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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와 투견 조각으로 가득한 ‘박물관’

3년을 다닌 투견장, 박제된 폭력의 기억…박찬용 조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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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경기자
기사입력 2014-03-14


[문화저널21 이영경 기자]  열두 마리 투견의 머리가 각각의 철창에 갇힌 채 벽에 걸려 있다. 이 투견은 상대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싸우게끔 호전성이 개량된 아메리칸 핏불 테리어다. 박찬용은 몇 년간 따라다닌 투견장의 경험을 형상화한 전시 <투쟁, 그 영원함(2000)>을 시작으로 일련의 견 시리즈를 선보였다.
 
“싸움 개들은 희한한 게, 남의 집 개하고 싸울 때보다 같은 농장에서 자란 개들끼리 싸울 때 더 잔인해요. ‘너 이 새끼, 줄만 한 번 풀려 봐라. 어찌 되는지 두고 보자’ 이러다가 한 번 붙으면 죽을 때까지 싸우죠.”

개는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인간은 그 죽음에 돈을 건다. 투견은 인간의 폭력성과 도박에 대한 집착이 결합한 부조리한 현실이다. 인간이 살인을 넘어서 ‘개 죽이는 개’를 만드는 것이다. 박찬용이 만드는 세계는 폭력과 고통이 난무한다.

폭력을 가하는 이가 당하는 이에게 고통을 주고, 그 고통은 다시 가하는 이에게 되돌아간다. 이러한 폭력의 연쇄 고리는 여러 독립된 상들이 모여 상황을 연출하고 네러티브를 구축하는 박찬용의 일련의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표현된다.
 
박찬용은 20여 년간 총 12회에 걸친 개인전을 통해 동물과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탐구하는 조각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의 조각 작품 특유의 거친 물성은 흙으로 주조한 후 알루미늄 주물로 캐스팅하여 만들어 내는 재료적 특성을 보여 주며, 야생 동물의 강인하고 잔혹한 생명력을 생동감 있게 표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굴의 우상>, <박제> 시리즈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종교가 교차되는 지점을 탐색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이번 박찬용의 전시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라는 모더니즘적 미학을 간직한 전시 공간을 대형동물의 박제와 투견 조각으로 가득 찬 <박물관>으로 번안한다. 고대 그리스 사원이나 인도의 신전이 주술적 대상이나 신상의 보호처였다면, 박찬용의 이번 전시는 폭력성이라는 한국의 신을 미술관에 새겨 넣는다.
 

Q. <투견> 시리즈로 2000년대 초 미술계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투견 조각이라는 무겁고 어두운 작품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

개싸움 판에 한 3년 정도 다니다 이걸 소재로 작업해야겠다는 생각했다. 핏불이라는 싸움 개는 개량된 종자다. 다른 종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싸우는데, 핏불은 죽을 때까지 싸운다. 누구나 개싸움을 처음 보면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한 번 보면 ‘어디 개싸움 또 없나’ 하며 빠져들게 된다. 개들이 싸울 때는 투견꾼들도 웃고 떠든다. 하지만 훈련이 잘된 좋은 개들이 한 시간 넘게 싸우는 걸 보다보면 깊이 빠져들게 된다. 프로 투견꾼들은 몇 천씩 건다. 이 프로들이 끼면 둘 중 한 마리는 죽는다. 져서 죽기도 하지만, 이기고 죽기도 한다. 제 능력 이상을 해서 죽는 거다.

싸울 때 시력부터 상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아 더듬더듬 돌아다닌다. 처절하다. 사람들은 이런 강한 대상에 대한 동경이 있고 그 잔인함에 끌린다. 투견 판은 인간의 폭력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Q. 아버지가 군인이었다고 했다. 혹시 진해 해군 부대에서 성장한 경험이 폭력에 관심 갖게 했나? 일상에서 폭력을 경험한 기억이 많은가

어릴 적 <태평양 전쟁사>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책에 남태평양의 이오지마 상륙작전에 관한 지도가 나온다. 그 지도에는 동그라미를 쳐놓고 미군 1만 명, 일본군 3만 명, 사망자 수가 적혀 있다. 4만 명 죽었다는 사실이 상상이 안 가는 거다. ‘4만 명이 어떻게 죽지? 한 번에?’ 당시 진해 인구가 2만 명쯤이었다. 진해 인구보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 책엔 죽은 민간인들 사진도 많았다. 어린 마음에도 인간이란 너무나 잔인한 존재구나 하고 생각했다.

근대 이전에는 사람 한 명을 죽이려 해도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야 했다. 그런데 근대 과학의 발달로 대량 살상이 가능해졌다. 쉬워졌다. 버튼 하나로 몇 만 명을 휙휙 죽일 수 있다. 인간이 원자의 존재를 발견한 후, 처음 만든 게 원자폭탄 아닌가. 뭐든지 과학이 발달하면 사람 죽이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이 폭력의 형상을 만드는 내 작업으로 이어졌다.
 
Q.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신작 <동굴의 우상>은 <박제> 시리즈에서 출발했다. 호랑이 머리나 앵무새, 사슴 뿔 같은 작은 대상에서 거대 동물로 그 규모를 확장한 계기가 있는가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면 원시인, 청동기, 석기 시대 사람들이 동물 드로잉을 기막히게 했다. 당시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주술적 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대형동물을 많이 잡아먹게 해달라는 기원에서. 잔치나 축제에서 인간들이 소나 돼지 같은 동물을 먹는 행태는 흔하다.

하지만 대형동물은 다르다. 여러 명이 힘을 합쳐야 하기에 대형동물을 사냥하는 행위는 그 의미가 달랐던 것 같다. 대형동물이 신이기도 하고, 동시에 먹잇감이기도 한 것이다. 옛날에는 동물과 사람이 그리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 사람이 가축을 키우면서 동물을 얕잡아 보게 되었다. 먹여 살리는 존재니까. 왜 가축을 비유하는 욕들이 많지 않다. 돼지 새끼, 개자식 같은 욕들…….

박제는 신이 인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는 생각과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 같다. 동물을 죽여서 속은 빼고 거실이나 사무실에 건다. 박제는 인간의 다른 종에 대한 승리의 트로피이자 전리품이다.
 
<투견>, <서커스>에서 <동굴의 우상>으로 이어지는 박찬용의 조각 작품은 한국 리얼리즘 조각의 흐름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작가는 한국 사회의 일상 속에 만연해 있는 폭력의 기록들을 여과 없이 예술 작품으로 녹여 내며, 예술을 숭고함의 등가물로 다루는 미학에 이의를 제기한다. ‘진실한 자연 묘사’나 ‘숭고미’ 대신, 박찬용은 표현주의자들이 그러했듯 인간의 고통과 폭력, 그 격정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며 아름다운 조화나 순수한 미를 구축하는 것에 정착하기를 거부한다. 5월 11일까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ly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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