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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안칼럼] 트로트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

청소년의 꿈이 트롯트 가수인 나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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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안
기사입력 2021-01-26

청소년의 꿈이 트롯트 가수인 나라, 대한민국 

 

요즈음 TV를 켜면 방송국마다 어김없이 트로트를 방영한다. 방송국에서는 다양한 오디션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출연자들이 벌이는 경쟁방식은 한층 기대감을 더한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안방에서 눈과 귀가 즐겁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트로트에 열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랫동안 코로나 19로 지친 사람들 마음에 트로트가 위안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트로트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이토록 트로트에 열광해야 할지 의문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서양음악이 한창 유입되던 시기에 대중음악은 일제에 의해 수난을 당하고 크게 굴절되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내선일체를 위해 이른바 ‘문화정책’ 일환으로 이 땅에 식음(植音)을 강행했다. 

 

즉 우리 민족 가슴에 그들의 노래를 이식해 놓았다는 것이다. 서양음악이 유입되던 초기에 일제는 우리나라 창가가 추구하는 애국애족과 민족정신을 철저히 배제시켰다. 예를 들면 일제는 1910년 5월 ‘관제창가’로 '보통교육 창가집' 제1집을 만들어 2박 계통의 트로트리듬과 요나누키(ヨナ拔キ)음계로 된 7‧5조의 노랫말을 보급했다. 또 1914년 3월 '신편창가집'에 기미가요(君が代), 텐쵸세쓰(天長節) 등 일본국가와 천황탄생일 노래들을 앞에 배열하고 일본적 요소를 강화했다.

 

또 3‧1운동 후 절망감에 젖어있던 우리 민족 가슴에 일본에서 건너온 퇴폐적이고 감상적(感傷的)인 유행가가 겹쳐져 한국인의 음악적 감수성을 일본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때마침 일본 레코드사들이 한국에 진출하면서 ‘유행창가’는 상업적 성격을 띠었고 가부키의 한국판인 신파극도 일본식 유행가 전파에 한몫을 담당했다. 1930년대부터 유행가는 유행창가를 흡수하며 점차 일본적 요소로 심화해 갔으며 내용과 형태에서 일본적 특징이 뚜렷한 식음지(植音地)가 전락해 버렸다.

 

이미 일본에서는 1880년대 메이지유신 때 대중을 계몽하기 위해 연설을 하는 가운데 엔카(演歌)가 만들어졌다. 엔카는 서양음악이 일본에 유입되면서 서양 7음 음계를 일본식으로 고쳐 5음 음계인 요나누키음계로 만든 것이다. ‘요나(ヨナ)’란 말은 네 번째와 일곱 번째라는 일본어 ‘요츠(ヨッツ)’와 ‘나노츠(ナノ ツ)’의 첫머리 글자이며 ‘누키(ヌ キ)’란 빼기라는 뜻이다. 즉 4음과 7음을 뺀 음계라는 뜻이다. 엔카는 1914년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유행한 4분의 4박자 스텝의 사교댄스 폭스트로트와 결합되어 1920년대 말 국내에 유입된 이른바 뽕짝이라는 2박 계통의 가요 트로트를 말한다.

 

일본의 군국정신과 천황에 충성 맹세하는 군가에 사용 

 

요나누키음계는 요나누키장음계 ‘도레미솔라’와 요나누키단음계 ‘라시도미파’로 나눈다. 요나누키장음계는 우리나라 평조와 비슷하고 이미 초기 창가에서 사용되었으나 일본에서는 율(律)음계라 하여 가가쿠(雅樂)에 사용되었고 일본국가인 기미가요(君が代)에 영향을 주었고 제2 국가로 불리는 우미유카바(海行かば)에 사용되었다. 일제 말기 군국정신을 고취 시키고 천황에 충성을 맹세하는 군가는 대부분 이 음계를 사용하였다. 

 

문제는 이것의 한국 전파는 우리 전통음악을 짓밟고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일제에 동조한 한국 작곡가들은 자발적으로 이들 음계를 사용하여 곡을 만들었다. 요나누키장음계로 된 곡으로 춘원 이광수 시, 임동혁 곡 <애국일의 노래>와 홍난파의 <희망의 아츰>은 우리 민족의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으로 천황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음계로 만든 가요에는 <홍도야 울지마라> <나그네 설움> <신사동 그 사람> 등이 있다.

 

암울했던 식민 정서에 파고든 애상조의 곡들  

 

미야코부시(都節)라 불리는 요나누키단음계는 인(陰)음계로 일본적 색채가 짙고 그들의 민족혼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 음계로 만들어진 엔카는 슬픈 느낌으로 전시 말 일본의 험악하고 퇴폐화되어 가는 도시적 세태를 반영한다. 이 음계로 작곡된 곡으로 △목포의 눈물 △눈물 젖은 두만강 △황성 옛터 △비나리는 고모령 △단장의 미아리고개 △동백아가씨 △돌아와요 부산항에 △일편단심 민들레야 △세상은 요지경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심지어 △독도는 우리 땅 △나의 조국도 이 음계로 작곡되었다. 이 음계의 어두운 면은 암울했던 우리 민족의 식민 정서와 맞닿아 있어서 동화되기 수월했다. 이 시기에는 음계와 리듬뿐 아니라 지극히 단순한 화성진행으로 일관하며 노래에 사용된 가사의 율격에도 일본의 7‧5조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음악은 곡에 사용된 음계에 따라 그 음악 양식을 결정짓는다. 일본 방송에서 그들의 전통가요라는 프로그램을 들어보라. 일본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르는 이른바 전통가요와 꼭 같이 부른다. 가사만 서로 다를 뿐이지 음악의 흐름은 너무도 흡사하다. 음계의 구성과 선율의 진행은 물론 노래의 형태와 반주, 창법까지 닮았다. 그렇다면 이 음악의 뿌리는 어디며 누구에게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것인가. 일본 엔카의 대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가 젊은 시절 한국에서 살았다고 해서 엔카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해야 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분명한 것은 엔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유입되었다.

 

방송사의 왜곡된 개념, 우리가 ‘트롯트의 민족’인가?  

 

이처럼 일제강점기 주입된 일본 음계는 머리와 가슴에 각인되어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있다. 해방된 지 어언 70년이 훨씬 흐른 지금에는 오히려 ‘전통가요’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우리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고령층에서는 이것에 대한 야릇한 향수마저 갖고 있다.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는 ‘트로트의 민족’이란 타이틀로 트로트를 방영했다. 누가 트로트 민족인지, 무엇을 ‘전통’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미래를 위해 우리 사회에 범람한 왜곡된 문화를 바로 세우는 것이 마땅하다. 그중 일제에 의해 길들여진 왜색의 대중가요가 포함될 것이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장래희망은 트로트 가수란다. 대중문화에 편성하여 무차별 내보내는 트로트 방송의 폐해를 깊이 생각해 보라. 지금의 트로트 열풍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유대안(劉大安) (작곡가 겸 지휘자) 
계명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및 동 대학원 작곡과 졸업(작곡)

계명대학교 대학원 음악학박사(Ph. D)(이론)

Italy C.S.M & 곽승 지휘 Academy Diplom(Orch. 지휘)

(사)날뫼민속보존회 이사장, 영남작곡가협회 이사, 대구작곡가협회 이사

대구시합창연합회 회장, 대구서구문화융성 위원, 인동역사문화연구회 자문위원

운경은빛합창단 지휘자, 구미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지휘자

중등음악교과서 편찬위원 역임(성안당), 계명대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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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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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yane 21/01/26 [09:55]
너무나 명료하게 잘 정리해 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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