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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언어’의 미학, 연극 ‘관객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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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경기자
기사입력 2014-03-17

[문화저널21 이영경 기자] 배경이 없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성격도 없고 급기야 줄거리도 없다. 그런데 연극이다. 연극은 분명히 밝힌다. 이 무대가 세계를 모사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연극적 체험은 <관객모독>의 막이 오르는 순간 파괴된다. “여러분들이 일찍이 듣지도 못했던 걸 여기서 듣게 되리란 기대는 마십시오. 또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지도 않을 겁니다.”
 

연극은 언어유희를 보여주며 끊임없이 관객에게 말을 건다. 작품의 시간 흐름 속에 편입되는 일반 연극과 달리 <관객모독>에서는 무대 위 연극의 시간과 관객의 시간이 일치한다. 또한 배우들은 관객의 현재 의식이나 신체적 상태를 자각하도록 만든다. 일어나지 말 것, 숨 쉬지 말 것, 침을 삼키지 말 것 등을 요구하며 관객 스스로 자의식을 갖도록 한다.
 
가장 매력적인 것은 역시 다양한 몸짓을 보이는 언어의 춤이다. 과장된 억양, 왜곡된 띄어 읽기, 같은 단어의 반복, 수화, 고의적 말더듬기 등 말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언어의 흥미로운 춤은 제멋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계산된 포즈를 취한다. 관객에게 망설임 없이 가해지는 욕설 또한 나름대로의 리듬감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다가온다. 관객은 욕설이라는 불편한 무대 위의 언어를 적극적인 자세로 듣게 되며 이로 인해 무대와 객석은 아주 밀접해진다.
 
극단76은 1976년에 출발해 신촌 문화 형성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70년대 전위연극의 산실이다. 40년에 가까운 극단 76의 역사를 이끈 수장은 연출가 기국서다. “이 작품의 대본을 처음 접했을 때 한 일주일 가슴이 뛰었다. 무엇인가 뚜껑을 열고, 도발하고, 명쾌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지적인 자신만만함이 보였다.” 30년 간 선보인 연극 <관객모독>은 30년 동안 매번 달랐다. 2014년 무대에 오른 <관객모독>은 2014년에만 볼 수 있는 연극이다.

“사실 작품 성격상 <관객모독>은 1회성에서 끝내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지금껏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스타일의 연극도 있다’라는 소개 차원 그리고 ‘욕을 하다니’, 혹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고 심지어 물을 뿌리더라’ 라는 해프닝적 구조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 같아요.”
 
▲ (왼쪽부터) 기국서 연출, 배우 기주봉, 배우 정재진

대본은 대본이라기보다 논문이다. 연출가 기국서는 이 ‘논문’을 한국의 현실과 언어에 맞게 꾸준히 수정했다. “이 대본대로 배우들이 하면 10분이 지나서 관객들이 다 나갈 것 같았어요. 여러 가지 언어적 실험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흥미가 생기고 관객도 많이 오고, 그렇게 교정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처음 이 작품이 공연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때는 다 젊었죠. 아마도 관객을 모독하거나 흥분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관객들이 굉장히 반발했어요. 당시 의자는 바닥에 붙어있지 않고 들고 움직일 수 있게 되어있었어요. 의자가 무대로 날라 오고 조명기구도 깨지는 등의 소동이 있었죠. 배우들이 도망 다녀요. 그 관객들이 다시 오는 것도 아닌데 점점 관객들이 이 작품에 익숙해지고 일주일이 지나서는 소동이 없어졌어요. 기교적으로 매끄럽게 되어서 그런지 관객이 즐기게 된 것 같아요. 또 사회적 감각이 많이 발달했기 때문에 지금은 이러한 형식을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동생 기주봉도 오랜 시간 이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세월은 갔죠. 달라진 것은 없고. 연극도 계속되고. 1976년도에 만들어져서 극단76이에요. 형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이 작품은 연극에 대한 모든 것을 집결해놓고 1회로 끝내야 하는데, 계속 공연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그 나라를 알려면 그 나라의 배우를 만나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 나라의 배우를 만나면 문화, 언어 등을 알 수가 있죠. 이 작품은 관객을 모독하자는 것뿐 아니라 언어도 다양하게 구사하고 있어요. 동포들에게도 이 공연을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배우 정재진 역시 오랜 시간 <관객모독>을 지키고 있다. 여러 역할을 맡았다. “이 연극을 100번 본 사람도 있어요. 수십 번 관람한 사람도 많고요. 왜 이 연극을 수십 번씩 볼까(웃음), 놀랍고 신기해요.” 다양한 연극무대는 물론 영화에서도 모습을 보인 배태랑 중년 배우지만 아직 <관객모독>이 어렵다. “이 작품은 처음 하는 배우들이 굉장히 당황합니다. 논문을 가지고 암기를 해서 공연을 하기 때문에. 일반 공연은 스토리가 있어서 대사를 잊어버려도 스토리에 맞춰 모면할 수가 있는데, 이 작품은 대사를 잊어버리면 정말 답이 안 나와요. 지금까지도 완숙이 되지 않은 느낌이에요.”
 

시대에 따라 정치적, 사회적 풍자도 언어적 유희의 대상이 된다. 기국서 연출은 원래의 대본에 충실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즉흥성이 필요하다. “대학로를 배회하는 어느 한 관객을 설명하며 대사를 집어넣는 등 큰 틀에서는 약속을 하고 즉시 만들어지죠. 10년 전에는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많이 반영됩니다. 저희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정치적 민감성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싶지 않더라고요. 우회적으로 드러내거나 풍자하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연극 <관객모독>은 기존의 공연 형식을 부정한다. 언어극으로써 무대와 객석을 파괴하는 파격적인 형식으로 관객들을 무대로 이끌어내고자 한다. 1978년 극단76단에 의해 국내 초연된 이후 꾸준한 재공연을 통해 매번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실험적인 양식을 접목, 관객들의 찬사를 이끌어 낸 바 있다. 특히 2004년 연극열전 시리즈로 공연되었을 당시에는 객석 점유율 97.9% 라는 높은 관심을 이끌어 내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기도 하였다.
 
배우들의 앙상블 또한 연극 <관객모독>의 재미다. 올해 공연에서는 관록의 기성 배우들과 검증된 젊은 배우들이 맞붙는다. 극단76단의 대표이자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드는 최고의 명품 배우 기주봉을 필두로 연극계에 잔뼈가 굵은 관록의 배우 정재진, 최근 영화 <신세계> <도둑들>에서 맹활약하며 대한민국 대표 씬스틸러로 자리 잡은 주진모, 관객모독의 중흥을 이끈 연기파 배우 전수환, 고수민이 다시 한번 무게 중심을 잡는다. 또한 연극 <웃음의 대학> <민들레 바람되어> 등으로 인정받은 중견 연출가 김낙형과 <독살미녀 윤정빈> 등에서 개성 넘치는 연기를 선보인 김태훈이 무대감독으로 출연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예고한다.
 
여기에 맞서는 젊은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500명에 가까운 지원자가 몰린 <관객모독> 오디션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5명의 배우들이 있다. 김형석, 김동박,  안창환, 윤박 등이 함께하며 여배우에는 대학로 소극장 공연들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쌓은 성아름이 캐스팅 됐다. 6월 1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ly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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