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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을 꿈꾸며 구슬땀 흘리는 박종용 화백

전인미답의 신천지를 개척하려는 예술투사의 원형 박종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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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순
기사입력 2020-07-24

전인미답의 신천지를 개척하려는 예술투사의 원형 박종용 화백

 

작년 1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과 3월 춘천 KBS 전시장에서 속살을 드러낸 박종용 화백의 추상표현주의 ‘결’의 연작들은 ‘우주를 향하여, 만다라, 생명의 울림, 대지의 균열, 봄이 오는 소리, 신비의 이국 세계, 동행, 파노라마, 허공의 외침, 기원, 외침’을 연상케 하는 평면 예술과 ‘응집과 확산을 지향하는’ 공간예술 및 ‘자연과 문명의 결합으로 생명의 빛을 염원하는’ (조합주의) 입체(설치) 예술 등, 종합 작품들로 구성되어 박종용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예시해 주는 듯했다.

 

박종용 화백의 새로운 추상표현주의 예술세계는 현실을 넘어 미래에 대한 꿈을 그리기 위하여 시작된다. 필자의 눈에 박 화백의 새로운 추상표현주의 예술은 생명을 갈구하는 고뇌의 산물이며, 수행의 과정에서 오랜 기간 땀을 흘린 노동의 미학이다. 여기에는 우주 만물의 탐구를 위한 고유의 오브제들이 독창성을 내뿜으면서 자연스럽게 표출되어 있다.

 

그의 새로운 예술세계는 경계를 넘어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몸부림이자, 땀으로 얼룩진 노동의 산물로서 처절한 육필언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 기간 내내 뜨거운 열풍을 일으키며 그의 예술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그때의 열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 (왼쪽부터) ◆미인도 ◇재료: 비단에 채색. ◇크기 : 60×105cm(가로×세로) ◇연도 : 1970년 ◆미인도 ◇재료: 비단에 채색. ◇크기 : 60×105cm(가로×세로) ◇연도 : 1970년 ◆수월관음도 ◇재료: 노방지·옻·금분채색. ◇크기: 70×130cm(가로×세로) ◇연도 : 1980년대 중반 ◆책가도(8곡 병풍 중 일부) ◇재료: 장지에 단청채색. ◇크기: 45×72cm(가로×세로) ◇연도 : 1980년대 초반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박종용 화백의 치열한 삶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는 필자 역시, 근간 그의 인생과 예술 여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기사들을 접하고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8살 때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는 60년 세월을 한순간도 붓을 놓은 적이 없는 타고난 운명적 예술가다.

 

그는 가족과 형제자매의 생계유지를 위해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던 아픈 상처를 가슴에 묻고 인사동⦁용인⦁천안아틀리에를 전전하면서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만 했었다. 이런 가운데 전천후 예술가로 이름을 날렸으나 갈등과 번민은 커져만 갔었다. 그러나 운명의 계시인가 박 화백은 우주의 본원을 밝히려는 생명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설악의 아틀리에에서 10여 년 치열한 고행 끝에 명상과 신비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추상표현주의 열풍은 현대미술의 메카인 미국, 프랑스까지 알려져 세계 유수화랑의 초대를 받기에 이르렀다.

 

박 화백은 세계로의 비상을 꿈꾸며 예술에의 순교를 다짐한다. 예술의 노예로서 흙으로 돌아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울 것을 맹세하며, 고독한 설악의 아틀리에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자신의 운명과 사명을 자각하면서 생명의 작가를 향해 처절하고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있다.

