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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작가, 문서진의 아틀리에

조선의 도공 문서진의 아틀리에에서 피어오르는 명작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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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국 기자
기사입력 2020-08-31

조선의 도공 문서진의 아틀리에에서 피어오르는 명작의 향기 

  

최근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 위치한 문서진 화백의 화실을 탐방했다. 약 15평쯤 되어 보이는 화실의 벽면에는 국전 입선작 ‘고개 너머 어머니의 품’과 자신의 초상화 및 ‘Zero Mass(무중력)’ 시리즈의 작품 등이 걸려 있었고, 바닥은 이젤 아래·위로 각종 그림들이 겹겹이 쌓여져 있었다. 좁은 공간에 50〜60점의 각종 그림들이 즐비하게 모양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은 2평 내외 정도로 보였다. 약간 비좁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화실이 비좁아 완성된 작품들은 집에서 보관하고 있다”면서 “약 4킬로미터 떨어진 주거지와 아틀리에를 매일 오가면서 작업하고 있으며, 1988년 안산에서 출발해 4번째 옮긴 아틀리에다”라고 설명했다. 

 

▲ 문서진 화백  © 박명섭 기자


대형(100호 이상)작품을 자유롭게 그리기조차 어려운 듯한 이 공간에서 수많은 명작들이 탄생되고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피어올랐다. ‘조선 도공 문서진의 명작창작 산실’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문서진 화백은 화가를 결심한 계기 및 예술의 여정 등에 대한 물음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재능을 발휘하여 자연스럽게 화가의 길로 접어들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초기 사실주의 회화에서 초현실주의 경향의 ‘Zero Mass(무중력)’ 시리즈 시절을 거쳐 현재 달항아리 작업에 천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술계 화제인 달항아리 작품들이 근간 (미술품)경매시장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며 소회는 어떠한지 물었다. 

 

그는 “사실 일반 작가들에게 경매 출품은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작품성 여부를 떠나 경매에 출품한다는 자체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저의 작품이 어떻게 경매에 출품되어졌고, 지난 7월 경매에 이어 8월 경매에 연속 낙찰되었는지는 저 자신도 내막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어쨌든 7〜8월 연속 낙찰에 어리둥절할 뿐이나, 작품에 기울인 저의 땀방울을 독자(관객)들이 평가해 준 것으로 생각하며 감사할 뿐”이라며 솔직담백하게 감사함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경매회사에 출품해 낙찰된다는 것은 작가의 작품이 현금화되는 세속적 평가일 수도 있지만 이는 작품평가의 주요 부분이 될 수 없고, 어디까지나 더욱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일 뿐이다. 순간 반짝거리다가 사라진 작가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좀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순간의 인기몰이에 휩쓸려 미술품을 구입했다가 작가의 퇴조와 함께 작품(재산)마저 함몰되어가는 것이 엄연한 세태다. 저의 작품이 앞으로 (미술품)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야말로 목숨 걸고 지속적으로 좋은 작품들을 창작해 냉엄한 평가를 받을 생각이다. 이것을 사명으로 생각하여 좋은 작품 창작에만 혼신의 노력을 다할 생각”이라며 각오를 밝혔다.

 

▲ 문서진 화백  © 박명섭 기자


다음으로 민감한 창작과정과 어려움 등에 대해 물었다. 창작 과정은 구체적으로 어떠하며, 어떠한 어려움 등이 있는가에 대해 문서진 화백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사실 현재 창작되어지는 달항아리 작품들은 고도의 집중력과 세밀함이 요구되는 작품으로서 처음 시작부터 마무리 단계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힘든 노력이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다. 창작과정을 일일이 밝힐 수는 없겠으나, 처음 통상 3〜4개의 캔버스 위에 각각 다른 달항아리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밑그림(스케치) 작업을 시작한다(색연필이나 연필). 이렇게 시작된 밑그림의 형상위에 혼합재료를 사용하여 통상 3〜4번 이상에 걸쳐 도자기의 세심한 클릭 등을 형성해 나가는 진행과정을 거친다(소위 ‘마띠에르’ 형성과정). 이런 과정을 거친 다음 종국적으로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조선 도공이 빚어낸 듯한 1300도의 소성과정에서 탄생되는 달항아리의 질감을 표현해 내기 위한 명암처리과정(완성단계)에 돌입한다. 특히 마무리단계에서는 지극정성의 땀방울을 흘려야 함은 물론이다. 작품 한 점, 한 점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화면과의 피나는 싸움을 벌어야만 한다. 손발 마디마디에 피명이 들 정도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한 달에 탄생되는 작품들은 기껏 3〜5점에 불과하다.

 

창작과정에 가장 힘든 일은 뭐니 뭐니 해도 마띠에르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과 완성단계의 1300도의 불의 소성과정을 거쳐 탄생되는 듯한 예리한 질감표현을 향한 긴장감이다.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제대로 된 작품들이 탄생될 수 없다. 그야말로 칼 날 위에서 춤을 춰야 하는 긴장감 속에 오로지 이 작품들이 살아 숨 쉬는 영원한 생명의 예술이 되기를 갈망하면서 가슴이 미어질 듯한 간절함을 안고 한 점 한 점찍고, 그어가면서 완성시켜 나간다. 과정의 어려움과 긴장감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다. 작품에서 보여 지는 수많은 클릭 등은 이러 과정 등에서 저절로 작화된 것이다.』라는 등, 차분하게 창작과정 등을 설명했다.

