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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명장 김진길 관장과 수제자 천재복서 권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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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 기자
기사입력 2020-07-10

지난 어느날 WBC 국제심판이자 송파경찰서 강력계 형사인 김장성 심판과 함께 망중한을 이용해 일산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한국권투협회(KBA)심판이자 WBO 국제심판을 겸직하고 있는 권만득 관장을 찾았다. 소속된 기구는 다르지만 선배 김장성이 요즘 코로나 열풍으로 체육관 운영에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권만득 관장을 위로 격려차 방문한 것이었다.  

 

▲ 권만득 KBA 심판 과 김장성 WBC 국제심판(우측)  © 조영섭 기자


권 관장을 만나자 문득 그를 지도한 스승인 대원체고 故 김진길 관장과 생전의 인연이 생각난다. 사실 김진길 관장과 기자는 애증의 관계였다. 91년 가을로 기억된다. 그해 전국체전이 끝나고 당시 당곡고 3학년이었던 WBC 페더급 챔피언 지인진의 은사인 신귀항 선생이 10월 어느날 기자가 속한 영등포 88체육관을 불쑥 찾아왔다. 이유는 한국체대행이 불발된 지인진을 프로로 전향시키기 위해서 였다. 난 직속상관인 김철호 관장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고 이튿날 용산공고 백달근과 공개스파링을 시켜 검증된 기량을 확인 시킨 후 다음날 계약금 오백만원을 전달하고 정식으로 입단을 속전속결로 성사시켰다. 당시 지인진은 밴텀급에서 임재환(대전체고)과 고교 랭킹 1.2위를 다투던 정상급 복서였다

 

지인진은 88체육관에서 문성길과 스파링을 해도 밀리지 않고 과감하게 치고받는 난타전을 벌였던 근성이 뛰어난 복서였다. 나는 그를 91년 11월20일 MBC 신인왕전에 밴텀급이 아닌 Jr밴텀급으로 출전시켰는데 이건 나의 불찰이었다. 지인진과 언젠가 문화체육관 스텐드에서 경기를 관전하다 곽영철(성남체)이란 복서의 경기를 관전하면서 그의 하이테크한 경기를 보곤 지레 겁먹은 내가 지인진의 체급을 조정한 것이었다. 

 

결국 경기당일 지인진은 체중이 오버되어 한증막에서 체중을 맞추고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상대는 강산체육관의 박태선 이었다. 링에 오르려는데 누군가가 길을 막고 있었다. 김진길 관장이었다. 본인이 인진이를 직접 데리고 링에 오르겠다고 말한다. 할 말이 없었다. 

 

▲ 김진길관장과 지인진 챔프(우측) 

지인진에게 물으니 당곡중 1학년 때인 86년 초 대원체육관에 입관해 한두달 정도 훈련을 하다 그해 한국체대를 졸업한 신귀항 선생이 당곡중에 교사로 발령, 복싱부를 창단하면서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훈련하면서 이후 소년체전에서 이해정 코치의 지도로 금메달을 획득하고 당곡고로 넘어와 현재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김관장이 인솔해 올라간 지인진은 두차례 다운을 당하고 판정패를 당했다. 그날 저녁 신귀항 선생과 둘이 폭음을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어리석은 지도자 때문에 지인진에게 1패를 제공한 책임을 통감했기 때문이다.  

 

김관장과 나는 그후 오랫동안 냉각기를 가졌다. 그러던 4년 전 어느날 반전의 기회가 왔다. 안양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조은상 관장이 나에게 김진길 관장에 대한 칼럼을 부탁하기에 지난날을 잊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후 상호간에 닫혀있던 마음이 봄눈 녹듯이 녹으면서 관계가 시나브로 회복되었다. 

 

김관장은  저녁이 되면 꼭 반주로 소주 한 병을 드시는데 그때마다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걸어온 소중한 복싱 역사를 한올 한올 펼쳐주었다. 그런 생활이 2018년 2월 17일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반복되었다.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한 동물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그분의 많은 장점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이 세상 살아가면서 한쪽면만 바라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김관장을 생각하면 내리는 비에는 옷이 젖지만 쏟아지는 그리움에는 마음이 젖는다는 것을 실감한다. 

 

김진길 관장은 유명우, 지인진, 김철호 3명의 세계챔피언을 무려 5차례나 세계정상정복에 성공시킨 한국복싱의 히어로(hero)다. 그분이 돌아가신 2018년 2월17일 그날은 유제두 챔프가 1976년 와지마 고이치 에게 벨트를 빼앗긴 가슴아픈 날이고 1980년 그날은 김태식이 이바라를 KO시킨 바로 한국 프로복싱사 에서도 애증이 교차되는 그런 날이었다. 김진길 관장은 복싱인답게 복싱에 의미있는날 77세의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 김진길 관장 권만득 문남근사범(좌측부터) 

 

생전에 그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주 거론된 복서가 오늘의 복싱스토리 주인공 권만득이다. 1969년 대구출신인 그는 중학교때 상경, 신림동에 정착해 인근의 김진길 관장이 운영하는 대원체육관에 입관 하면서 복싱 역사가 시작된다. 김관장은 권만득에 대해 그녀석는 내가 지도한 수많은 복서중 복싱 스킬이 가장 뛰어난 천부적인 복서라고 말했다.  

