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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정초’ 글씨, 이토 히로부미 필체로 확인

문화재청, 현지조사 자문단 구성해 조사한 결과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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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주 기자
기사입력 2020-10-21

문화재청, 현지조사 자문단 구성해 조사한 결과 공개

“이토 히로부미 글씨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갖고 있어”

한은, 주춧돌 바꿀까…내부검토 거쳐 최종결정할 예정

 

서울 한국은행 본관의 머릿돌인 정초석의 ‘정초(定礎)’ 글씨가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로 최종 확인됐다. 이번 조사결과에 따라, 한국은행은 내부검토를 거쳐 안내판 설치나 글씨 삭제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한국은행 본관 정초석의 글씨가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국민적 관심이 쏠림에 따라 서체 관련 전문가 3인으로 현지조사 자문단을 구성해 지난 10월20일 현지조사를 시행했고,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임을 확인했다고 21일 밝혔다.   

 

이같은 결론은 지금까지 입수된 ‘일본 하마마츠시 시립중앙도서관 누리집’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 붓글씨와 최근에 확보된 1918년 조선은행이 간행한 영문잡지 ‘Economic Outlines of Chosen and Manchuria’에 게재된 이등박문 이름이 새겨진 당시의 정초석 사진 등 관련 자료를 참고한데 따른 것이다. 

 

▲ 위는 서울 한국은행 본관의 정초석에 새겨진 정초(定礎) 글씨, 아래는 일본 하마마츠시 시립중앙도서관 누리집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 붓글씨. (사진제공=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이토 히로부미의 묵적(먹으로 쓴 글씨)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려쓴 획 등을 종합해 볼 때,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그의 글씨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한국은행 본관은 1907년에 착공돼 1909년 정초 후 1912년 조선은행 본점으로 준공된 건축물이다. 일제는 이를 통해 우리나라 경제 침탈을 자행했으며 광복 후 1950년 한국은행 본관이 됐고 1987년 신관이 건립되면서 현재 화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문화재청은 “글씨를 새기는 과정에서 획 사이가 떨어져 있어야 하는 부분이 붙어있는 등 획을 정교하게 처리하지 못한 점, 붓 지나간 자리에 비백(빗자루로 쓴 자리같이 보이는 서체)을 살리지 못한 점 등 일부 필획에서 서예의 특징을 잘 살리지 못하는 등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함께 제시됐다고 전했다.

 

특이사항으로는 정초석에서 정초 일자(초석을 설치한 날짜)와 이등박문 이름을 지우고 새로 새긴 ‘융희(隆熙) 3년 7월 11일’(1909.7.11.) 글씨가 이승만 대통령의 필치로 보인다는 의견이 제시됐으나 정확한 기록은 없는 상태로, 아마도 해방 이후 일본 잔재를 없애고 민족적 정기를 나타내기 위해 이승만이 특별히 써서 석공이 새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확인된 정초석 글씨에 대한 고증결과를 서울시(중구청)와 한국은행에 통보할 예정이며, 한국은행이 내부 검토 후 정초석 글씨에 대한 안내판 설치나 ‘정초’ 글 삭제 등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신청하면 문화재청은 관계전문가 등 다양한 의견수렴과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종합적으로 관리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편, 이토 히로부미는 을사늑약을 맺도록 하고 초대 조선통감이 된 인물로, 고종 강제 퇴위 및 대한제국 식민지화를 이끈 일본 정치인이다. 후일 러시아를 방문했다가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쏜 총탄에 의해 사망했다. 이토의 죽음은 대한독립을 여는 신호탄이었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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