 

▲ (왼쪽부터) ◆불상(石조각) ◇재료: 자연석. ◇크기: 28×45×15cm(가로×세로×폭) ◇연도 : 1979년 ◆등잔대(木조각) ◇재료: 괴목에 니스. ◇크기: 30×75×2cm(가로×세로×폭) ◇연도 : 1979년 ◆탈 ◇재료: 화선지·석채. ◇크기: 28×35cm(가로×세로) ◇연도 : 1980년대 중반 ◆탈 ◇재료: 화선지·석채. ◇크기: 28×35cm(가로×세로) ◇연도 : 1980년대 중반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그의 작품 활동은 8살 때부터 시작되었다. 4km나 되는 읍내의 초등학교를 걸어 다니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책 보따리를 펼쳐 놓고 마을풍경과 농부들의 모습을 수시로 스케치했다. 밤에는 초롱불을 밝혀놓고 인물, 풍경 등을 묘사하곤 했다. 박 화백의 고향 시절〜인사동 시절〜용인 시절〜천안 시절을 거쳐 현재의 설악산 시절에 이르는 60년 세월의 풍상은, 가난과 고난에 좌절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마침내 새로운 추상 예술세계를 개척하여 세계의 하늘길을 연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쓰리고 격렬한 한 편의 드라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운명을 반추하지 않을까마는, 험난한 고난의 길목에서 시류의 흐름에 내맡기며 표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박종용 화백의 삶은 가난과 고난 앞에서 휘둘리기는커녕 강인한 의지력으로 도리어 자기가 뜻하는 방향으로 바꾸어 세계의 하늘길을 펼치고 있다. 

 

박종용 화백의 삶과 예술은 전인미답의 신천지를 개척해 나가는 예술투사의 원형이다. 내재해 있는 예술의 광맥이 그침 없이 용틀임하고 있음을 자각하기에, 세계로의 비상을 꿈꾸면서 예술의 용광로에 자신을 불태우고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만 평가. 예술혼을 불태워 명작 창작 소임을 다해주길 

 

살핀 바와 같이, 화운당 박종용 화백의 60년 세월에서 쌓인 내공은 모든 미술 분야를 능수능란하게 창작해 낼 수 있는 전천후 예술가로 변모했다. 솔직히 각종 작품의 이미지에 드러난 필력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실력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 (시계방향) ◆무제(결) ◇재료: 마대·흙·석채 ◇크기: 25×33cm(가로×세로) ◇연도 : 2016년 ◆무제(결) ◇재료: 마대·흙·석채 ◇크기: 38×45cm(가로×세로) ◇연도 : 2016년 ◆무제(결) ◇재료: 마대·흙·석채 ◇크기: 45×53cm(가로×세로) ◇연도 : 2017년 ◆무제(결) ◇재료: 마대·흙·석채 ◇크기: 45×53cm(가로×세로) ◇연도 : 2017년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그럼에도 국내 유수의 미대 출신이 아니고, 더욱이 국전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미술판 아웃사이더로 취급되어 홀대를 받지 않았나 한다. 스승격인 풍곡 성재휴 화백의 호된 질책을 받은 후 그만두기는 했지만,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 수없이 국전에 입⦁특선했고, 당대의 대가들마저 그에게 작품을 부탁하였다는 일화는 1970〜1980년대 일그러진 화단 풍토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서글픈 풍경인 것이다.

 

그는 수년의 고초 끝에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으나, 군 근무 중 아버지의 갑작스럽게 운명하자 학업을 중지하면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 심중이 오죽했을까는 넉넉히 짐작된다. 화단의 아웃사이더로 설움을 받았지만, 민화 등 평면작품과 도자⦁탈⦁민속공예⦁불상 조각⦁추상 조각 등 탁월한 각종 작품이 화상을 통해 일본 등지에서 거래되는 바람에 가족들의 삶을 겨우 지탱할 수 있었다. 그런 고난의 세월이 무려 30년 가까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눈물로 읽어야 하는 소설 같은 이야기다.

 

그런 가운데 운명의 계시인가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시작하여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2015년에야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다시 3년여 각고의 노력 끝에 인간 내면에 침잠하여 명상에 이르는 많은 작품이 창작되어 작년 예술의 전당 및 춘천 KBS 전시장 등지에서 뜨거운 열풍을 일으켰다. 