 

 

그가 당곡중 2학년때 첫 출전한 학생선수권 42Kg급 8강에서 1년 선배인 김진호(익수제약)를 반박자 빠른 타이밍으로 판정으로 누르자 복싱신동이 나타났다고 복싱 관계자들의 탄성이 쏟아진다. 

 

김진호는 85년 리라공고에 진학해  김명복배 2연패를 달성했고 88년 동아대에 진학해서는 그해 대학선수권 우승과 함께 최우수복서로 선정됐으며 이후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한 미국의 에릭 그리핀을 한미 국가대항전에서 격퇴한 복서였다. 

 

▲ 권만득 국제 심판 (좌측)  ©

권만득은 1986년 당곡고 1학년때 경험삼아 출전한 김명복배 밴텀급에서 우승과 함께 최우수선수상을 받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김명복 박사배 에서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극히 이례적일 뿐 아니라 최우수상까지 받은 경우는 2006년 바로 그해 프로야구에서 한화의 류현진이 신인왕과 최우수선수상 등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기록에 비견될 정도의 전무후무한 역대급 기록이었다. 

 

권만득은 그해 체전 선발전에서도 서울체고 간판복서 나학균을 꺽는다. 나학균은 89년 대표선발전에서 85년 월드컵 과 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재패한 김기택에 2ㅡ3 으로 패할 정도로 정상급 복서였다. 이어 12월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벌어진 88서울올림픽 1차선발전에서 상무소속의 이기준을 일방적으로  몰아부쳐 판정승 한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상무소속의 복서를 꺽는다는게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일인가. 후에 기자가 속한 88프로모션의 소속선수였던 이기준은 90년 8월, 14승(10KO)1무의 기록으로 WBC 슈퍼밴텀급 챔피언 폴벵키의 타이틀에 도전, 12회 역전 KO패 당한 바로 그 복서였다. 

 

권만득은 87년 쿠바에서 벌어진 제 4회 세계청소년대회(라이트급)에 출전하여 결승에서 난적  안경호(경희대)를 판정으로 누르고 출전권을 획득한다. 한마디로 천하무적이었다. 당시 출전명단은 라이트플라이급 이창환, 플라이급 조인주, 밴텀급 박기홍, 페더급 이재권, 라이트급 권만득, 라이트웰터급 허기주, 웰터급 최진영 등 7명 이었다. 

 

권만득은 쿠바의 아바나 스포츠센터에서 벌어진 본선 1회전에서 쿠바의 후안 에르난데스에 판정패하며 고배를 마신다. 귀국한 권만득은 87년 8월1일 벌어진 88서울올림픽 3차 선발전에서 제3회 85년 세계선수권 (루마니아) 플라이급 동메달리스트인 김범수(경희대)를 2회 RSC로 제압하고 결승에 올라 박형옥(경희대)을 꺽고 올라온 차홍선(동아대)과 주도권을 잡고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분패한다. 당시 중계방송을 통해서 본 그 경기는 상당히 안타까운 패배로 기억된다.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88년 3월 아마복싱 연맹이 90년 북경 아시안게임과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 대비해 선수를 엄선해 서독에 전지훈련을 보내는 8명에 뽑혔다. 당시 명단을 보면 라이트플라이급 김진호, 플라이급 송은진, 벤텀급 전병성, 페더급 이훈, 라이트급 권만득, 라이트웰터급 최기수, 웰터급 성만기, 라이트미들급 김장섭이 주인공이다. 

 

▲ 91년 태국 킹스컵에서 손성찬감독과 권만득(좌측) 


이후 1989년 동국대로 진학했다. 전통적으로 동국대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술 문화에 관대하기로 유명한 학교다. 권만득은 김재경, 조인주, 박종심과  주당 4인방을 형성하면서도 각종대회에서 성적만큼은 확실하게 뽑아냈다.

 

대학 1.2학년 때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1991년 5월 대학 3학년때 웰터급으로 월장해 국가대표에 올라 91년 태국 킹스컵 본선에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하며 재기의 페달을 밟은 후 그해 대통령배 시도 대항에 서울대표로 출전해 극강의 이재현(대전대)을 꺽고 우승을 차지했고, 그해 전국체전에서도 대구대표 윤용찬(한국체대)과 강원대표 이철수(한국체대)를 차례로 완파하고 연속해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탄력을 받은 권만득은 92년 바로셀로나 1차선발전에서 우승한 후 최종선발전에서 서울시청의 제2의 신준섭으로 불리는 유망주 김희준을 눌렀지만 결승에서 전진철(원광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복싱을 접었다. 

