 열리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낭패를 본다. 인생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두 전직 복서의 건승을 빈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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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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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20/06/25 [22:04]
훈훈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네요
한국 복싱이야기 늘 재미있고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원석 20/06/25 [22:36]
유익한 기사 감사합니다 
봉복이 20/06/25 [22:38]
안동에 일하려 10년 나갔었는데  안동분 이야기 나오니 무척 반갑습니다.  이분들의  인생2라운드 보고 많이 배웁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관장님 건강하세요.^^:
이상기 20/06/25 [23:27]
좋은 기사 감사히 읽었습니다.^^
갈색폭격기 20/06/26 [10:00]
잊고 있었던  일들을 항상 떠올리게 하는 멋진 기사입니다
이해정 씨가  백병원에 근무하고  있군요 ~~~
좋은기사 항상 감사 합니다
신성수 20/06/26 [16:05]
복싱이란 운동이 정말로 인내와 책임감..성실함이 없으면 안되는 운동이기에 가능하리라 여긴다...두분들의 앞날에 행운이 깃들기를 응원한다....조영섭의 복싱스토리가 복싱인들의 활동을 알게 해줘 감사한 마음이다.. 
바른이 20/06/28 [15:39]
오늘도 멋진 스토리 잘 읽고
숨은 복싱이야기를 찾아 잘 풀어주신
조기자님 항상 건승을 빕니다!
바른이 20/06/28 [15:43]
조기자님!
멋진 복싱비히인드 스토리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하고 무더위 건강 잘 챙기시고
다음 스토리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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