 

다음으로 작품(달항아리)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및 앞으로의 계획 등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질의하자, “달항아리를 통해 조선도공의 흔적들을 명상하면서 잠시나마 걱정과 욕망을 벗어나 잃어버린 감수성을 되찾고 어머님 품속 같은 아늑함이 전달되기를 갈망한다”면서 “사랑받는 예술인으로 예술사에 기록될 수 있도록 삶이 다하는 날까지 명작창작을 위해 땅방울을 흘릴 생각”이라고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 문서진 화백  © 박명섭 기자


이렇게 대체적인 질의·응답을 마친 다음 작품시연을 요청했다. 작가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면서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화살 안은 순식간에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잠시의 긴장 끝에 이젤 위에 그리다만 캔버스를 꺼내 올린다.

 

긴 호흡을 마셨다가 내뿜는 순간 그의 눈은 독수리와 같이 매섭게 화면을 응시하면서 불타올랐고, 그의 손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마치 금방 가마에서 꺼낸 듯한 항아리의 미세한 균열(클릭)의 극점을 향해 끝을 향해 한 점, 한 점씩 찍고 그어나갔다. 호흡을 정지했다 다시 숨을 내뿜으면서 계속되는 작업 속에서 그의 몸은 땀방울로 젖어갔다. 정말 화면과의 피나는 싸움이었고, 중노동이었다. 

 

구슬땀을 흘리면서 한 점 한 점 찍어내고 그어가는 과정은 정말 소름 돋을 정도로 치열했고, 작가의 고충이 진하게 가슴속으로 전달됐다. 이렇게 10여 분간에 걸쳐 작업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작가의 모습은 마치 신들린 사람 또는 실신한 사람처럼 허우적거렸다. ‘그만!’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2점을 시연했고, 작가 노하우 보호를 위해 배경 처리하는 1점만 공개 한다.)

 

문서진 작가는 차 한잔을 권하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달항아리 작품마다 수 만개의 클릭 등이 있다. 가마에서 금방 꺼낸 듯한 오묘한 조선 달항아리의 질감을 표현해 내기 위해서는 파리 다리보다 작은 수 만개의 작은 클릭 등을 표현해 내야 한다. 소성과정에서 형성되는 항아리마다 수 만개의 미세한 균열을 표현해내기 위해 물감을 세필에 묻혀 끝이 보일 듯 말 듯 뾰족하며 휘어지고, 굽이치는 듯한 갖가지 미세한 클릭 등을 작품마다 3〜4회 또는 7〜8회에 걸쳐 찍고 그려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달항아리 작업의 기본적인 작화 과정이다.” 

 

그는 “보통 한 작품 당 1〜2만개 이상의 클릭 등이 있다. 소성과정에 발생되는 이러한 클릭을 표현해 내기 위해 우툴두툴, 까칠까칠한 한 화판에 손바닥까지 문질러 가며 작업을 하다 보니 손바닥이 닳아서 피가 맺힐 정도다. 이런 어렵고 고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한 달에 겨우 몇 점밖에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솔직히 화면과의 피나는 싸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작품들의 속살은 땀방울의 결정체이자, 영혼의 숨결이다”고 설명했다.

 

▲ 문서진 화백의 아틀리에  © 박명섭 기자

 

이같은 작가의 고백(설명)은 마치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는 듯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시상과 운율이 울려 퍼지고 조선시대 창공의 바람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신묘한 달항아리 창작의 베일을 벗겨져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희열을 동시에 체험했다.


이런 충격적인 시간들을 뒤로 하고 다시 화실 곳곳을 둘러보니 좁기만 한 그의 화실은 붓을 든 조선의 신필 도공을 탄생시켜 갈고 닦는 예술의 향연장으로 비춰졌다. 명작창작의 향기가 피어오르는 예술의 산실 말이다. 명작창작의 산실로 칭하여도 부족함이 없는 그의 아틀리에 탐방은 예술의 기능 및 예술가들이 걸어 가야하는 길을 체험시킨 뜻 깊은 결실을 안겨 주었다. 

 

근원의 예술을 위해 멈춰진 숨결 속에 껍질을 벗어던지고 속살마저 태우고 있는 영원한 예인(藝人) 문서진 화백의 모습은 신필의 붓을 든 조선 도공이 출현이 아닐 수 없다.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그의 손놀림에 의해 찰나의 순간에 조선의 (불)가마가 끓어오른다. 그의 붓은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명상의 비행선이다.

 

그는 섭리의 작용으로 깊은 근원예술의 원시림(原始林) 속으로 몸을 던졌다. 짙은 예술의 향기가 울려 퍼지는 그의 아틀리에가 명작창작의 산실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더욱 정진하여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예술을 펼쳐 예술문화발전에 기여하길 염원한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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