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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시] 작은 행복 / 이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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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선
기사입력 2020-12-28

작은 행복

      -어느 요사채에서

 

싸락눈 흩뿌린 뜨락 큰 스님 작은 발자국

 

발자국 속 작은 모이 참새들이 쪼고 있다

 

오늘은 비질을 하지 말자 고요 속의 작은 행복.

 

# 찔레 덤불 속에서 은종 소리가 들렸다. 돌아왔구나. 반갑고, 뭉클했다. 마을 앞 수천 평의 논이 갈아엎어지고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자, 참새들이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었었다. 눈 내린 겨울 아침이면 마당 한쪽 찔레 덤불 속에서 은종 소리를 내며 마당에 내놓는 먹이를 기다리던 작은 생명들... 직박구리, 물까치, 까치, 어치가 먹이통을 차지하는 동안을 참지 못해 깃을 털며 먹이통이 매달린 줄에 나란히 앉아서 조바심을 치던 모습에 절로 입가를 올라가게 하던 어여쁜 생명이 다시 마을로 돌아온 것이다.

 

이년 전 마을 앞 논들이 갈아엎어지고, 측량 기사들과 포크레인이 점령군처럼 들이닥치면서 참새들은 더 먼 시골로 밀려났다. 이삿짐 싸는 소리도, 살던 터전을 떠나는 한숨 소리도 귀가 어두운 인간인 나는 듣지 못했지만, 콘크리트에 밀려난 참새들 생각을 하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콘크리트, 플라스틱, 미세먼지, 신종전염병’으로 가득 찬 인류세(Anthropocene)를 살아가는 오늘날, 자연계의 생명들은 더더욱 열악하고 치명적인 것들에 노출되어 있다. 어느 봄날, 문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봄’이 찾아와 새 한 마리 보이지 않고, 벌과 나비도 볼 수 없게 된다면.... 

 

참새가 마을에서 보이지 않은 이후로 텃밭 산감나무에 열리는 감들과, 고욤나무로 변한 둔덕의 단감나무의 열매들은 거두지 않았다. 마당에 매달아둔 새 먹이통에서 직박구리, 물까치, 까치, 어치, 작은 철새들이 서로 먹이를 두고 순서를 다투며 가슴을 크게 부풀리거나 몸으로 상대를 밀어내는 모습은 시골 생활의 양념처럼 달콤 쌉싸름하다. 이름도 잘 알 수 없는 작은 철새들은 마당 찔레 덤불과 둔덕 싸리나무 덤불에서 겨울을 의탁하는데, 올해는 눈 내린 겨울 아침 찔레 덤불 속에서 참새들의 그레고리 챤트가 들렸다. “어느 요사채”에 들렸던 시인도 “싸락눈 흩뿌린 뜨락 큰 스님 작은 발자국” 속을 쪼고 있는 “참새”들을 보고, “오늘은 비질을 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작은 행복”을 느낀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매일매일 만들어 가는 소소하지만 “작은 행복”들로 채우는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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