 

권만득은 복싱 집안이다. 부친인 권성도 옹은 한국 미들급 3대 챔피언인 대구 서부체육관 오정근 관장에게 복싱을 수학하여 6개월만에 경북선수권 (페더급)을 차지한 복서출신이다.  64년 18회 동경올림픽 페더급에 출전한 석종구 등 원로복서들과의 추억담을 기자에게 회고했던 권성도 옹은 “우리 큰아들 만덕이가 중·고등학교 때는 비가 오면 강남터미널 지하에 가서 아침운동을 할 정도로 무척 성실했는데, 대학에 진학하면서 나태해 졌다”면서 지난날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 권만득 관장의 부친 권성도 옹과 동생 권일(우측)

 

둘째 권일(용인대)도 형만큼은 아니어도 정상급 기량을 지닌 복서였다. 특히 당곡고 졸업반인 94년, 국가대표 선발전 8강에서 92년 캐나다 에드먼턴청소 세계선수권 대회에 밴텀급 국가대표로 출전한 2년 선배 박상민(경희대)을 좌우연타로 2회 RSC로 누른 경기는 압권이었다. 박상민은 92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대회 선발전 밴텀급 결승에서 당시 기자가 속한 용산공고 홍성민을 16ㅡ11 로 꺽고 이듬해 경희대로 진학한 테크닉이 좋은 정통파 복서였다. 

 

이후 용인대를 거쳐 상무에 입대한 권일은 97년 제9회 세계선수권 최종결승에서 전형적인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박정필(서울시청)에 8ㅡ5 로 근소한 차로 판정패하며 태극마크 일보직전에서 분루를 삼켰다. 형만 한 아우는 없는법이다. 

 

올곧은 성품과 함께 예절바른 권만득은 은퇴 후 신림동과 충무로에 주점을 오픈하면서 사업가로 변신, 입지를 탄탄히 구축했지만 현재는 모두 접고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일산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현재 KBA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돈은 좀 덜 벌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일, 인생에서 가치 있는 일을 선택하라”고. 권 관장의 건승을 바란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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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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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월드 20/07/10 [20:0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 대학때와도 맞무리네요^^
선배님도 나오고 후배도 나오구요.
감사합니다^^
얍얍얍 20/07/10 [20:16]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장원석 20/07/10 [20:20]
유익한 기사 잘 읽었습니다
세준이아빠 20/07/10 [22:58]
권관장님 멋지십니다 
코로나19 로 힘드시겠지만
화이팅 하세요 ^^
세준아빠 20/07/10 [23:02]
관장님 멋지시네요
코로나19로 많이 힘드시겠지만 
화이팅 하시고 건강하세요 ^^
서동수 20/07/11 [10:09]
좋은 글 고맙습니다
이재영 20/07/11 [10:35]
언제나 멋진 복싱이야기
늘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이혁종 20/07/12 [12:59]
항상 좋은글 고맙습니다
김지울ㅗ 20/07/12 [14:58]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이상희 20/07/12 [16:39]
조영섭기자에게 술사주고 기사써달라는 자존감 부족한  마음이 허한 사람들 엄청 많습니다
와오아 20/07/13 [11:29]
복싱을 좋아하는 매니아로서 이런 권리 높은 글에 잊고 지냈던 복서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읽는 사람이야 쉽게 클릭하고 물만 부으면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컵라면처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글쓴이의 노고를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읽고 있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민준 20/07/13 [13:45]
언제나 좋은글 잘읽고있습니다

복싱 100년역사를 힘드려 집필하시는 기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화이팅입니다
복싱맨 20/07/13 [15:02]
한국 복싱의 부활을 위해 지나가는 흔적을 기록하는 관장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한국 복싱이 되살아날것이라 기대합니다.
김태민 20/07/13 [21:55]
좋은글 감사합니다
리버복싱 20/07/19 [16:01]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봉복이 20/07/19 [19:13]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홍천복싱 20/07/29 [23:55]
혹시 강원홍천중.고 복싱 이끌어오신 최준선 사범님 관련된 소식은 없는지요..외람된 말씀이지만 예전 네이버 링사이드에 관철이형 승록이형 기사에 대한 글을 접했을때 삼성권투
허코치님 이야기만 있더군요..진정 저널리스트 이시라면 정확한 정보를 알고 쓰신건지 아니면 정보력이 부족하신건지 궁금하기에 조관장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참고로 조관장님께 
악의적으로 이런 댓글을 남기는건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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