 

▲ 2019. 1. 19. 예술의 전당 전시 개막식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전시 열풍은 외국까지 알려져 미국 유수화랑의 초청을 받아 올해 2월 미국을 방문했고, 프랑스, 일본까지 초청 의사를 밝혀왔다. 이해관계에 얽힌 국내 화단이 외면하는 사이 세계 유수화랑들이 먼저 초청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세계로 비상할 수 있는 희미한 불빛이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박종용 화백은 나이 70을 바라보는 지금에서야 자신이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을 확인했다면서 화운당 아틀리에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결’의 창작에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박종용 화백의 미국⦁프랑스 등의 진출은 미술계의 한 획을 그을 사건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학연⦁지연 등, 끼리끼리의 이해관계에 얽힌 국내 미술계 실정에 비춰 유명 미대 및 국전 출신이 아닌 아웃사이드 예술인들이 빛을 보기는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실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어야 할 만큼 지난 한 것이다.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만 평가된다’와, ‘예술의 세계는 스승도 제자도 없으며 독창적인 작품만이 전부다’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작품평가에는 허언이나 허황된 광고 등이 통하지 않고, 영감과 흘린 땀을 평가받을 뿐입니다. 앞으로 영감이 넘쳐흐르는 작품들을 더욱 치열하게 창작하여 냉엄한 평가를 받겠습니다. ‘설악산아틀리에’에서 세계를 향한 화살(작품)을 본격적으로 닦겠습니다. 사실 한강 물에 몸을 던지고 싶을 만큼 가난과 절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운명에 순응하면서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작품하면서 사명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모 언론사와의 근간 인터뷰가 더욱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 현실이다.

 

박 화백의 지론처럼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만 평가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난맥처럼 얽혀있는 국내 상황을 뛰어넘어 세계가 박종용 예술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상황이다. “(작가 노트 중)…아픈 세월 속에 마디마디 피멍이 들어있는 것 같다. 이젠 우주를 향해 비상하는 결들의 향연에 모든 것을 날리고 싶다. ‘결’은 나의 분신이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는 그의 제작 메모는 삶의 아픔과 운명을 함축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 2019. 1. 19. 예술의 전당 전시 개막식의 임홍순 축사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우주의 신비를 풀어내려는 그의 추상 예술은 철학적 사유에 근거하고 있으며, ‘예술은 감동이며, 예술을 통한 세계인들은 모두 친구’란 예술이념의 구현을 위한 몸부림이다. 향후 세계가 그의 예술을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기대되는 상황이다. 세계인들의 순수한 눈에서 말이다.

 

이제 그는 세계로 비상하는 꿈을 꾸면서 고독한 설악산 아틀리에 ‘화운당’에서 세상사와 담을 쌓고 세계를 향해 쏘아 올릴 작품들의 창작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특히, 1년 내내 몇 차례 서울의 가족들을 방문하거나, 재료 구입을 위해 출타하는 일들 외에는 작업실에서 창작에만 전념하고 있다. 정말 소름 돋을 정도로 지독한 예술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는 이미 운명과 사명을 자각한 달관의 예술인이다. 남겨진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며 밤이 깊어갈수록 붓놀림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어쨌든 ‘화운당 아틀리에’에서 창작된 작품들은 향후 세계예술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프랑스 등지에 진출하여 매서운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의 새로운 예술에 대한 (최초의) 세계적 평가이자… 어쩌면 마지막 평가가 될 수도 있는 엄중한 상황이다. 오로지 작품으로만 말하는 세계적 평가 기준에는 어떤 허언이나 과대광고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박종용 화백 또한 이를 모를 리 없다.

 

필자는 박종용 화백과 예술적 교감을 나누면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린다. ‘설악산 아틀리에’에서 창작된 작품들이 세계적 평가를 받아 비상의 나래를 펼치길 기대하며, 삶이 다할 때까지 더욱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워 많은 명작을 남김으로써 생의 소임을 완수하길 당부드리고 싶다.

 

2020.    07.   24.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임 홍 순 

 

철학박사 임홍순은 서경대학교 인문대학장, 대학원장, 서울문화사학회 회장, 한국고서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경대 명예교수이며 동양문화연구회 회장, 한국전통무예학회 회장, 한국예술론가협의회 부회장, 서울문화사학회 명예회장, 한국고서연구회 고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재직 중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석, 박사과정을 개설하였으며, 예술철학과 미학 등을 강의하였다. 예술 전반에 대한 깊은 조예로써 문예 비평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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